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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경고를 무시하면 재앙을 피할 수 없다 (마 24:35 ~51)

289호 · 2005-09-08

뉴올리언스에 불어 닥친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하여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했고, 도시 전체가 수몰되었습니다. 거기에 약탈과 방화까지 잇달아 도시가 완전 마비되어 버린 것을 우리는 날마다 외신을 통하여 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고된 재앙이었습니다.

사상 유례 없는 엄청난 위력의 허리케인이 뉴올리언스에 상륙할 것을 매스컴은 몇 주 전부터 예고하며, 어서 대피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 소식이 한국에 있는 우리에게까지 들릴 정도였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늦장 대응은 물론 아예 그 경고를 무시했던 것입니다. ‘설마 집이야 날아가겠어? 밖에 나가지 않고 집 안에 있으면 되겠지. 애들 학교는 어떡하고 다른 도시로 가나?’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바로 코앞에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들이 당한 결과는 자업자득인 셈입니다.

경고를 무시하는 자에게 돌아올 것은 멸망과 재앙뿐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경고를 무시해 놓고 결과에 대해서는 남의 탓을 하고 있습니다. ‘비 온다’는 날씨 예보를 무시하고 우산을 들고 나가지 않아 비를 흠뻑 맞고는 ‘이놈의 하늘은 왜 변덕이야?’ 이런다는 겁니다.

비 맞은 옷은 갈아입으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여기 듣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엄한 경고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16:15). 주님은 성경을 통하여, 많은 선지자와 사도, 그리고 주의 종을 통하여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1:11).

그러나 이 경고에 대해 세상의 반응은 뉴올리언스 시민들과 같습니다. “누굴 바보로 아는 거야? 예수는 소설 속의 인물에 불과해.” 더러는 “아직은 안 오실 거야. 설마 내 생전에 주님이 오시기야 하겠어?” 뉴올리언스의 시민 중에 허리케인에 대한 지식이 없어 대피하지 못한 자나 경고를 듣고도 믿지 않아 주저한 자나 같은 재앙에 휩싸였습니다. ‘지뢰가 있으니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문을 글을 몰라 못 읽은 자가 지뢰를 밟으면 지뢰가 터지지 않고 참아 줍니까? 예수를 몰라서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을 몰라도, 예수를 알지만 깨어 있지 못해 재림을 준비하지 않아도 버림받는 것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곧 오십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24:32,33).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지칭한 것입니다. 그 이스라엘이 가장 번성할 때면 주님이 가까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6일 전쟁을 통하여 이스라엘군의 강력함이 증명되었고, 세계 경제를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또 주님은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될 때 오신다고 했는데(마24:14), 땅 끝인 이스라엘에도 복음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주님이 곧 오신다는 증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노아는 100여 년 동안 배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의 강포함이 땅에 가득함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물로 그들을 쓸어버리려고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가족 외에 아무도 이 일에 관심을 두는 자가 없었고, 오히려 노아의 행위를 비웃고 놀렸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매 40주야 동안 비가 쏟아져 세상은 물로 덮이고 말았습니다. 주님의 임재도 이럴 것입니다. 세상은 주님의 재림을 외치는 자를 비웃고, 경고에 코웃음을 치나 주님이 오시는 날, 그들은 자신들이 들어갈 방주가 없음을 알고 땅을 칠 것입니다. 노아 때는 물로 심판하신 하나님은 이제는 불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경고를 무시하지 맙시다. 소돔과 고모라에 죄악이 관영하자 여호와께서 그 성을 멸하기로 작정하시고 두 천사를 롯에게 보내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내라 그들에 대하여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로 이곳을 멸하러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창19:12,13)고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롯이 나가 딸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이 말을 전하니 사위들은 “장인어른, 농담하지 마십시오.” 라고 응수했습니다. 장정들인지라 끌고 갈 수도 없고 해서 롯은 아내와 딸들만 데리고 성을 빠져나왔고, 사위들은 유황과 불에 싸여 파국을 맞았습니다.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도 경고의 나팔을 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우상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열방에 붙이시고, 그들에게 속하게 하신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에레미야가 눈물로 시드기야 왕에게 ‘왕과 백성은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그와 그 백성을 섬기소서 그리하면 살리이다’(렘27:16)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경고를 무시했고, 결국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는 요나의 외침을 들은 니느웨 사람들은 왕을 비롯해 심지어 짐승까지 금식을 하며 회개하여 하나님의 재앙을 막았습니다. 사악한 자도 경고를 받아들이니 재앙을 피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경고란 ‘재앙을 막아 줄 의사’가 있음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재앙을 내릴 것이 목적이라면 절대 경고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6,25 전쟁 때, 북한은 전혀 사전경고 없이 쳐들어왔습니다. 왜냐하면 남한을 공략하여 적화통일을 하려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계속 경고하심은 사랑하신 연고요, 그들을 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주님이 지금 우리를 향하여 경고하시는 것은 모든 영혼이 구원의 반열에 들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경고를 협박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준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경고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준비하는 것으로 보여 지는 것입니다. 뉴올리언스에 허리케인이 온다는 경고를 받아들인 자는 그 도시를 떠났습니다. 그 경고를 듣고도 ‘알았어, 알았다고’ 하며 그 도시를 떠나지 않는 자는 경고를 이해는 하나 받아들인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재림의 경고를 받아들인 자는 재림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치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처럼 말입니다. 늘 깨어 있어 기도하고, 전도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으로 주님의 경고를 받아들인 것이 되는 겁니다. 주님이 언제 오시든 들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자보다 어리석은 자는 없습니다. 결혼을 꿈꾸는 청춘이 결혼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마땅한 배필이 나타났을 때 어찌 수월하게 결혼하겠으며, 준비 없이 어찌 경제활동이 없는 노후생활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겠습니까? 기업을 하겠다고 하면서 정보 수집은 물론, 인재도 모으지 않는다면 말이 됩니까? 우리 인천예수중심교회가 이렇게 단시간 내에 새성전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미리미리 준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치 다윗의 철저한 준비로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세상사에도 이처럼 준비가 필요하거든 하물며 영원한 세계를 준비 없이 들어갈 수 있단 말입니까?

제가 오늘도 내일도 땅 끝까지 가는 이유는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라는 주님의 경고를 늘 가슴에 새기고 세상의 모든 것을 접고 뛰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 빈손으로 들림 받아 천국에서 아무런 상급이 없다면 어쩔 겁니까? 천국은 철저한 계급사회입니다. 그날 열 고을의 왕을 꿈꾸며 오늘을 준비합시다. 주님의 경고에 마이동풍(馬耳東風) 격이 되지 말고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철저히 준비하는 지혜로운 자가 됩시다. 할렐루야!

시련의 고통보다 후회하는 아픔이 더 크다

당신은 점검형입니까?수리형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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