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400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움직이지 않는 자에겐 기대할 게 없다 (마 7:6~11)

400호 · 2007-10-24

이번에 아프리카 가나 집회에 가는 도중에 우리는 두바이를 경유했습니다. 면적이라야 제주도 두 배 정도인, 그나마도 90%가 사막인 나라 아랍에미리트연합의 두 번째 도시 두바이가 세계적인 경제허브로 급부상하게 된 것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두바이는 도시 전체가 건설 중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막을 푸르게 했고, 섭씨 45도가 넘는 곳에 스키장을 건설하고, 세계 최고의 빌딩과 호텔을 건축하는 등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마치 마술봉을 휘둘러 놓은 듯, 인간의 상상력과 두뇌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시험하는 듯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한 사람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는 바로 두바이의 왕 셰이크 무함마드입니다. 그는 그의 아버지인 셰이크 라시드 왕이 석유가 고갈될 미래를 늘 걱정하며, 자국경제의 지나친 석유의존도를 탈피하고 경제다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1996년 왕세제로 임명되자 ‘21세기 두바이 경제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추진하여 사막 속 작은 토후국 두바이를 세계적인 무역 및 금융의 허브도시,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저는 두바이를 보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셰이크 라시드 국왕의 말을 잠깐 빌려 전하겠습니다. “아프리카 초원에 사는 사슴은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 사자보다 빨라야 한다는 것을 머리에 되새긴다. 같은 공간에 사는 사자는 눈을 뜰 때마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약한 사슴보다는 빨리 달릴 수 있어야 함을 매일 깨닫는다. 당신이 사슴이던 사자이던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보다는 빨라야 성공할 수 있다.” 곧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성공을 성취하고 싶으면 움직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움직이지 않는 자에겐 기대할 게 없다는 말이지요. 셰이크 라시드 국왕이 메뚜기처럼 볼 품 없는 두바이의 장래를 위해 뛰었기에 그의 배턴을 이어받은 그의 아들 셰이크 무함마드가 더욱 피치를 올려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의 병폐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실 거야. 그저 기도만 하면 돼.” 그러나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곧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해야 한다는 겁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바이를 거쳐 가나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두바이와는 너무도 상반된 그들의 모습에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풍부한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그들이 여전히 가난을 끼고 사는 이유는 바로 게으름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가난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바이처럼 생각과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말입니다.

왜 안 움직이는 줄 압니까?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가축들을 잘 보십시오. 집에서 기르는 동물들이 병들면 첫 번째 증상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겁니다. 사람도 병들면 못 움직이지 않습니까? 그럼 생각이 병들었으면요? 생각이 병들면 “해봐야 안 돼.”, “무슨 사막에 스키장이야?”, “어떻게 해저호텔을 지어?” 이러고 그냥 주저앉아 팔자타령이나 하고 있게 됩니다. 그러나 실제로 사막에 스키장이 있더라니까요? 해저호텔을 짓고 있더라니까요? 그들이 우리와 성정이 다른 사람입디까?

아닙니다. 똑같습니다. 다만 생각과 육체를 빨리 움직이는 것이 차이일 뿐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이런 비유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가면서 종들에게 각각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그리고 한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그랬는데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는 즉시 나가 장사를 해서 이익을 남긴 반면,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움직이지 않고 그것을 그대로 묻어두었다가 주인 앞에 내놓았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마25:16).

주인이 돌아와 회계할 때, 이익을 남긴 종들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하시면서 한 달란트 가진 자의 것마저 빼앗아 더 있게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부지런히 영.혼.육을 움직이는 자가 더 많은 것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은 얻느니라”(잠13:4).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예비하고 계십니다(고전2:9). 곧 주시려고 마음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찾지 않고, 구하지 않고, 두드리지 않는다면 절대 그것은 우리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기적이란 간절히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만일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절대 문둥병이 낫지 않았을 겁니다. 들어가는 것은 절대적으로 나아만 장군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동일하게 요단강에 법궤를 메고 들어가지 않았다면 요단강 물은 갈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요단강에 발을 내딛는 것은 이스라엘 제사장들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회 초기에 ‘세계는 내 교구다.’ 라는 문구를 책상 위에 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열심히 찾고 구했고 두드렸습니다.

그래서 먼저 일본과 미국, 캐나다를 두드렸고, 다음에 남미 쪽을, 그리고 구소련지역으로 찾아가 두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복음의 판로가 열렸습니다. 계속해서 인도, 아프리카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분명히 그 문도 활짝 열리고 있습니다. 제가 가만히 있었어도 세계가 제 손안에 들어왔을까요? 절대 그럴 리 없습니다. 세계는커녕 철산리에서조차 바로 서지 못했을 겁니다.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어느 학생이 목사님에게 기도를 받으러왔습니다.

“목사님, 이번에 수능 치는데 잘 치르도록 기도 좀 해주세요.” 해서 목사님이 기도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이 대학에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학생이 다시 목사님을 찾아와서는 “아니, 목사님, 목사님이 분명히 시험 잘 치르라고 기도해줬는데 왜 제가 떨어져야 합니까?” 하고 반문하자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학생, 나는 분명히 이렇게 기도했네. ‘하나님, 배우고 익힌 것이 생각나고 기억나게 하사 시험을 잘 치르게 해주십시오.’라고 말일세.” 학습하는 것은 학생이 해야 할 일입니다.

아무것도 공부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어쩌겠습니까? 하나님은 물론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눅18:27). 그렇다고 “다 하나님이 알아서 하십시오.”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일을 행하실까요? 아닙니다. 열심히 찾으며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역사하시는 겁니다.

사업의 성공을 원합니까? 설마 가만히 앉아서 그것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움직이세요. 먼저 ‘어찌 해야 성공하나?’ 하고 생각을 움직이고, 바로 행동으로 옮기세요. 인재를 찾아 나서세요. 아이아코카를 찾아낸 크라이슬러처럼 말입니다.

교회의 부흥을 원합니까? 하나님께 구하고 부흥치 못한 원인을 발견하고 뛰세요. 깊은 물에 고기가 많은 것을 알고 깊은 물로 가서 그물을 던지세요.

도무지 움직여지지 않습니까? 아직 여유가 있다는 겁니다. 인생의 배수진을 치면 움직이지 않고는 못 배길 겁니다. 한신처럼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고 생각하면 최선을 다해 찾고 구하고 두드리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상황이 되면 쥐도 고양이를 향하여 덤비지 않습니까? 성공을 위하여 목적한 바를 위하여 인생의 배수진을 치고 달려드세요. 재판장을 찾아간 과부처럼(눅18), 늦은 밤, 떡을 위하여 친구 집 문을 두드린 사람처럼(눅11) 말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약2:19).

말(馬)이 마차를 끄는 법

마차가 말을 끌 수 있나?

한계란 없다

상상력의 한계가 있을 뿐이다

400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지혜의 말씀
귀를 기울이세요
Cartoon
붕우칼럼
선교기행
나눔의 지혜
잠언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