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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은 저의 아버지이십니다

400호 · 2007-10-24

신뢰보다 무서운 파괴력은 없다“끝까지 믿어주신 목사님은 저의 아버지이십니다.”

프란시스 목사는 목사님을 부를 때마다 꼭 ‘파파’라고 했다. 목사님은 자신의 영적 아버지라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목사님을 그렇게 소개했고, 이에 아주 자부심을 느끼는 게 역력했다.

사실 프란시스와의 인연은 200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쌔미 목사를 통해 처음 가나집회에 갔을 때, 가나어 통역관으로 나선 이가 그였다.

그는 목회도 하며 방송 아나운서일도 겸하며 있었다. 그때 목사님은 여러 방송국을 찾아다니고 시장을 돌며 전도의 열정을 불태우셨다. 통역을 담당하며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그는 목사님은 정말 하나님의 일에 올인하시는 분이구나 하고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집회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고 목사님을 도와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후에 싱가포르에서 세미나를 통해 목사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마치 아버지처럼 가나팀들을 챙겨주시는 목사님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싱가포르 세미나를 마치고 마지막 모임에서 가나 타코라디 집회를 다시 준비하겠다고 했다. 목사님은 이에 흔쾌히 수락하시고 집회준비를 위해 2만 달러를 보내주셨다. 그런데 집회 준비과정에서 본부측과 의견을 교환하다 그만 오해가 생겨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고 말았다. 우리는 돈은 받아놓고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어버린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목사님은 프란시스를 끝까지 믿고 기다려주셨다.

그렇게 약 3년이 흘렀다. 지난 봄, 가나 오부아시 집회 때 다시 프란시스가 나타났다. 목사님은 그를 아주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프란시스 목사는 마치 돌아온 탕자처럼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반겨주는 목사님을 어찌 대해야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숙소로 따라온 프란시스 목사는 다시 타코라디 집회를 하겠다고 말하고 목사님 앞에 돈 봉투를 내놓았다. 그는 3년 전에 목사님께 받았던 집회 비용 2만 달러라고 말했다.

그러자 목사님은 그 돈을 확인도 안하시고 다시 그에게 돌려주셨다.

“이 돈으로 준비하게.”

프란시스 목사나 함께 있던 나나 목사, 통역관 임 훈 박사도 몹시 놀라는 표정이었다. 신뢰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을까? 이러한 큰 신뢰를 받은 프란시스로서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부터 프란시스 목사는 목사님을 영적 아버지로 가슴에 새겼다고 한다.

이번에 통역관으로 간 임윤석 사장을 통해 들은 이야기인데, 사실 프란시스의 성장과정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고 한다. 부모님이 일찍 이혼을 하는 바람에 프란시스 형제들은 계모 밑에서 자라났다. 장남인 프란시스는 동생들을 돌보는 가장의 역할을 감당해야했고, 그때부터 아침은 늘 먹지 못했다고 한다. 계모의 눈치를 보느라 아침까지 챙겨먹을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습관이 되다보니 유복한 여인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사는 지금도 아침을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일로 인해 아침을 챙겨주려는 아내와 실랑이를 벌이곤 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숙소에 우리와 함께 머물면서 아침이면 꼭 목사님이 그를 불러 함께 식사를 하셨다. 그의 아내가 아침 출근길에 숙소에 들렀다 이 광경을 보고 몹시 흐뭇해했다고 한다.

이러한 성장과정이 있었기에 프란시스에게 목사님의 사랑은 더욱 애틋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으리라. 마지막 날 폭우 속의 집회를 마치고 우리는 프란시스 목사의 저녁만찬에 초대를 받았다. 그의 장모가 사는 집이었는데, 장인은 치과의사였다가 몇 년 전 소천 했고, 장모도 아주 인텔리로 보였다. 아내는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수란다.

프란시스는 저녁을 대접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한국에 가서 목사님을 통해 좋은 말씀도 듣고 융숭한 대접도 받았습니다. 저에게 목사님은 영적 아버지이십니다. 따라서 제가 그저 한국에 다녀간 여러 목회자들 중 하나가 아니라 목사님의 영적 아들로서 이곳에 오신 목사님을 집으로 모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도 ‘내 아들 프란시스가 이렇게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의 진심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의 장모도 목사님께 말했다.

“늘 건강하시고 어디를 가시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복음을 들고 가시는 곳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종이 되시길 바랍니다.”

힘들고 피곤한 여정이었고, 세콘디 타코라디 집회일정 또한 순탄치 않았지만, 이런 정성스런 대접이 우리의 마음을 참으로 따뜻하게 했다.

두 번째 집회 도시인 코포리두아의 일정을 마치고 수도 아크라 공항으로 향할 때, 목사님은 프란시스에게 전화해서 공항에 나오지 말라고 연락하라고 하셨다.

‘무려 5시간을 와야 하는데 왕복 10시간이 걸릴 것이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이것도 사랑하는 자에 대한 배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프란시스는 이미 출발한 상태였고, 이런 목사님의 배려에 그는 감사를 표하며,

“그러나 아들이 어찌 아버지가 가시는데 나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진심은 마치 거울처럼 서로 비취게 마련이다.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이야말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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