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쇠사슬을 벗어라 (삼하 12:1~25)
10여 년 전 목포 집회 중에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한 여인이 단상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녀는 감정의 기복이 매우 커서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했습니다. 제가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아 보았지만, 그녀는 히죽히죽 웃기만 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우선되어야 할 것이 있음을 깨닫고는 그녀를 데리고 온 사람에게 ‘왜 이 사람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물었습니다.
이유인즉 그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초년생으로 작은 회사에 들어갔는데, 직장 상사가 그만 그녀에게 못된 짓을 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어리기만 했던 그녀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직장을 그만 두고 두문불출하며 직장상사에 대한 적개심으로 몸을 떨고 있었는데,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 정신에 이상이 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녀를 감싸 안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을 용서해라. 네가 살기 위해서라도 그를 용서해라.” 그리고 계속 찬송을 불렀습니다.
한 10분쯤 찬송을 하고 있는데 그녀가 막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녀를 안고 계속 찬송을 했습니다. 한참을 통곡을 하던 그녀는 “이제 용서할게요. 이제 용서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주었습니다. “하나님, 이 딸이 그를 용서했사오니 이 딸의 아픔을 치료해주세요.” 그녀는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고는 깨끗이 치료함을 받았습니다.
마음에 원한이나 미움, 시기, 질투, 죄책감 등을 품는 것은 독을 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독이 계속 쌓이면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1984년에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유출사건이 이를 비유하기에 적합한 듯합니다. 원전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이 사고는 원전 구조물 상부가 무너지면서 크레인이 노심(爐心)을 덮쳐 파괴됨으로 발생된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원자로 구조물이 내부의 반응을 견디지 못해 폭발하고 만 것입니다.
그 사고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그 후유증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고생하고 있습니까? 우리 안에 원한이나 미움, 죄책감이 누적되는 것도 이와 같은 결과를 낳습니다. 그것들이 가득차면 내 육체는 이것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육체가 병들고, 정신적으로 타격을 입음은 물론, 내 가족에게까지 후유증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
과거를 돌릴 수 없다면 툴툴 털어내는 것이 상책입니다. 내게 한 맺히게 했던 자를 용서하고, 내게 상처 입혔던 자와 내가 저지른 죄를 잊어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 말입니다. ‘용서가 가장 큰 복수’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저는 다윗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골리앗을 무찌르는 용맹함이 그에게 있어 좋고, 수금 등에 능한 음악가이며, 시편에 주옥같은 시를 적은 문필가여서 좋고,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과의 사이를 볼 때 우정의 사나이요, 사울을 끝까지 죽이지 않는 의리의 사나이여서 좋고, 자신의 잘못을 즉시 회개할 줄 아는 진실한 사람이어서 좋습니다.
그런데 오늘 또 다른 그의 장점을 발견하고 저는 다윗에게 더욱 반했습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자신의 충신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처, 밧세바를 자기 아내로 취했는데 그 둘 사이에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이미 선지자 나단이 하나님의 진노로 인하여 죽을 것이라 예고된 아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이를 치시매 그 아이가 심히 앓자 다윗은 아이를 위하여 금식하고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이레 만에 죽었습니다. 다윗의 신복들이 아이가 죽은 것을 고하지 못하고 있을 때, 수군거림을 듣고 다윗이 묻습니다. “아이가 죽었느냐?” 신복들이 아이가 죽었다고 하자, 다윗은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하나님 전에 들어가 경배하고는 돌아와서 음식을 먹었습니다.
신복들이 보기에 다윗의 행동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아니, 아이가 앓아누워있을 때는 금식하고 난리더니 죽었다니까 오히려 괜찮네?’ 다윗이 말합니다.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시방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삼하12:22,23).
맞습니다. 다윗의 말은 ‘돌이킬 수 없으니 잊겠다’ 이것입니다. 성경에는 ‘내가 밧세바를 취해서 이런 변을 당했구나.’라고 한탄하는 대목이 없습니다. 그는 이미 나단이 책망할 때 침상을 젖는 회개를 했기 때문에 더는 과거의 일을 되새김질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솔로몬 같은 더 좋은 아들을 주사 위로하셨습니다. 당신도 다윗처럼 그래야 합니다.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한 집사님이 제게 상담을 왔습니다. 그 집사의 몰골로 보아 굉장히 힘든 일을 겪은 듯 보였습니다. 사연인즉 남편이 친정에 좀 다녀오라고 해서 배려하는 마음이 고마워 친정에 갔다 좀 일찍 돌아왔는데, 안방에 들어가 보니 남편이 다른 여자와 침대에서 뒹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장면을 보고 환장하지 않을 여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 집사는 그 분을 삭이지 못하여 화병이 들었고, 간혹 정신적인 발작을 일으키기까지 한다며 울먹였습니다. 저는 그 집사에게 “용서하라면 무리겠지만, 자신을 위해서 그것을 잊도록 노력하십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그 집사는 “목사님 같으면 그것이 잊혀지겠느냐?”고 제게 항의 아닌 항의를 하더군요. 그렇지만 이미 일어난 일을 어찌 하겠습니까? 계속 그것을 가슴에 품으면 남편이 아픈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픈 것을요. 엎어진 물이라면 걸레로 닦아내는 것이 상책 아니겠습니까?
농약이나 독극물을 마시면 병원에서 희석시켜야 살아나듯, 마음에 독을 이제 예수의 사랑으로 희석시켜 용서해 버려야 당신의 육체가, 혼이, 영이 살아날 것입니다. 용서 못할 사람이 있습니까? 과거의 쇠사슬에 매여 괴로워하고 있습니까? 일흔 번의 일곱이라도 용서하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이제 용서하고, 주홍같이 붉은 죄일지라도 다시는 생각지도, 기억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죄의 사슬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읍시다. 용서만이 자유로 갈 수 있는 열쇠이며, 진리만이 자유케할 수 있는 첩경입니다.
커튼을 걷어내야 빛이 들어오게 됩니다. 마음에 어두운 것들, 무거운 짐을 다 벗어 던질 때, 밝은 미래가 당신을 향하여 질주할 것이고, 당신을 위하여 더 좋은 것들이 예비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
과거지향적인 사람이 되지 말고 미래지향적인 사람이 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