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 눅 14:7~24 )
조금 오래 전에 제가 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은 제가 어느 집사와 함께 트레이닝복을 입고 조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잖아도 그 집사가 주의 일에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터라 그를 만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봐요, 집사님. 내 꿈은 하나님이 함께 일을 하라는 뜻입니다. 우리 함께 뛰어봅시다.”
그랬는데 그의 반응은 이랬습니다.
“목사님,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안하겠다는 게 아니라 조금 있다가 일하겠습니다. 지금은 너무 바쁩니다.”
그런 그에게 제가 일침을 가했습니다.
“집사님, 오늘의 집사님이 있는 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끼니도 없어 쩔쩔 매던 집사님을 축복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아이 소풍 보낼 때 김밥거리 살 돈이 없어 울었던 집사님에게 이토록 엄청난 복을 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이제 살만 합니까? 그런데 그 분이 집사님한테서 돌아앉으면 어쩌시렵니까?”
이렇게까지 말을 해도 이미 귀가 막힌 터라 듣지 않았습니다. 그의 지금은 형편무인지경입니다. 처참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만일 그가 복의 근원이 어디인지 알았더라면, 그가 복 주신 이의 은혜를 잊지 않았더라면 그의 오늘은 더욱 창대했을 텐데… 안타까울 뿐입니다.
사람들은 축복받기 전에는 축복만 주시면 하나님께 온갖 충성을 다할 것처럼 기도합니다.
“하나님, 축복해 주시면 죽도록 충성하겠습니다. 제발 축복해 주십시오.”
취직만 되면, 결혼만 하면, 사업의 문만 열리면, 병만 나으면 주를 위해 이 한 목숨 던져 충성하고 봉사하고 헌신할 것처럼 맹세하며 기도합니다.
그런데 응답받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 저 잘나서 된 양 딴청을 피우고 핑계 대기 바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그런 것입니다. 온 마을사람들을 구제하고 아량을 베푼 어느 사람이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는데 사람들이 이렇게 핑계 대는 겁니다. “꼭 가려고 했는데 제가 밭을 사서 그곳에 좀 가봐야 합니다. 죄송합니다.”, “아이고, 하필 오늘 날이 겹쳤네요. 오늘 소를 샀는데 그 놈 시험을 해봐야 해서요. 다른 날이면 갈 텐데요.”, “오늘 처갓집 가야 해서요. 저야 가고 싶지만 아내가 화낼까봐서요.
집안이 편해야 하잖아요.” 좀 살만 하다는 겁니다. 이제 안 도와주셔도 일이 순조롭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누리는 부귀와 명예, 행복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잊어버린 배은망덕한 자들입니다. 하긴 화장실 갈 때의 마음과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른 것이 사람이니 무슨 말을 더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배 두드리는 부자들과 지식이 있노라 하고 목이 곧은 자들을 찾지 않으시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찾으신 것입니다. 진노한 주인 역시 그랬습니다.
종에게 명하기를 거리로 나가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하고, 길과 산울가로 나가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잔치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한 것이고, 잔치의 배설자는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모든 것은 다 주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건강을 누리고 행복한 것, 그리고 부귀와 명예를 갖게 된 것 모두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나는 건강치도 못하고, 돈도 없는데….” 하는 분일지라도 주님께 받은 것은 많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그 하나만으로도 은혜는 족히 넘칩니다. 그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가서 복음을 전해주겠니?” 이 때 당신은 무어라 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사람들처럼 이리저리 핑계로 일관하시겠습니까? “주님, 죄송해요. 제가 좀 바빠서요.”라고 하시겠습니까? 만일 당신이 핑계를 대며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한다고 해도 하늘나라는 여전히 확장될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에 초청받은 자는 계속 늘어날 것입니다. 당신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예정과 계획에 결코 차질이 빚어지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분부하신 것은 당신에게 기회를 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날에 영광의 면류관과 상을 주시려고 당신을 특별히 지목하신 것입니다.
받은바 은혜가 우리에게 넘치지 않습니까? 주신바 사랑이 너무 크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 분의 간곡한 부탁에 우리가 순종해야 함은 마땅합니다. 주님이 가장 원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그 분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분이므로 따라서 그 분의 소원은 우리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왜 한 달이 멀다하고 해외집회에 다니는 줄 압니까? 저도 나이가 60이 다 되어 가다보니 무리가 따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늦출 수 없는 것은 주님께 받은 축복과 사랑과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백문백답(百問百答), 천문천답(千問千答)이 다 예수인 까닭은 제가 과장해서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제가 누리는 모든 것은 다 예수로 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분이 명령하시면, 아니 명령하시지 않아도 자원하여 그 분의 뜻을 이루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 분에게 ‘아니요.’ 할 수 있는지…. 저만 주님께 많이 받은 게 아니지 않습니까? 당신을 돌아보십시오. 당신이 받은 복을 한 번 헤아려 보십시오.
이번 서울전도대집회는 그 분께 받은 은혜와 사랑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기회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장소를 채우는 일입니다. 그 후의 일은 다 주님이 알아서 하실 것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든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더는 강권하여 집회장소를 채우는 일은 우리의 몫입니다. 청함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요, 택함은 주권자의 일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천사를 들어 그 곳을 다 채우실 수도 있고, 현몽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시킬 때 입이 둔한 모세를 들어 사용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미련한 우리를 들어 하나님의 백성을 모으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21).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전도를 하든 안하든 당신의 자유입니다. 전도를 받고 주 앞으로 오든 안 오든 그것 역시 당신의 자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만물에게는 명령하셨지만, 사람에게는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더불어 알아야 할 것은 선택에 따른 결과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많이 준 자에게 많이 달라고 하신다고 했으며(눅12:48), 청함을 받고 오지 않은 자에게 잔치에 들어올 수 없다(눅14:24)고 하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주 앞으로 인도되었습니까? 먼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 전하는 자를 통하여 전도되었지 않았습니까? 이제 당신이 나가 전도할 때입니다. 전하지 않으면 누구도 복음이 무엇인지, 예수 그리스도가 왜 이 땅에 오사 죽으시고 부활하셨는지 모를 것이고, 다시 오실 주님을 모를 것입니다(롬10:14). 비누가 무엇인 줄 모르는 자에게 비누를 주면서 써보게 해야 비누를 인정할 것 아닙니까? 촛불만 켜고 있는 자에게 전기공사를 해서 불이 들어오게 해야 ‘이런 세상도 있구나!’ 할 것 아닙니까?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살리시고, 자녀 삼으셨으며, 넘치는 축복과 사랑을 주신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를 전합시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사52:7). 할렐루야!
물 오를 때 고기 잡고
쇠가 달궈졌을 때 두드려라
최고가 되려거든
매사 최선을 다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