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을 위하여 ( 엡5:22~6:4 )
저는 꼭 제작하고 싶은 영화가 있습니다. 사실 그 내용이 조금은 진부하게 보일 수도 있겠으나 한번은 꼭 만들고 싶은 마음을 늘 갖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직 개발이 안 된 서울 끝자락에 한 부부와 두 자녀가 사는 가난하지만 단란한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아내는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 네 개를 쌉니다. 두 개는 아이들 것이고, 다른 두 개는 자신들 것입니다. 남들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이들은 함께 모여 아침식사를 하고는, 부부는 리어카를 끌고 시장으로 물건을 떼러 갑니다.
그들은 리어카에 야채를 싣고 다니며 파는 행상입니다. 야채를 리어카에 잔뜩 싣고 부부는 골목마다 다니며 외칩니다. “무, 배추 왔어요.” 하고 남편이 먼저 큰소리로 외치면 두 박자쯤 뒤에 “양파, 감자도 왔어요.” 하고 아내가 응수하듯 외칩니다. 둘은 호흡이 척척 맞습니다. 다니다 오르막길이라도 만나면 앞에서 남편이 ‘영차’ 하며 리어카를 끌고 아내도 뒤에서 ‘영차’ 하며 리어카를 밉니다. 천생연분이 따로 없습니다. 그렇게 오전 일을 마치면 한가한 골목에 리어카를 세우고 둘은 싸온 도시락을 먹습니다. 이미 식은 밥이지만 둘은 서로의 땀을 닦아가며 맛있게 먹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일을 마치고 빈 리어카를 끌고 집에 들어가면 아이들이 뛰어나와 엄마, 아빠를 맞습니다.
그러면 아내가 남편에게 “여보, 윗도리 벗고 오세요. 등목해드릴게요.” 하면, 남편이 윗도리를 벗고 엎드립니다. 그러면 아이들도 덩달아 아빠 등에 물을 한 바가지 끼얹고 집안은 그야말로 웃음꽃이 활짝 핍니다. 그리고 함께 모여 된장찌개에 김치 하나인 수수한 식단이지만 감사함으로 기도 드리고 맛있게 식사를 합니다.
이런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면 본전 건지기도 어려울 겁니다. 요새 영화처럼 스릴도 없고 짜릿한 것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영화를 통해서 행복한 가정은 절대 권력이나 명예나 돈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고, 평범한 일상이 바로 행복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거대한 것,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이벤트 속에 행복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톡 쏘는 콜라나 상큼한 오렌지 주스 같은 것이 행복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쩌다 콜라고 오렌지 주스지요. 며칠 동안 물대신 콜라나 주스를 마셔보세요. 물 생각이 절로 날 겁니다. 물은 맹맹하지요. 그러나 맛이 없기 때문에 싫증 안 나는 것이고, 갈증해소에 최고인 겁니다. 가끔 남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휴, 맨날 보는 아내가 여자로 보이겠어?” 아내들도 말합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이런 삶은 지겨워. 탈출하고 싶어.” 그래서 더러는 정말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탈선하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근데 거기에 행복이 있던가요? 있을 리 없습니다. 거기에는 후회와 공허, 허탈감만 따를 뿐입니다.
평범함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 줄 아십니까? 한 여자가 정말 매일 반복되는 삶에 싫증이 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뭐 특별한 일 없을까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5시면 들어와야 할 아이가 들어오지 않는 겁니다. 6시가 되어도, 7시가 되어도 아이는 안 들어왔습니다. 여자는 “무슨 사고라도 났나?” 하는 걱정으로 아이를 찾느라 여기저기 수소문합니다. 9시쯤 되었을 때야 아이가 들어왔습니다. “친구랑 PC방에서 놀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겁니다. “전화라도 하지 않았느냐?”고 야단을 치는 그녀에게 주님이 작은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오늘 특별한 일을 주었는데 어땠니? 매일 특별하게 해줄까?” 그녀는 “아닙니다.” 하고 크게 소리쳤습니다.
일상을 권태롭게 생각지 마십시오. 매달 적지만 꼬박꼬박 월급 가져다주는 남편, 매일 그 반찬이 그 반찬 같지만 늘 수고하는 아내, 일등은 못하지만 사고 안치는 들어오는 자녀, 이래라 저래라 매일 잔소리 같은 충고를 하시는 부모님… 이 모두는 불평거리가 아니라 감사거리입니다. 행복은 당신이 불평의 안경을 빼고 감사의 안경을 낄 때 일상 속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평범한 일상에도 질서는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가정에서의 위계질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입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순종한 것처럼,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순종한 것처럼,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께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처럼 순종해야 합니다.
왜 순종해야 하면 어떤 부모도 자식에게 해를 끼치는 부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악한 아비도 자식에게 좋은 것으로 주고(마7:11), 도둑놈도 제 자식에게는 도둑질하지 말라고 하거든요. 그러니 부모의 말씀에 이견을 제시하지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골3:20). 효는 백행지 대본(百行之 大本)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에 근본이니 당연히 행해야 할 도리인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에게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요즘 조기교육이 열풍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 말씀 위에 서 있지 않다면요? 말짱 도루묵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아이가 입을 떼면 먼저 ‘토라’부터 가르칩니다.
‘토라’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으로, 곧 하나님의 말씀이지요. 그렇게 양육된 유대인들이 지금 세계 경제의 70%를 쥐고 있으며, 300명이 넘게 노벨상을 따낸 겁니다. 그러니 몇 백만 원짜리 과외나 조기유학보다 우선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세요. 그런 자식은 절대 나쁜 길로 가지 않을 뿐더러, 만민 위에 뛰어나고 높은 자가 됩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6:5~7). 그리고 부부에 대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선 아내들에게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엡5:22) 하십니다.
남녀평등, 아니 여성상위시대에 무슨 그런 구태의연한 말씀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법이 이런데 전들 어쩌겠습니까. 하나님은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았고, 그의 몸에서 여자가 났기 때문입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주’라 불렀듯(벧전3:6), 그런 마음으로 남편에게 순종하면 남편의 마음이 절대 다른 곳으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와스디가 남편인 아하수에로 왕의 말에 순종치 않았다가 어찌 되었는지 에스더서를 읽어보세요. 현숙한 여인이 가정을 일으킴을 잊지 마세요(잠31). 그리고 남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5:25).
분명히 자기 몸을 사랑하듯 아내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옛말에 “아내와 북어는 사흘에 한 번 패야 맛이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천하에 못난 놈들이 만든 말입니다. 자기 몸을 사흘에 한 번 패보십시오. 온몸이 다 멍들고 안 쑤시는 곳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사랑했듯이, 야곱이 라헬을 사랑했듯이, 그리고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듯 아껴야 합니다.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7).
불행한 가정은 지옥을 미리 체험하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습니다. 아무도 불행한 가정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방법을 몰라서 불행한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대로 살면, 그리고 지금의 일상에 감사하면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주의 이름으로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당신의 일상 속에 있다
돈으로 집을 지을 수 있으나 가정은 세울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