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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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4호 목차 › 옹달샘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384호 · 2007-07-04

조선의 4대왕인 세종대왕이 2007년 다시 세상에 왔다. 저녁 무렵 경복궁에서 눈을 뜬 세종대왕은 불빛에 도무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여봐라, 분명 야심한 밤일진대 왜 이리 밝고, 또 눈을 부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고?”

“전하, 이것은 전등입니다. 이 전등만 있으면 밤도 낮처럼 환하답니다.”

왕은 부신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불빛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희한한 물건이로고.”

왕은 첫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이 되기를 기다렸다. 날이 밝자 왕은 명령했다.

“궁 밖을 돌아보아야겠다. 채비를 갖추어라.”

궁 밖으로 나오니 가마대신 리무진이 떡하니 서 있었다.

“어서 타시지요.”

내시의 말에 왕은 당황했지만 체통을 지키느라 흔연하게 차에 올랐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나 빠른지 왕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전하, 이것은 자동차입니다. 어디든 말씀하시는 곳에 신속히 모실 수 있는 가마입니다.”

왕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바깥을 바라보다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어째 남정네와 아낙이 거리를, 그것도 대낮에 붙어 다닌단 말인가. 이 나라가 어쩌다 이리 되었는고. 그리고 옷차림은 또 저게 뭔가? 옷을 다 벗었지 않았나? 동방예의지국이 형편무인지경이 되었구나. 이거 안 되겠다. 어서 우의정을 불러라.”

왕의 진노에 내시가 핸드폰을 열어 우의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자 왕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전하, 우의정 나왔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아니, 감히 왕을 놀리는 게냐? 어디 우의정이 있단 말이냐?”

“전하, 이것은 화상 전화인데, 음성도 들을 수 있고, 이것 보십시오. 우의정 얼굴이 화상을 통해 보이지 않습니까?”

왕이 조심스레 귀에 핸드폰을 가져다대니 우의정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왕은 할 말도 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만 속으로 ‘도대체 이런 세상이 있나’ 했다.

많이 놀란 탓인지 왕은 시장기를 느꼈다.

그래서 내시에게

“지금 시각이 얼마나 되었느냐?”

했더니 내시가 시계를 보더니

“전하, 지금은 12시 반입니다.”

라고 했다. 왕은 내시의 대답에 신기하여

“아니 그걸 어찌 그리 아는고? 해시계가 옆에 있는 것도 아닌데….”

하자 내시가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보이며 자세히 설명했다. 점입가경이라더니 왕의 눈에 비치는 세상은 갈수록 요지경 속이고, 볼수록 놀라운 것뿐이었다. 다시 왕이 거대한 건물을 보고는 저것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내시는 그 안에 사람들이 층마다 살고 있음을 설명했다.

“이런 상것들이 있나. 어떻게 사람 머리 위를 밟고 다닌다는 건지….”

왕은 그만 궁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스꺼워 더는 다닐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날 밤도 왕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요지경이야, 정말 요지경이야.”

물론 이것은 가상 시나리오다. 이왕 시작했으니 우리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보자. 만일 당신에게 조선시대에 태어나 살겠느냐고 하면 당신은 선뜻 그러겠노라 하겠는가. 전기도 없고, 핸드폰도 없고, 컴퓨터도 없는 세상. 자동차도 없고, 남녀 유별한 세상에서 살라면 살겠는가.

글쎄올시다.

과거의 왕들이 지금 살아난다면 그들은 지금의 생활에 놀라서 곧바로 다시 까무러칠 만큼, 우리는 과거 왕들이 누렸던 호사보다 더한 문화적, 과학적 혜택을 누리고 있다.

오늘 주님은 말씀하신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눅7:28). 구약시대의 모든 선지자들이 그리스도를 직접 보지 못하고 예언하는 것에 그쳤지만, 세례요한은 주님을 직접 보고 그 분을 메시아로 증거 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 세례요한보다 크다고 하셨다.

극히 작은 자가 누구인가. 우리다. 우리가 세례요한보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큰 자란다. 이는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시대에 살았다면 우리는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 부활이 완성된 시대에 살고 있고, 더욱이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심이다. 예수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으로 살고 있음이다. 마치 옛 임금보다 평범한 우리가 더 큰 혜택 속에 있듯이.

우리가 비록 세례요한처럼 강하고 담대하게 주를 전파하지 못하고, 죽도록 봉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즉 극히 작은 자라도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는 더욱 큰 자라 하신다. 신분이 다른 것이다.

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이 얼마나 놀라운 은총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런 전적인 은혜를 주신 것이다. 그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할 말을 잊고, 목이 멜 뿐이다. 그 은혜를 알고 감격했다면 진정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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