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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평생에 남을 저주하지 말라 ( 롬 12:9~21 )

391호 · 2007-08-22

오늘의 제가 있는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이지만, 또 한 분을 꼽는다면 작고하신 제 믿음의 어머니입니다. 그 분은 저를 위해 많이 기도하셨고, 제게 많은 가르침을 주신 분이었습니다. 저는 힘들고 어려울 때면 그 분을 회상하고 그 분이 하셨던 말씀을 떠올리곤 합니다.

언젠가 어머니가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목사, 누군가 자네를 밟고 일어서려고 하면 그냥 밟혀주게나. 내가 밟혀서 그 사람이 산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는가. 설령 그 사람이 자네를 밟거든 비록 힘들어도 이 목사는 절대 나 살자고 다시 그 사람을 밟는 일일랑 하지 말게.”

당시 가깝게 지내던 어떤 사람이 자기가 살겠다고 그 일과 무관한 저를 모함하고 저주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일로 마음이 아프고 괴로워하고 있을 때 어머니께서 제게 해주신 말씀입니다. 저는 어머니의 말씀을 가슴에 새겨 그 사람을 용서하고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은 곧 주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과 동일한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12:17).

만고불변의 진리 중 하나가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겁니다.

무씨를 심으면 무를 거두게 되어 있고, 도토리를 심으면 참나무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같은 이치로 저주를 심으면 저주가 나고, 축복을 뿌리면 축복의 열매가 맺히게 된다는 겁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핍박을 받을지언정 핍박하지 말고, 저주를 당해도 저주하지 말며, 악을 선으로 갚으라고 하셨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누군가를 핍박하면 그 씨가 내 땅에 떨어져 내 삶에 핍박이 온다는 겁니다. 누군가를 저주하면 저주의 나무가 자라 나를 덮치고, 누군가에게 악을 행하면 그 악의 그림자가 나에게 미친다는 겁니다.

어떤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심하게 학대했습니다. 심지어 밥도 많이 먹는다고 타박했고, 말도 함부로 해댔습니다. 그런데 그 며느리가 나이 들어 며느리를 얻었는데, 이게 가관인 겁니다. 시어머니를 종 부리듯 하고, 학대는 물론이고 어서 죽으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사는 것이 서러운 시어머니는 밖으로 나가 동네 사람들에게 하소연했습니다. 그랬더니 동네 사람들의 반응이 다들 “뿌린 대로 거두는 거여. 자네가 시어머니를 좀 학대했는가? 자네가 임자 제대로 만난 거지.” 하는 겁니다.

시어머니는 울며 후회했지만 뿌린 씨는 거둬야 했기에 평생 며느리의 학대 속에서 살다 갔습니다.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 아니하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으며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 내부에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 뼈에 들어갔나이다.”(시109:17,18).

다윗을 저주하고 죽이려고 했던 사울을 보십시오. 그 저주가 다윗에게 임했습니까? 아닙니다. 자신과 자신의 자녀들에게 임해 세 아들들과 함께 칼에 죽임을 당했고, 그 시신마저 베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던 사울을 죽일 기회가 왔음에도 살려주었고, 그의 아들을 거둔 다윗은 어떠했습니까? 그는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로 인정받으며 시온의 영광을 누리지 않았습니까?

요셉은 그의 형제들에 의해 애굽 땅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기는 했지만, 그가 살아온 인생길은 참으로 고되고 힘들었습니다. 그런 그 앞에 그의 형제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럴 때면 대개는 자신의 지난 과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원수 같은 놈들….” 하며 주먹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이를 부드득 갈며 분노를 터트리는 것이 정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형제들이 요셉을 보고 떨 때 오히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45:5)

스데반도 그랬습니다. 스데반이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행하니 회당에 있던 자들이 거짓증인을 세워 그를 공회에 세우게 됩니다. 그가 거기서도 복음을 전파하니 무리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함께 달려들어 성 밖으로 스데반을 내치고 돌로 쳤습니다.

그 때 스데반이 부르짖어 한 말이 이것입니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7:60).

우리 주님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 그분은 당장이라도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권세가 있으신 분이었지만, 일개 로마병정에 잡혀 십자가에서 갖은 모욕을 당하면서도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많은 사람들을 상담하다 보면 이런 하소연을 많이 듣습니다.

“예수를 열심히 믿는데, 왜 저에게서 저주가 떠나지 않는 거죠?”

저는 그들에게 묻습니다. “성도님, 혹시 남을 모함하고 핍박하고 저주한 적은 없나요?” 하면 대개는 “뭐, 살다보면 한두 번쯤 다 하게 되지 않나요?” 합니다. 그러면 제가 이렇게 답해드립니다.

“죄는 회개하면 사함을 받지만, 뿌린 것은 거둬야 합니다. 모함했으면 모함 받게 되어 있고, 핍박 했으면 핍박받게 되고, 저주 했으면 저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모함해도 이해하고, 핍박해도 사랑하고, 저주해도 축복하십시오. 그러면 성도님의 생애가 구름 없는 아침 햇살 같을 것입니다.”

사실 저처럼 모함과 핍박을 많이 받은 사람도 없을 겁니다. 오죽하면 제가 제 삶을 일컬어 ‘물 없는 사막이요, 눈 덮인 산야’라고 했겠습니까? 그럴 때면 성질 같아서는 맞받아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그럴 수 없었습니다.

주님이 받은 모함이 저 때문이었고, 주님이 매 맞으신 것이 저 때문이었기에, 또 제가 받는 핍박과 모함은 주님이 받으신 것에 비하면 너무 하찮은 것이었기에 참고 참았습니다. 그랬더니 주님은 원수의 목전에서 제게 넘치는 상으로 베풀어주셨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나를 선대하는 자를 칭찬하는 것은 쉽습니다. 죄인들도 능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저주하고, 힘들게 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눅6:35). 그리고 이어 말씀하십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눅6:36). 마태복음 5장 48절에는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동일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 된 너희는 이제 사람의 습성을 버리고 아버지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다 같이 자갈 하나씩 갖고 다닙시다. 혹 남을 비방하는 말이 나오려고 하면 자갈을 물어 입을 다물고, 혹 남을 저주하려고 입이 방정을 떨면 자갈을 물읍시다. 이 방법으로 제가 제 입단속을 했고, 말의 실수를 줄였습니다. 여러분께도 적극 추천하고 싶은 방법입니다.

손양원 목사처럼 원수를 자식 삼지는 못하더라도 저주하지 말고 축복은 해줍시다. 그러면 우리 주님이 감동하시지 않겠습니까? 주님을 감동시키기만 한다면 하늘의 것과 땅의 것, 땅 아래의 것이 다 당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을 잊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내 이웃에, 내 교회에, 내 가족에게 좋은 것으로 뿌립시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할렐루야!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

문제가 있을 때는

원인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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