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 (사 1:18~20)
어린 아들이 아버지가 귀히 여기는 도자기를 깼습니다. 그가 놀라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그 집에서 일하는 종이 그것을 보고는 주인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련님, 이제 어쩌실 겁니까? 이 사실을 주인나리가 아시면 아마 도련님은 회초리로 많이 맞으실 것이고, 어두운 방에 며칠 동안 갇혀 지낼 지도 몰라요.” 그러자 어린 도령은 걱정이 태산 같이 밀려와 건들기만 해도 바로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종이 도령을 위로하는 듯 제안 하나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도련님, 제가 이 일을 눈감아 드리고 주인나리께 이르지 않을 테니 제가 시키는 대로 하시겠습니까?” 땅이 꺼져라 하고 한숨을 쉬던 어린 도령은 금방 얼굴에 희색이 돌았습니다. “내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 제발 아버지께 이르지만 말아주.” 그렇게 해서 어린 도령은 그 시간 이후로 종이 시키는 대로 종의 잔심부름도 하고, 어머니가 보지 않을 때 걸레질도 하며 갖은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흘 정도 일을 하고 나니 온 몸이 아팠습니다. 곱게만 자라다 갑자기 험한 일을 하니 그럴 수밖에요. 어린 도령은 자리에 누워 생각했습니다. ‘더는 죽어도 일을 못하겠으니 차라리 아버지께 다 고하고 매를 맞고 말자.’ 그는 벌떡 일어나 아버지께 갔습니다. “아버지, 제가 죽을죄를 졌습니다. 며칠 전에 제가 아버지가 아끼는 도자기를 깼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비도 알고 있단다. 또 네가 그것 때문에 겪은 일도 알고 있단다. 진작 아비에게 말하지 그랬니?” 어린 도령은 아버지의 반응에 놀랐고, 진작 말씀드리지 않은 자신을 후회했습니다. 마당에 나오자 종이 말했습니다. “도련님, 오늘은 나무를 좀 쪼개주세요.” 그러자 도령이 “이젠 안 해. 나 아버지께 다 말씀드렸거든. 나는 자유야.” 하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악한 마귀는 그 종처럼 우리에게 다가와 말합니다. “넌 죄인이야, 네가 지난번에 거짓말하는 거 내가 다 들었어.”, “넌 간음했잖아. 그러고도 얼굴을 어떻게 들고 다니냐?”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위축되고 주눅 들게 하고,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하여 마귀의 손아귀에 가둬두려고 합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더럽고 추한 죄로 가득한 죄인입니다.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그러나 죄인인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가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바로 죄인인 우리를 부르러 이 땅에 오셨으며,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사 피 흘려 우리 죄를 대속하고, 속량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2:17).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기에 우리는 이제 죄인이 아니라 의인인 것입니다. 대속(代贖)이 무엇이고 속량(贖良)이 무엇입니까? 대속은 대신 죄 값을 치르셨다는 것이고, 속량은 죄의 속박 하에 있는 포로나 노예를 속전을 주고 되사서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마귀의 종도, 죄인도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죄에서 놓임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얼마 전에 제가 택시를 탈 일이 있었습니다. 가는 도중에 제가 택시기사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택시기사 아저씨가 이러더군요. “예, 믿어야지요. 그런데 지은 죄가 너무 많아서 교회에 나갈 수가 없어요.” 제가 바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봐요 기사님, 때가 없는 사람이 목욕탕에 가겠습니까? 때가 있으니 목욕탕에 가는 것 아닙니까? 죄가 없다면 뭣 하러 교회에 나갑니까? 죄가 있으니 대속할 예수가 필요한 것 아닙니까? 예수님은 우리처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목욕탕에 가서 비누로 때를 닦아내면 몸이 깨끗해지듯 예수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닦아내면 아무리 주홍 같은 죄라도 다 씻김을 받습니다.” 그는 백미러로 저를 힐끔 보더니 이제는 교회에 나가겠노라 약속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보는 것이 죄요, 듣는 것이 죄입니다. 매일 매일이 죄 가운데 살기 때문에 매일 회개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침에 깨끗한 와이셔츠를 입고 나갔어도 저녁때면 목에 때가 껴서 비누로 빨아야 하는 것처럼, 예수의 보혈로 매일 죄를 회개하면 정결케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단 번에 자신을 드려 우리 죄를 사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매일 짓는 자범죄만 회개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지식이 없어 두려움 속에 떨고 사는 것입니다. 비누가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사람이 ‘설마 저것으로 문지르면 옷이 깨끗해질까’ 했습니다. 그러나 비누를 사용한 사람들마다 깨끗한 옷을 입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제 우리가 예수를 믿어 그의 피로 정결함을 입었으니 아무도 당신을 손가락질하지 못할 것이며, 정죄하지 못할 것입니다. 감히 누가 하나님의 자녀를 송사하겠으며, 누가 하나님의 자녀를 정죄한단 말입니까?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마틴 루터가 기도를 하는데 마귀나 나타나서는 “넌 죄목이 90가지도 넘어.”그러더랍니다. 그래서 루터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아니, 난 죄목이 100가지도 넘지. 그러나 예수가 다 사했어.” 그러자 마귀가 도망치더랍니다. 그래서 루터는 당당히 종교개혁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도 예수의 공로가 아니면 절대 목사가 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죄인 중에 괴수인 제가 목사가 된 것은 오직 내 죄를 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음입니다.
당신이 아직도 죄인인 까닭이 무엇인 줄 압니까? 우선은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죄요, 다음은 믿고 회개한 것을 믿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회개한 것은 사함 받았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회개한 것을 절대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십니다. 어느 아비가 자식의 죄를 자꾸 들추겠습니까? 돌아온 탕자를 맨발로 뛰어나가 맞이한 아비와 간음한 다윗을 용서하신 하나님, 자신을 배반한 베드로를 다시 쓰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아무도 다시 그 일로 추궁하지 않았습니다.
결혼에 실패했습니까? 남에게 말 못할 과거가 있습니까? 그것 때문에 죄 사슬에 매여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까? 당신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그 분을 믿으면 죄의 사슬이 풀릴 것이고 자유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