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속에 이런 인내가 있을 줄 몰랐습니다
“김 선교사, 그리 힘든 길을 왜 가고 있소?”
“그 날의 상이 없으면 이러겠습니까?”
믿음은 끝까지 이기는 것이다. 끝까지 참고 견디며 이겨낼 수 있는 힘은 바로 믿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졌노라 하면서 요동하는 바다 물결처럼 손바닥 뒤집듯 참지 못하고 변질되어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처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믿음의 확신에 견실한 뿌리를 내리고 어떤 창수와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보는 것만큼 감동적인 순간은 없다. 우리가 죽을지언정 지켜가야 할 믿음이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반석 위에 집을 지은 믿음만이 우리를 넉넉히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교단의 해외선교역사는 이제 8년 차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 2000년 2월의 인도네시아 집회를 시작으로 정말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 가운데 우리가 중남미 지역에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찾아온 그레고리 목사와 이현숙 선교사의 등장에서부터이다. 물론 그동안 많은 부침이 있었지만 현재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지역은 우리 해외선교에 있어 가장 큰 수확을 올려주는 황금어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2001년 멕시코 산 루이스 집회 때부터 중남미 집회에 반드시 동참하고 있는 김성자 전도사를 독자 여러분에게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자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60이 넘은 연로한 몸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비량하며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중남미 집회에 목사님을 도와 찬양 사역을 계속하고 있다. 그녀는 미국 필라델피아에 거주하며 중남미 집회 때마다 현지에서 우리와 합류하곤 한다.
풍부한 성량을 가진 그녀는 집회 때 목사님의 찬양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받쳐주곤 하는데 피곤에 지친 목사님에게 그보다 더 크고 든든한 지원은 없다고 목사님은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다. 사실 두세 시간을 큰 소리로 외치며 악한 영들과 전투를 치르는 목사님으로서는 찬양할 때 풍부한 성량으로 받쳐주는 지원이 보통 큰 힘이 아니다. 이는 단에 서는 강사들만이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시원스런 마이크와 모니터 스피커, 때에 따라 신나게 지원되는 반주와 찬양보조만 있다면, 단에 서는 부흥강사는 더 바랄 것이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는 힘이야 강사 스스로 기도하여야 할 부분이고, 예배를 돕는 자들의 역할은 그 강사가 오로지 메시지와 성령의 역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김성자 전도사가 목사님을 도와 지금까지 일하게 된 배경에는 하나님이 주신 한 꿈이 있었다. 너무나도 생생한 장면이었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목사님의 몸에 빨대를 꽂고 진액을 빨아먹고 있더란다. 목사님은 기진하여 쓰러지는데 아무도 목사님을 부축하는 이가 없었다. 이 꿈을 꾼 이후 김성자 전도사는 미력하나마 저 목사님을 도와 일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녀는 집회 때마다 목사님의 옷가지, 음식 등을 바리바리 싸와 우리 집회팀의 부족한 영양을 보충해준다. 또한 스페인어 찬양으로 중남미에 센세이션을 일으켜 중남미 교계에서 둘쎄 김(Dulce Kim)하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이다.
그녀의 CD 음반도 나와 현지의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특히 그녀가 부르는 ‘멕시코를 축복하소서’는 멕시코에서 매우 유명하다. 그녀가 이 찬양을 시작하기만 하면 모인 무리가 박수로 환호할 뿐 아니라 눈물을 흘리며 이 찬양을 따라 부른다.
그러나 그녀의 중남미 사역에 이런 행복하고 영광된 순간보다는 고통의 시간들이 더욱 많았다. 생각해보라. 연로한 여인의 몸으로 누구 하나 도와주는 이 없는 선교여정에 자비를 들여가며 따라다닌다는 것이 결코 녹녹한 일이겠는가 말이다.
그렇다고 열렬한 환영이나 배려를 받는 것도 아니고, 더러는 무시를 당하고 천대를 받는 속에서도 그녀는 하나님께 받은 처음의 확신을 놓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님의 사역을 도와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인내하고 또 인내하였다.
지난 후지탄 집회를 위해 가는 길에 멕시코시티 공항에서 만난 그녀는 너무나도 힘들고 지쳐 보였다. 새벽부터 나와 비행기가 연착되고 환승 항공편을 놓치는 바람에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겨우 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목사님이 안쓰러운 듯 물으셨다.
“김 선교사, 그리 힘든 길을 왜 가고 있소?”
그때 그녀의 입에서 무조건 반사처럼 바로 튀어나온 대답은 이랬다.
“그 날의 상이 없으면 이러겠습니까?”
그 순간 우리는 모두 할 말을 잊었다. 그래, 더 이상 무슨 대답이 필요할까.
목사님은 이번 멕시코 두 도시 집회의 살인적 일정을 소화하시면서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정말 파김치가 될 지경이었다.
특히 집회장의 모니터, 반주가 제 기능을 못하여 더욱 힘들었는데, 반주가 있건 없건 그 특유의 풍부한 성량으로 힘차게 찬양하는 김성자 전도사의 모습을 보고 너무나 큰 감동을 받으셨다고 한다. 마이크가 없어도 육성으로 설교한다는 자세, 반주가 없으면 단상을 내리치며 찬양한다는 자세, 다 떠나도 하나님만 함께 계시면 아무 걱정 없다고 목사님은 늘 말씀하신다.
김성자 전도사의 모습은 바로 그러한 전천후 신앙인의 모습이었다. 오전 세미나를 마치고 점심식사 자리에서 목사님이 그녀를 크게 칭찬하며 격려하시자 김성자 전도사는 이렇게 말했다.
“내 속에 그러한 인내가 있다는데 저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믿음의 길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바로 그 포기하지 않는 견고한 믿음의 길에 하나님은 영광과 감격의 순간을 반드시 준비하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