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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웃음을 잃은 인생, 고달프리라 ( 잠 17:22 )

390호 · 2007-08-16

좀 오래 전 일입니다. 저는 교회의 노(老) 장로님들과 중추적인 집사님들이 모인 자리에서 잠시 담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중 어느 집사님이 연로하신 두 장로님들께 크게 실례 되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집사님 왈, “아휴, 두 장로님은 소갈머리도 없고, 주변머리도 없으시네요.” 그 때 저는 순간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아니,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하나? 노인 분들께.” 그 집사님으로서야 머리카락이 거의 다 빠져 머리가 훤한 두 장로님께 당시 유행하는 말로 조크를 던져본 것이지만, 그리 편한 자리가 아니었기에 저로서는 장로님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조심스러웠던 게 사실입니다.

그랬는데 우리 장로님들이 그 집사님의 말에 어떻게 답했는지 아십니까? “맞습니다. 우리는 주변머리도 없고, 소갈머리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목사님 곁에서 헤드라이트가 되어 목사님 가시는 길을 훤히 밝혀 드리고 있답니다. 안 그렇습니까, 목사님?” 그래서 한바탕 웃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장로님들께 정말 감사했습니다. 얼굴을 붉힐 수 있는 상황을 되레 웃음바다로 만들어준 우리 장로님들이 그렇게 감사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 장로님들의 재치가 어디서 나왔는가 생각해 봤는데, 그것은 연륜이 빚어낸 여유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분들은 항상 여유가 있을뿐더러 어떤 경우에도 절대 조급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 자신도 참 많은 여유가 생긴 것 같습니다. 제 성격이 칼 나간다 총 나간다 한지라 무엇에든 조급하고, 무슨 일에든 서두르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제가 보기에도 많이 여유로워졌습니다.

그동안 많은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보니 절대 ‘빨리 빨리’가 조급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빨리 한다는 것은 서두르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는 것이고, 숙달된 것이며, 의지적인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준비했으니 빨리 할 수 있는 것이고, 능수능란해졌으니 당연히 빨리 하는 것이며, 작심삼일(作心三日)이 아니라 꾸준히 했으니 빨리 하는 것은 당연지사인 것입니다. 그러나 조급은 능히 감정적이고, 다분히 일시적인 것으로 대책 없이 서두르는 것이니 넘어지고 망할 뿐입니다.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잠21:5).

제가 우리 성도들에게 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일에 조급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조급하다고 빨리 가는 것이 아닙니다. 넘어질 뿐입니다. 서두른다고 일이 빨리 성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망할 뿐입니다. 범사에 때가 있는 법입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전3:1). 과일이 기한이 차야 익듯, 만삭이 되어야 아이가 나오듯 범사에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 기한과 그 때는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인간이 서둘러서 이루어질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그 때를 준비하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조급하지 말고 여유를 가집시다.

누가 오른 뺨을 치면 왼편도 돌려댈 수 있는 여유, 누군가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줄 수 있는 여유, 그리고 누군가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까지 벗어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산다면 인생이 얼마나 아름답고 편안하겠습니까?

여유 있는 자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웃음입니다. 요즘 현대인들이 웃음을 잃은 것은 곧 여유를 잃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허둥지둥 서두르는 자에게서 어떻게 웃음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늘 뭔가에 쫓기는 듯 바쁜 자들에게서 어찌 웃음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몸이 아픈 겁니다.

웃어야 온 몸에 경직된 근육이 풀리고 스트레스가 날아가는데 그럴 여유가 없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일노일노(一怒一老) 일소일소(一笑一少)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확실한 의학적인 증거가 뒷받침되어 있습니다. 의학 자료에 의하면 눈물이 날 때까지 웃으면 스트레스가 진정되고 혈압이 떨어지며 혈액순환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한 번 웃는 것이 에어로빅을 5분 동안 격렬하게 하는 것과 같으며, 20분 동안 웃으면 3분 동안 노를 격렬하게 젓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그러니 운동하러 다닐 시간이 없다면 소리 내어, 목젖이 다 보이도록 한 번 웃어젖히면 건강해지고 젊음도 따라옵니다.

사실 살다보면 그렇게 웃을 일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억지로라도 웃어보세요. 그러면 웃을 일이 정말 생기게 되는 겁니다.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 하지 않았습니까? 성경에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했습니다. 웃고 싶지 않을 때도, 웃을 상황이 아닐 때도 웃어라 이 말입니다. 그러면 복이 온다는 겁니다.

이번 키르기스스탄 집회를 마치고 KGB에 끌려 들어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곳은 사방이 회색 콘크리트 벽이었고, 방안에는 책상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은 얼음처럼 잔뜩 굳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 웃으며 “의자라도 갖다놓고 합시다. 앉아서 하면 좋지 않습니까?” 했더니, 그들은 어색하면서도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나무 의자를 가져왔고, 그 후로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습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은 진리입니다.

일본 교회를 방문했을 때, 우리 성도들이 일본에서 가장 비싼 음식점으로 저를 안내했는데, 음식 값이 정말 엄청난 곳이었습니다. 식사 중 인사차 온 주인에게 제가 물었습니다. “이 음식점은 무엇이 유명하기에 이렇게 비싼 겁니까?”

그랬더니 그 주인의 말이 놀라웠습니다. “우리 음식점은 웃음을 잃은 종업원을 잘라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저는 “과연!” 하고는 무릎을 쳤습니다.

웃음은 긴장으로 얼어붙은 문제를 일거에 풀어내는 해소책일 수 있고, 문제 앞에 담대하게 해주는 예방주사이기도 합니다. 또한 웃음은 무형의 약입니다. 모든 의학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했던 환자가 웃음 치료법으로 완치되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은 많이 웃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의학적인 근거나 통계를 떠나서라도 사실 웃는 사람이 낫지 않습니까?

찡그린 아내보다는 활짝 웃는 아내가 예쁘고, 근엄하게 무게 잡는 남편보다 호탕하게 잘 웃어주는 남편이 좋지 않습니까? 얼굴에 내천 자(川) 그리고 있는 상사보다 작은 일에도 껄껄 웃어주는 상사에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습니까? 이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지요. 또한 살얼음 같은 분위기에서 진수성찬을 대하는 것보다 깔깔거리며 뚝배기 한 그릇 먹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한 여름에 버스에 승객이 많아 모두들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숨도 막히고 땀 냄새에 다들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류장에 버스가 섰다가 막 출발하려는 순간 한 아가씨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저씨, 내려요!” 그랬더니 버스 기사가 고개를 뒤로 돌리며 말했습니다. “나보고 내리라고? 그럼 운전은 누가 하나? 아가씨가 할라나?” 기사의 말에 모두 한바탕 웃었고, 승객들은 더 이상 힘들지 않았습니다.

이제 조급했던 발을 멈추고, 이제 서둘렀던 마음을 가다듬고 우리 삶에 여유를 둡시다. 그러면 웃고 살 수 있습니다. 이제 조급을 버리고 여유롭게 살고, 조급 때문에 잃었던 웃음을 찾아 우리 삶을 아름답고 기쁘게 만들어 갑시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왜 매일 밖으로 도냐고 할 것이 없습니다. 웃음이 있는 가정을 만들면 돌아옵니다. 왜 부하직원에게 일에 능률이 오르지 않느냐고 잔소리 할 것도 없습니다. 사무실을 웃음이 있는 분위기로 바꾸면 능률은 절로 오릅니다. 왜 교회가 어둡냐고 할 것도 없습니다. 목사가 웃음을 주면 교회는 밝아집니다.

만물과 사람을 만드시고 심히 기뻐서 웃으셨던 우리 하나님처럼 우리가 늘 기뻐하고 산다면 우리가 있는 그곳이 바로 천국이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웃음이 없는 인생은

기름이 없는 램프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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