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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사랑을 잃으면 결혼에 골인할 수 없다 ( 요7:37~39 )

362호 · 2007-01-31

가끔 갈증을 느낄 때가 있으시죠? 이것은 우리 몸에 수분이 부족하다는 신호랍니다. 우리 몸의 70%가 물로 되어 있는데, 물이 부족하면 갈증을 느끼게 되고, 또 우리 몸이 제대로 정화되지 못함은 물론 영양소를 운반하는데 효과적으로 작용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물을 충분히 마셔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에 있는 의학박사이자 제 영어통역관인 임 박사는 늘 물통을 들고 다닙니다. 제가 임 박사에게 “왜 맨날 물통을 들고 다니느냐?”고 했더니 그가 하는 말이 “하루에 물을 최소 2리터 정도는 마셔줘야 몸의 순환이 잘 이루어집니다. 많은 영양소가 공급되어도 물이 충분하지 못하면 그것은 결국 독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물 대신 탄산음료나 커피, 차를 마시는데, 당장은 갈증이 해소되는 것 같지만 몸에는 그리 이로운 것이 아니라서 배에 가스가 차고, 더욱 갈증이 나게 되지요.”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영혼의 갈급함을 호소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갈급함을 없애려고 지식으로 혼을 채우고, 돈과 명예, 그리고 쾌락으로 육의 갈증을 채워보려 하지만 그 결과는 영혼에 가스만 더부룩하고 더욱 심한 갈증을 느끼게 되지요. 이것은 우리 몸이 콜라 같은 탄산음료가 아니고 물을 필요로 하듯, 우리 영혼도 세상의 것들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 물 같은 본질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것들을 마시면 배에 가스가 차듯 원망과 불평이 나오고, 신진대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심한 탈수현상으로 인하여 삶의 의욕이 없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자! 이제 당신을 돌아봅시다. 우리에게 불평이 늘고, 기쁨이 없고, 살 소망이 없어진 것은 환경 탓일까요? 아닙니다. 이는 당신 영혼의 갈급함이 빚어낸 현상입니다. 우리는 교회건물 없이 체육관에서 예배를 드려도 기쁘고 행복했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불평이 많아졌습니다. 환경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만 우리의 심령이 메말랐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또 예전에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다들 기쁘고 놀라서 난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당연한 듯 무덤덤하게 여깁니다. 성령의 역사가 예전만 못해서 입니까? 아닙니다. 물이 부족하면 영양소가 각 처소로 공급되지 않듯, 탈수현상으로 인해 감격과 감사라는 신진대사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급한 것은 환경변화도, 여건의 변화도 아닙니다. 바로 심령의 갈증을 해소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주님이 주시는 생수는 바로 성령입니다. 이 생수 곧 성령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이 생수에 잠겨 있으면 영·

혼·육이 원활하고, 삶에 노폐물이 다 빠져나가 막히는 것이 없어지니 삶이 건강하고 윤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수가성에서 주님은 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납니다. 그는 삶의 갈증을 채워보려고 남편을 다섯이나 갈아치우고 여섯 번째 남편과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여인은 탈수상태였습니다. 주님은 그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수를 마시게 했습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3,14). 평생 갈증에 허덕이었던 그 여인은 주님이 주신 샘물을 마시고는 바로 생기를 찾고, 활기를 찾아 수가성을 뒤엎는 주님의 증거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은 자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샘물을 받아 마신 자입니다. 그런데 왜 요새 시들시들하고, 목말라 하느냐 하면 그것은 성령의 충만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샘물은 안에서 펑펑 솟아져 나오는 것이지만 우리가 펌프질을 해야 길을 수 있는 것입니다. 즉 기도해야 성령의 충만함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저는 외국에 나가면 휴대폰을 비유로 자주 설교합니다. “휴대폰이 제 아무리 최신형이라고 해도 배터리가 충전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지 않습니까? 전화를 걸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으며, 각종 서비스를 받을 수 없듯,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잃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닌 무용지물에 불과합니다.

성령,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떠나시면 우리는 그저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일 배터리를 충전하듯, 매일 기도하여 늘 성령이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왜 이 땅에 오셨는가, 성령이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성령의 열매는 무엇인가를 우리는 잘 압니다. 알면서도 우리는 성령을 사모하지 않고, 충만함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신앙이 나태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줄 압니까?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열 처녀의 비유로 알아봅시다.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가 있는데 그들은 모두 등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 중 다섯 처녀는 그릇에 기름을 담고 있었으나 나머지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않고 등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신랑이 왔을 때, 기름을 준비한 처녀들은 등을 밝히고 신랑을 맞으러 갔으나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처녀들은 불이 꺼져가서 결국 신랑에게 외면을 당하고 맙니다. 기름은 성령입니다. 기름이 없어 불이 꺼진 등은 성령이 상실된 심령을 가리킵니다. 그 결과는 기름이 없는 다섯 처녀와 같은 꼴이지요.

모든 것이 다 떠나도 성령이 떠나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왕을 잘못 세워서 분열되고, 열국들이 강해서 다른 나라의 속국이 되고 포로가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떠나셨기 때문에 멸망한 것입니다. 에스겔서에 보면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 감람산으로 옮겨진 후 동쪽으로 사라짐으로써 정죄를 받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겔8~11). 다윗이 밧세바를 취한 중죄를 범했을 때도 성신이 떠나지 않기를 기도했던 것은 주의 성신이 떠나면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51:11).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이 떠나시면 우리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것이고, 물 떠난 물고기와 같습니다.

혹자들은 예수를 믿으면 다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너희가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했노라고 했습니다. 한 건물에 다른 교회 성도와 우리 성도가 같이 일을 했답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는 성령을 받았고, 다른 교회 성도는 아직 성령을 체험하지 못했는데, 그 성도가 보니까 자기는 일하다 틈틈이 기도하는데, 우리 교회 성도는 기도하다가 틈틈이 일을 하더랍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생활의 본이 되고, 일도 잘하고, 하는 일도 잘 돼서 우리 교회를 따라 나왔는데, 나온 첫 날 성령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성령을 받고 보니 몰랐던 세계가 보이고,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했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성령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곧 하나님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죄와 거짓을 버리고 삶의 회복과 삶에서의 기적을 맛보길 원하십니까? 성령을 받으면 됩니다. 컵에 공기를 다 빼내는 방법은 진공기로도 안 되고, 컵 안에 물을 가득 부어야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다시 성령의 충만함을 입읍시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과 성령의 열매로 세상과 내 삶에 빛과 소금이 됩시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엡5:16~18). 할렐루야!

컵 속의 공기를 빼내려면 컵 안에 물을 가득 부어라

성령이 상실된 심령은 물 떠난 물고기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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