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구한 것은 결코 의심하지 말라 (약 1:1~8)
지난 우크라이나 집회를 위해 출국하려고 인천공항에 나갔을 때, 공항로비에서 이주도 목사를 만났습니다. ‘웬일이냐?’고 묻자 그는 제게 한 보고서를 내밀며 ‘이것을 꼭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비행기 안에서 읽어보겠노라고 약속하고는 탑승했습니다. 비행기에 올라 그 보고서를 읽다가 저는 그만 깜짝 놀랐습니다. 현재 이주도 목사는 중국인 선교를 담당하고 있는데, 그 보고서에는 현 국내에 들어온 중국인들의 수와 분포지역, 그리고 그들의 생활반경 및 동향, 나아가 국내에 있는 교회들이 중국 선교에 쏟는 비중과 관심도까지 정말 하나 빠짐없이 다 조사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저는 정말 그 보고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주도 목사는 엄마제비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새끼제비처럼 저를 기다리다가 제가 귀국하자마자 저를 안산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주도 목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안산은 중국 선교의 본거지로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안산은 6만여 중국인이 밀집하고 있어 새로이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어 있는데, 거기에 ‘중국인 전용 교회’를 지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단번에 ‘OK’했습니다. 이주도 목사를 비롯한 여전도사들과 몇몇 성도들이 자기 집까지 드리면서 교회를 짓겠다고 하고, 완벽한 사전조사와 무엇보다 그들의 합심기도가 있는데 어찌 감동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건물을 계약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오래 전 이주도 목사가 제게 전해준 꿈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는 저에게 ‘목사님이 중국에 가서 말씀을 전하시는데 그 복음의 파장이 남쪽 광조우로부터 북쪽으로 마치 도미노현상을 일으키는 것처럼 전 중국을 뒤엎었습니다.’라고 했었습니다. 저는 그 꿈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요셉의 꿈을 야곱이 마음에 두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 꿈이 이주도 목사를 통해 태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주도 목사의 모습이 마치 젊은 시절 제 모습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는 중국인 선교에 대한 꿈을 가슴에 품은 후, 흔들림이 없이 앞만 보며 뛰었습니다. 그의 보고서 한 장에는 그간 그가 얼마나 중국인 선교를 갈망했으며, 연구했고, 노력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주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자신의 말대로 ‘중국을 예루살렘화’ 하는데 초석이 될 것입니다. 제자는 스승을 닮는다더니 그는 어쩜 저를 쏙 빼어 닮았는지 정말 대견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저는 ‘세계교구’라는 분명한 목표를 놓고 달렸습니다. 철산리에서 단 한 명의 성도를 놓고 시작하여 채 20년이 지나지 않아 그 목적을 이룬 것은 제가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꿈을 잡고 귀는 막고 오직 앞만 보며 달렸기에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중국 선교에 대한 꿈도 이주도 목사를 통해 이루어질 것을 저는 믿습니다.
저는 여러분도 자신이 설정한 목표나 자신의 꿈을 향해 달릴 때, 여러분의 믿음이 흔들리지 말 것을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요동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약1:6).
왜 마음이 흔들리는 줄 아십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견고한 진이 있기 때문입니다. 견고한 진이란 세상적인 학문이나 이론을 일컫습니다. 믿음이란 초자연적인 것이며, 초현실적인 것이며, 초논리적인 것이기에 세상의 학문이나 이론의 잣대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봐, 자네도 배울 만큼 배운 사람 아닌가. 생각을 해보게나. 그게 가능할 것 같은가?’ 하며 당신의 믿음을 흔들어댑니다. ‘사람들 말이 맞을 지도 몰라. 믿음으로 다 된다면 못 살 사람 없고, 병들 사람이 없게?’ 하고 갸우뚱하는 순간, 믿음의 공든 탑을 일순간에 무너뜨린 꼴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10:5).
베드로는 전문 어부였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밤새 그물을 던졌어도 단 한 마리 건지지 못했을 때, 예수님이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러면 얻으리라’(요21:6) 하셨습니다. 이것은 절대 그의 이론과 경험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지식과 경험들을 버리고 오른편에 그물을 던졌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잡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담이 높으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게 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과 가로막힌 담이 높은데 어찌 믿음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지식이 가득하면 하나님의 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게 됨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가말리엘 문하에서 교육을 받은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난 의라’(빌3:8).
한 번은 미국에 있는 땅끝예수전도단 회원들이 저를 찾아와 호텔에서 저녁을 같이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그들은 제게 미국 명예 시민권을 보이며 “목사님, 미국을 업어야 세계를 공략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저는 그 시민권을 접시 밑에 누르면서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께서 저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저는 하나님을 업고 뛸 것입니다. 그래야 제 목표인 세계교구화의 꿈이 실현될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대로 미국 시민권이 있으면 여러모로 편리하고 득이 될 것은 사실입니다.
그들 생각에 제가 스스로 복을 차내는 사람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저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믿음으로 가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랬기에 오늘날 70여 개국에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제가 만일 미국 시민권을 이용했더라면 하나님은 제게 관여하시지 않았을 것이고, 저는 처음이야 잘 나갔겠지만 곧 미끄러져 실패의 늪에 빠졌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목적한 바가 더디 이루어지거나 꿈이 멀어질 때 하나님을 탓하거나 남을 탓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돌아다보면 자신이 흔들리고 있는 탓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뿌리가 흔들리는 나무에 열매가 맺힐 리 없지 않습니까?
요셉은 형들의 곡식단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과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자기별에게 절하는 꿈을 꾸고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그는 단 한 번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애굽으로 팔려가는 절망의 늪에서도,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러더니 약관의 나이에 대국의 국무총리 대신이 되었던 것입니다. 믿음은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미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내가 가진 쥐꼬리만한 지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가면, 목적지와 목표물이 나를 향해 달려올 것입니다.
지금 당장 그 견고한 진을 파해버리십시오. 그 진은 당신이 세웠기 때문에 당신이 허물어야 합니다. 목적을 향하다 여리고 같은 문제가 올 때 일곱 바퀴 돌고 소리를 지르면 분명 무너질 것이고, 홍해 같은 장벽이 앞을 막을 때 지팡이를 들어 명하면 길이 날 것입니다. ‘말도 안 돼, 그런다고 해결되나?’ 하는 부정적인 소리에는 귀를 막아야 합니다. 긍정은 긍정을 낳고 부정은 부정을 낳는 법입니다. 뜻을 세우고 목표한 바를 향해 포기함 없이 달려가는 믿음 앞에 장애물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요동치 않는 반석 같은 믿음으로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여러분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의 뿌리가 흔들리면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긍정은 긍정을 낳고 부정은 부정을 낳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