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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기쁨은 삶의 원동력이다 ( 창 26:12~15 )

382호 · 2007-06-21

장성 예루살렘기도원을 신축할 때의 일입니다. 그 때 어느 신학생이 감나무에 올라갔다가 그만 감나무 가지가 부러지는 바람에 바닥으로 떨어져 몸이 좀 다친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광주에 있는 병원에 입원을 시키고, 제가 심방을 갔습니다. 가서 기도를 해주니까 그 신학생이 말은 괜찮다고 하는데 낯빛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몸이 아프니까 그렇겠지.’ 했는데 알고 보니 짝사랑하던 여자가 있었는데, 몸이 아프니 더욱 그녀 생각이 나서 그랬던 겁니다. 제가 그 사실을 알고는 그의 짝사랑 그녀를 만나 “죽은 사람 소원도 풀어준다는데,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다쳐있으니 병문안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설득하고는 그녀를 데리고 병원으로 다시 갔습니다.

그랬더니 그 신학생이 저 혼자 심방 갔을 때와는 딴판인 겁니다. 얼굴에 화색이 돌고, 언제 아팠냐는 듯 싱글벙글 하는 겁니다. 그렇게 보고 싶던 여자의 등장으로 신학생의 마음이 비온 후의 날씨처럼 활짝 개니 회복세가 빨라져 얼마 후 곧 퇴원했습니다.

사실 그 신학생의 몸이 그리 빨리 완치된 데는 충분한 과학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사람이 기쁘고 즐거우면 우리 몸 안에서 엔도르핀이 생성되어 통증을 제거하고 병균을 죽여 병이 낫게 된다고 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고 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고 함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에도, 힘들 때에도,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에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의 감정이란 어려운 일을 당하면 한숨이 나오고, 힘들 때는 통곡하고, 억울하면 버럭 화를 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항상 기뻐하라’고 하심은 인간의 감정을 뛰어넘어 오직 하나님의 영, 곧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 곧 주 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빌립보 교인들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말한 사도 바울의 형편은 결코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족쇄에 묶인 채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성령이 주시는 기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 뿐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선친들은 자신의 상황과 형편에 무관하게 늘 기뻐했습니다. 우물을 팔 때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겼던 이삭이나, 외삼촌에게 노임을 착취당했던 야곱, 애굽에 팔려가 파란만장한 생을 보낸 요셉 모두 자기가 처한 상황이나 환경에 불평하지 않고 기쁨으로 일하고 대처했습니다.

또 사울에게 쫓기고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살던 다윗도, 핍박과 모욕을 당한 베드로를 비롯한 주님의 많은 제자들도 자기 생에 원통해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더욱 기뻐함으로 이를 극복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 모두는 믿음의 선친으로서 명예의 전당에 등록되는 영광의 생을 살았습니다. 그들의 삶과 신앙은 언제나 우리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기쁨의 원천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11).

하나님이 가장 먼저 드러낸 감정도 기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시고 좋아하셨고, 인간을 만드시고는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31). 그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할 때 우리는 늘 기뻐할 수 있고, 항상 즐거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패했습니까? 이혼했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습니까? 물론 힘들고 슬프시겠지요. 그러나 당신이 울고불고 한다고 지금의 현실이 달라집니까? 코를 석자 빠뜨리고 있다고 뭐가 나아질까요? 절대 달라지지도, 나아지지도 않습니다.

몸만 축 나고 기운만 빠질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해보세요. 이왕 벌어진 상황이니 인정하고 거기에 적응하는 겁니다. 피할 수 없다면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정말 어렵고 잘 안되겠지만 마음을 일으키고 기뻐하는 겁니다. 기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뻐하면 다시 길이 보이고, 다시 삶이 열리고, 다시 일이 전개될 것입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취한 후 회개했지만 죄의 열매는 거둬야 했기에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난 그의 아들이 심히 앓아누웠습니다. 그 때 다윗은 금식하고 땅에 엎드려 통곡하고 아비로서 심한 가슴앓이를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죽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음식을 베풀게 하고 먹었습니다. 다들 이런 다윗의 행동에 의아해 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다윗이 말했습니다.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시방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삼하12:22,23).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 끝난 상황에 매달리지 않고 마음을 정비한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전무후무한 지혜를 가진 솔로몬을 허락하셨습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하고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기 시작하자 저를 안수한 교단에서 저를 이단이라고 제명했습니다. 교단 측에서 제명되던 그 날, 저는 교회로 돌아와 떡을 해서 우리 성도들과 잔치를 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야 참 암담한 상황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이왕 벌어진 일, 제가 슬퍼한다고 달라질 것도 아니고, 또 주의 이름으로 한 일에 대한 대가였기에 더욱 울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제게 ‘명성’이란 글자를 보이시고, 저를 세계로 보내사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누군가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이 온다.’고 했습니다. 참 맞는 말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좋은 일이 있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니까 좋은 일이, 즐거운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이기는 방법을 알려드릴까요? 힘들 때 극복하는 방법을 가르쳐드릴까요? 고통스러울 때 고통을 벗어버리는 방법을 소개해드릴까요? 기뻐하는 것입니다. 사막에도 물만 있으면 꽃이 피는 것 아닙니까? 사막처럼 고된 삶이 찾아올 때 이왕 온 것을 탓하지 말고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사막에 물을 주는 겁니다. 그러면 그 사막에도 장미꽃이 필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이 기쁨으로 그 광야를 건넜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왕 광야에 나왔는데, 되돌아갈 수 없는데 어쩌라고 그렇게 불평을 했던 것인지…. 그 결과 그 힘든 광야에서 40년을 견뎌야 했지 않습니까. 광야 같은 당신 삶을 불평하면 힘들고 고통스러운 광야생활이 더 길어질 뿐입니다. 가나안에 일찍 도달하는 방법은 기쁨으로 광야를 걷는 것입니다. 광야를 빨리 빠져나오는 방법은 기쁨으로 광야를 걷는 것입니다. 우거지 밥상하고 있으면 더욱 형편이 나빠질 뿐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민족처럼 말입니다.

항상 기뻐하세요. 늘 즐거운 마음으로 사세요. 그러면 당신 삶에 에너지가 넘쳐날 것이고, 신선한 아이디어가 창출될 것이고, 늘 영.혼.육이 강건할 것입니다. 잘 안 된다고요? 당신 힘으로는 안 되니 성령의 능력으로, 성령의 힘으로 하세요.

기쁨이 있는 가정, 기쁨이 있는 사회, 기쁨이 있는 국가와 교회는 회복될 것이고, 다시 창대해 짐을 잊지 마세요.

행복으로 가는 길은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 방법을 모르고 길을 모르는 것 뿐입니다. 주님은 내가 곧 길이라고 하셨으니 주님의 말씀을 좇아 살면 능히 행복에 이를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항상 기뻐하라.” 할렐루야!

생선이 썩으면

머리부터 썩는다

약속은 믿어야 하는 것이고

법은 지켜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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