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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하는 것이냐, 못하는 것이냐?

390호 · 2007-08-16

“부흥을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흥을 안 시키는 것입니다. 부자가 못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가 되려고 안하는 것입니다. 귀신을 못 쫓는 것이 아닙니다. 쫓지 않는 겁니다.”

총회장 목사님의 일성(一聲)은 조용하던 예루살렘 기도원을 흔들어 깨웠다.

전라남도 장성의 깊은 지리산자락에 위치한 장성 예루살렘 기도원에서는 6일부터 영적축제가 시작되었다. 바로 3주간 계속되는 여름산상집회가 그것이다.

둘째 날, 단에 오르신 총회장 목사님은 ‘생각을 바꾸라’고 강력히 촉구하셨다.

“요한복음 10장 35절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은 신이라 하였거늘 어찌하여 스스로 한계를 긋고 사는 것입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신적 권위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디에 걸려 있습니까? 포도나무가지도 포도나무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금 가난하고, 병들고, 나약하게 사는 것은 우리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권세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고, 그 권세를 스스로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그 분이 그 권세를 예수 그리스도께 이양했으며, 우리는 그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하는 겁니다. 구하지 않기 때문에 얻지 못하는 것이고, 우리가 찾지 않기 때문에 못 찾는 겁니다. 두드리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사업에 실패했습니까? 재기할 수 있습니다. 결혼에 실패했습니까? 더 좋은 사람과 재혼할 수 있습니다. 대학에 실패했습니까? 재수하면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습니다. 당신이 하고자 하면 능히 할 수 있습니다. ‘못한다’는 의식이 깨어지기만 하면 사람의 아들을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어 목사님은 귀머거리, 소경을 단에 올리시고는 ‘마귀는 못 듣게 하지만, 주님이 여러분에게 준 신적 권위를 활용하면 분명히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목사님이 가진 권세, 즉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자 갑자기 4개월 전에 눈이 보이지 않게 된 청년이 눈을 떴고, 30대부터 귀가 들리지 않던 50대 장년이 고침을 받는 등 수많은 병자가 치료함을 받았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그렇다. 태양을 멈춘 여호수아는 누구이며, 3년 6개월간의 가뭄을 몰아낸 엘리야는 누구인가? 우리는 그들과 과연 무엇이 다른 것일까?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우리가 못하는 것은 정말 안하기 때문이리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배움의 끝은 실천이라고 목사님은 누누이 말씀하신다. 아무리 듣고 깨달았다며 가슴을 쳐도 그때뿐 그 지식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인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이라는 말씀도 결국 실천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복음의 단순성이 사람들에게 던지는 의문은 그 진리의 파괴력보다도 그것을 실천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이다.

너무나도 쉽기 때문에 믿지를 못한다. 실천에는 지금까지의 모든 논리와 경험을 파하는 단순한 믿음과 순종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거야’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말씀, 곧 하나님의 법을 집행하신다. 마치 일어난 불꽃에 기름을 부어주시듯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는 신이라 하셨으니 산상집회를 통해 받은 생명의 말씀을 통해 변화되고 그 말씀을 실천하여, 올해 바랄 수 없는 것을 이루는 신적 권위들이 나타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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