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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신앙은 결코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 왕하 18:1~8 )

414호 · 2008-01-31

설날은 추석 한가위와 함께 우리민족의 가장 큰 명절입니다. 음력을 사용하던 때 정월 초하루를 대명절로 삼아 일 년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날이니 참으로 의미가 있는 날임에 틀림없습니다. 온 가족들이 모여 부모님께 건강과 장수를 빌고 또 오순도순 모여 떡국을 먹는 좋은 날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날 대부분의 가정에서 제사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안 믿는 가정이야 어쩔 수 없다손 쳐도 예수를 믿는 가정조차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는 가정조차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통계적으로 우리나라에 기독교인이 천만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대다수의 가정이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계명 중 첫 계명을 바로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상숭배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보시겠습니까?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4~6). 하나님은 분명히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나 곧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했고, 우상을 숭배하면 징계와 심판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미워하고서야 어찌 무사하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우상을 타파하고 굳건한 신앙을 지킨 자입니다. 그는 즉위 후에 종교개혁을 단행하여 산당을 제거하며, 돌기둥을 파괴하고 아세라 상을 쓰러뜨렸습니다(대하29~31).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되는 일은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부숴버린 일입니다.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왕하18:4).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불만이 극에 달하자 여호와 하나님이 불뱀을 보내 징계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은 놋으로 만든 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라고 하셨고, 그것을 보는 자마다 다 산다고 하셨습니다(민21:4~9). 그런데 그 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놋뱀을 숭상하게 되었고, 점차 그것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관습이요, 전통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을 히스기야가 타파한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설날이나 추석 때 조상에게 절하는 것을 미풍양속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관습이요, 전통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조차도 그리 괘념치 않고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로 안 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저 이방인에게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전10:20). 잘 생각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놋뱀 쳐다보는 것을 단순한 관습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분명히 우상숭배였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행위였듯이, 우리가 단순히 조상을 잘 모신다고 하는 제사 역시 우상숭배요, 그것은 곧 귀신에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고전10:22).

저는 가문의 장손이고, 저희 집안의 장남입니다.

그러니 제사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 때마다 저는 장손으로서 제사상에 숟가락을 꽂고 술을 따라 놓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제사가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제사를 못 지내겠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집안이 난리가 났지요. 조상도 모르는 놈이 되어버린 겁니다. 어머니는 땅을 치고 우시고, 동생은 제 옆구리를 발로 차며 욕을 해대고 그야말로 그런 난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끝내 제사를 지내지 않았습니다. 그 대가로 집에서 쫓겨나야 했지만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지금 제 어머니도 예수님을 영접하셨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제사를 지내면 안 됩니다. 히스기야는 왕이기 때문에 우상을 깨뜨리고 타파하는 일이 쉬웠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은 한 가정의 며느리로서, 아들로서, 연약한 막내딸로서 관습과 싸우는 게 힘겨울 수 있습니다. 핍박이 올 수도 있고, 저처럼 집에서 쫓겨나는 아픔을 견뎌야 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우리가 우상을 우리 집안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처럼.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이사야가 그에게 ‘유언하라’고 합니다. 곧 죽음이 임박했으니 하고 싶은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 때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뭐라고 했습니까?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사38:3). 이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곧바로 그의 수한을 십오 년이나 연장해주셨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해 그림자를 뒤로 십도 물러가게 하사 증거를 삼으셨습니다. 창조 이래로 해의 그림자가 뒤로 물러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기도에 하나님은 초유의 일을 망설임 없이 행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히스기야의 기도는 무슨 의미이기에 하나님이 이처럼 엄청난 일을 행하셨을까요? 히스기야가 하나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한 것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우상타파입니다. 산당을 제하고, 주상을 깨뜨리고, 아세라 목상을 찍어버리고, 모세의 놋뱀을 부순 그 일이 하나님의 마음을 그토록 움직이게 한 것입니다. 그러니 반대로 우상숭배를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어찌 행하시겠느냐 생각해봐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상 숭배하는 자에게 경고하십니다. “여호와는 이런 자를 사(赦)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여호와의 분노와 질투의 불로 그의 위에 붓게 하시며 또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로 그에게 더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필경은 그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하시되”(신29:20). 우상을 숭배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손에서 놓아버리신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의 땅인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된 것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상의 원뜻은 ‘없는 것, 헛된 것, 무가치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우상을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는다면 하나님을 얼마나 무시한 꼴입니까? 만일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상을 섬긴다면, 제사를 지낸다면 하나님은 당신이 우상이라고 섬기는 그것들로 당신을 멸하실 것입니다. 모세가 출애굽 할 때 바로에게 내리신 열 가지 재앙은 바로 애굽이 우상 삼았던 것이었습니다(출7~11).

히스기야의 아비인 아하스는 우상을 섬긴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올곧은 신앙으로 아비가 행한 악한 일과 행적을 과감히 파했습니다.

저는 당신으로 인해 당신의 가정이, 당신의 이웃이, 당신의 나라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를 원합니다. 당신의 올곧은 신앙으로, 당신의 신앙 지조로, 당신의 참된 믿음으로 당신의 가정에서 내려오던 악한 행적, 즉 우상을 숭배하는 일이 끝나기를 바랍니다. 당신으로 인해 당신의 가정이 하나님 앞에 참 제사를 지내게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했던 것처럼, 제가 했던 것처럼, 우리 교회 많은 성도들이 했던 것처럼 당신도 능히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신앙은 결코 타협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온 가족이 모인 명절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분명히 하나님은 당신과 당신의 가정에 천 대까지 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번 명절에 당신의 믿음을 보여주세요. 기도로 준비하고 말씀으로 무장하여 악한 것들을 대적하고 승리하세요.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요일5:21). 할렐루야!

미지근한 물에 대장균이 살듯

미지근한 신앙에 마귀만 들끓는다

세상만사 타협이 있지만

신앙만은 타협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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