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려면 먼저 네 말부터 다스려라 (마 12:17~37)
저는 원래 성격이 조급한 편인지라 무슨 일에건 말이 앞서고 실수가 많았습니다. 그런 점이 목회를 하는 저에게 여러 가지로 마이너스가 됨은 자명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생각하고는 입에 조그만 돌을 물고 다녔습니다. 입에 돌을 물고 다니다 보니 자연 말이 줄고, 할 말은 한 번 더 생각한 후에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당시 교회재정을 담당하고 있는 집사의 아내에게 작은 돌을 건네주었습니다. 그 집사는 신이 나서 자기 남편에게 “목사님이 내게 수석을 선물로 주셨어.” 하고는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남편은 대뜸 “그게 선물이라고 생각해? 내가 생각하기에는 당신이 너무 말이 많으니까 목사님이 입 좀 다물라고 주신 것 같은데?” 그들은 옥신각신하던 끝에 제게 진의를 확인하러 왔습니다. “그래, 말 좀 줄이라고 준 거야. 입에 돌 좀 물고 다녀봐.” 그들은 신실한 자들이었기에 제 뜻을 알고서는 그 후로 말에 신중하게 되었습니다.
말(言)은 말(馬)과 같습니다. 야생마를 그대로 두면 그야말로 천방지축입니다. 그것은 목적도 없고, 절제함도 없이 초원을 마구 뛰어다닙니다. 타고난 기질 그대로 사는 거지요. 그러나 조련사에 붙잡히면 점차 길들여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야 등에 탄 사람을 떨어뜨리려고 발버둥을 치고, 뒷발질로 위협적인 행동도 취해보지만 점차 순하고 얌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훈련되지 않은 말, 길들여지지 않은 말은 거칠고, 때에 맞지 않습니다. 마치 이는 야생마와 같아 남은 아랑 곳 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 다하고, 아무 때나 나서게 됩니다. 그러나 훈련을 통하여 말이 길들여지면 엄청난 변화가 오게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교육을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외국인이 경상도에 정착하면 우리나라 표준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경상도 사투리를 배우지 않습니까? 그것과 마찬가지로 불량한 성격의 소유자에게 길들여지면 말마다 욕설로 가득할 것이고, 유약한 성격의 소유자에게 길들여지면 말마다 ‘못한다’, ‘불가능하다’ 와 같은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말로 가득할 것이고, 세상적인 사람에게 길들여지면 세속적인 언어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어릴 때는 부모를 잘 만나야 하고, 커서는 친구를 잘 만나야 하고, 배우자는 물론 스승을 잘 만나야 하며, 가장 귀한 것은 목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우리는 참 목자이신 예수를 만나 그 분에게 말을 새로이 배웠고, 길들여졌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말에는 믿음과 덕이 있으며, 지식과 절제가 있고, 인애와 사랑이 곁들여 있습니다. ‘할 수 없다’는 세상의 말을 버리고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말에 길들여졌고, ‘오 리를 가자’는 말에 ‘십 리까지 가겠다’는 사랑의 말로 대답하게 되었으며, 은쟁반에 금사과 같은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처음 방문했을 때, 저는 참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때 우크라이나 1차 집회를 배설했던 최 목사님은 자기 교회에서 ‘부정적인 말에 면박주기’라는 이색적인 운동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내 팔자에 무슨 저택이야.’ 라고 부정적인 말을 하면, 이 말을 들은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지적하며 그 부정적인 말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한다고 합니다. 그 운동을 일 년 동안 실천했더니 성도들에게서 부정적인 말이 사라졌음은 물론이고, 가난하거나 실패했던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하여 점차 그들의 말과 생활이 달라지고 윤택해졌다고 합니다.
말은 곧 씨인데, 억지로 좋은 씨를 심어도 좋은 열매를 거두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약3:12). 그런데 부모들이 자기 자식들에게 ‘빌어먹을 놈’, ‘나가 죽어라’ 등 이런 말을 서슴지 않는 경우를 봅니다. 이는 자식 인생에 가시나무 씨를 한 말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가시나무 씨 하나를 뿌려도 인생이 가시로 가득할 텐데, 한 말이나 되는 씨를 뿌렸으니 평생 사방 가시밭길을 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진짜 그렇게 되라고 말했겠어요? 속 썩이니까 그냥 해본 말인데....” 실수로 밭에 씨가 떨어져도 싹은 납니다. 그래서 말의 실수를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약3:2).
말이란 불과 같습니다. 불은 우리에게 굉장히 유익하며 필요한 것임에 분명합니다. 불이 있어야 난방도 하고, 요리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불을 잘못 사용하면 강원도 속초, 양양의 산불처럼 무서운 재앙으로 변해 순식간에 재산을 앗아가고, 생명까지도 빼앗아갑니다. 즉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지만, 말 한 번 잘못해서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겁니다. 베드로는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물음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말해서 천국 열쇠를 받았지만,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시자 ‘그리 마옵소서’ 라고 말했다가 졸지에 ‘사단’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약3:6).
십 여 년 전에 한 집사가 제게 소형 녹음기를 선물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이것을 와이셔츠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제 말을 점검해봤습니다. ‘성도를 가르치는 목사로서 내 말은 몇 점이나 될까’ 해서 말입니다. 하루를 파하고 녹음된 것을 돌려 들어보니, 점수를 매겨본다면 99점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제 말은 거의 하나님의 말씀과 긍정적인 말, 희망적인 말로 가득했습니다. 옛날처럼 말에 조급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모두가 열심히 저 자신과 싸워 말을 길들였기 때문입니다.
삼국통일을 달성한 김유신이 청년시절 기녀인 천관녀를 만나서 서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유신이 천관녀에게 마음을 빼앗겨 학업을 게을리 하자 어머니가 걱정했습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천관녀를 멀리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래서 김유신은 다시는 천관녀의 집에 가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활쏘기 연습에 지쳐 말 등에서 꾸벅꾸벅 졸던 김유신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말이 천관녀의 집 앞에 서있는 것을 보자 화가 솟구쳐 그만 칼을 빼어들고 말의 목을 쳐버려 두 동강을 내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김유신의 말은 항시 천관녀 집으로 향하는데 길들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의 목을 벤 것은 김유신의 결단을 뜻합니다.
오늘 우리도 결단을 해야 합니다. 입에 재갈을 물려 훈련에 돌입해야 합니다. 더는 야생마처럼 막무가내여서는 안 됩니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3:8). 말은 사람으로서는 길들일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려질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고, 훈련받으면 독이 가득한 혀가 풀릴 것이고, 악이 가득한 혀가 선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쓴 물을 내던 입이 단물을 낼 것이고, 저주가 나던 입에서 찬송이 흘러나오게 될 것입니다.
욥이 끝까지 그의 입을 지켰던 것처럼 당신의 입을 지키십시오. 그래서 욥에게 갑절의 축복을 주신 결말을 성경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의 열매가 풍성함을 만인이 보게 합시다.
말 잘하는데 돈 안 듭니다. 학력도 필요 없습니다. 오늘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고 그 말을 가슴에 두면 입이 거룩해 지고,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키를 돌리는 방향대로 배가 가고, 핸들을 돌리는 대로 자동차가 가듯, 당신의 말대로 당신의 인생이 가게 됩니다. 좋은 말, 풍성한 말, 아름다운 말, 때에 맞는 말,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생을 운전하면 당신의 인생은 분명히 천국으로 인도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말의 입에 재갈을 물리듯 네 입에 자갈을 물려라
네 입을 다스려야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