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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당신 돈이나 내 돈이나 가치는 같다 (고전 3:18~21 )

408호 · 2007-12-20

일전에 어느 사람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을 미국에서 목회하는 목사라고 소개하고는 제 앞에 제법 두툼한 노트 한 권을 내밀었습니다. 제가 ‘이게 뭐냐?’고 그를 쳐다보았더니, 그는 보면 알 거라는 듯 빙긋이 웃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 노트를 펴보니 거기에는 제가 설교한 내용 중 틀렸다고 생각한 부분을 날짜 별로 일목요연하게 적어놓은 것 아닙니까? “목사님께서 설교하신 내용 중에서 틀린 부분을 적어놓았습니다. 참고하시라고요.” 그는 그런 자신이 자랑스러운 듯 제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 노트를 덮으며 그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왜 나쁜 것만을 보십니까? 나쁜 것을 보기 전에 좋은 점을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국에서 시무하신다고요? 목사님은 몇 명의 성도님을 모시고 목회하고 계십니까?” 그랬더니 지금까지 의기양양하던 그가 모기만한 소리로 “서른 명 정도 됩니다.” 하는 겁니다. “목사님, 저는 학문적으로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목사님이 아시다시피 오늘날 이만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목회에 성공한 줄 아십니까? 저는 학문으로 목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일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더니 그는 크게 깨닫는 눈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특히 복음을 전하는 일은 사람의 지식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학을 무시하거나 신학적으로 무식해도 좋다는 말이 아니라 오직 성령으로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엘서 2장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욜2:29).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나 왕, 그리고 특정인에게만 기름부음이 있었던 것에 비해, 성령시대에는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은 자는 누구든 동일하게 주의 나라를 위하여 일할 의무가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즉 성령시대를 사는 지금은 만인제사장 시대라는 겁니다. 호세아서 4장의 말씀처럼 장차는 제사장이나 백성이나 일반이라는 겁니다.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관계없이 성령을 받은 자는 동일하며, 동일하게 일한다는 거지요. 왜요?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만 원짜리 지폐를 어른이 내밀어도, 아이가 내밀어도 동일한 가치를 발하는 것은 돈이 가치를 발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목사와 평신도가 지켜야 할 교회의 질서를 파기해도 좋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은 성령을 받은 자, 성령에 충만한 자에 의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적으로는 성령을 받지 못한 목사는 성령 받은 성도만 못하다는 말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아볼로 목사가 에베소 교회에서 전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회당에서 자기가 알고 있는 요한의 세례에 대해 열심히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들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 목사를 불러다 가르쳤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행18:24~28). 아볼로가 가르친 요한의 세례가 무엇입니까? 물세례 아닙니까?(행1:5). 성경에 능한, 요새말로 신학적으로 완벽한 아볼로 목사도 성령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성령을 체험한 평신도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가르침을 받은 아볼로 목사는 그 후에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공중 앞에서 더욱 강력하게 증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무선전화를 쓰는 사람과 유선전화를 쓰는 사람과의 차이 정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유선전화만 쓰는 사람은 무선전화를 쓰는 사람의 장점과 편리함을 모르지 않습니까?

목회 50년을 맞은 어느 교회 목사님의 일대기에서 “우리 교회의 부흥은 빨간 가방을 든 평신도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70년대, 빨간 성경가방을 들고 골목골목, 가가호호(家家戶戶) 방문하여 복음을 전한 사람이 평신도였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의 말에 의하면 성도들에게 성령세례를 베풀어 준 것 밖에 없는데, 그들이 나가 엄청난 역사를 일으키며 전도를 해서 세계 제일의 교회를 만드는 기틀이 되었다고 그의 저서에 밝히고 있습니다. 그 목사님의 말이 백 번 옳습니다. 돈만 나눠주면 누구든 가서 물건을 사올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성령을 받으면 일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생기게 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 다시 사신 후에 40일 동안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증거 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하신 말씀을 들어봅시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1:4). 왜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이는 성령이 강림하실 것을 약속하심이요, 그 성령이 임해야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증인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기도 했습니다(행1:8).

생각해보십시오. 무기가 없으면 전쟁에 나갈 수 없고, 연장이 없이는 일터에서 능률적으로 일할 수 없고, 밥 먹지 않으면 힘이 없어서 무엇도 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성령은 곧 악한 세상을 이길 무기요, 주의 일을 하는데 연장이며, 힘입니다(엡6). 그래서 주님이 ‘성령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무기 가지고, 연장 가지고, 밥 먹고 나가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120문도가 오순절 다락방에 모여 성령을 기다리다 체험하고 나가 복음을 전하고, 기사와 표적을 행했던 것입니다(행2). 베드로를 보십시오. 뱃사람이었던 그가 배워서 복음을 전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오로지 성령으로 말씀을 전하고, 기사를 행한 것입니다. 예수의 12제자들도, 일곱 집사들도 오직 성령에 충만하여 나가서 전할 때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들도 이 도에 복종하게 되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행6;1~7).

스데반이 회당에서 변론할 때 지혜가 어디서 났습니까? 그의 권능이 어디서 비롯되었습니까?(행6;8~15). 빌립 집사가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어떻게 말씀을 전했습니까? 모두 성령의 충만함에 의해서였지 않습니까?(행8:26~39).

저는 평신도 운동을 다시 펼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양은 양이 낳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양이 낳은 양 새끼를 기르고, 돌보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평신도가 나가서 일을 하려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사람 앞에 설 때 무슨 말을 할지 알게 되고, 병든 자에게 손을 얹으면 귀신이 떠나고 병이 낫게 되며, 지혜로운 말로 아픈 자의 위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이 그랬듯이, 빌립 집사가 그랬듯이 우리 교회의 평신도들이 성령으로 일어날 때, 교회의 부흥은 물론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음식은 맛이 없는데 그릇만 번지르르 한 것보다 부글부글 끓은 뚝배기 속의 장맛이 낫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으시자 성령이 임했습니다(마3:16~17).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시고 올라오실 때 성령이 그 위에 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께로부터 증거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곧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나가서 40주야를 금식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마귀를 정복하신 것입니다. 이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3년 반의 사역은 성령에 의한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주님은 말씀하시고, 기도하시고, 가르치시고, 병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역사를 일으킨 것입니다. 성령으로 일하신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이론을 파하고 성령을 힘입어 일하라.”

“나는 신학을 안 해서 전도할 수 없어.” “나는 배움이 짧아서 일 못해.” 아닙니다. 사과가 크다고 맛이 있습디까? 작더라도 맛이 있어야 합니다.

익지 않은 사과를 따먹으면 입맛도 버리고 사과도 버리게 됩니다. 성령에 충만하지 않은 자들이 나가 일하면 전하는 자도 죽을 맛이고, 전함을 받는 자도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그러니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다면 당신은 주의 일군으로 충분합니다. 돈의 가치를 알면 무엇이든 살 수 있듯 성령에 사로잡히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행복지수가 성적과 무관하듯 믿음지수는 학력과 무관하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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