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세계에 매력을 느껴라 (고전 12:1~31)
바다 위에서 보면 물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다 속 깊숙히 들어가면 그 안에 보배가 가득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온갖 물고기며, 산호, 해조류 들이 즐비합니다. 수박 겉을 보고 수박을 다 안다고 할 수 없듯이 모든 것은 깊이 들어가 봐야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구원 받는 믿음의 반열을 지나 은사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신앙의 깊고 참맛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의 싸움입니다. 다시 말해 동네 싸움이 아니라 영적 대전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을 한다고 하면서 막대기 하나 들고 나간다면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동네 싸움일 때야 막대기로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겠지만 전쟁에는 가당치도 않는 말입니다. 전쟁은 무기가 좋아야 이깁니다.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이 좋은 예입니다. 첨단의 무기와 신무기를 지닌 미국이 이라크를 손쉽게 점령한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영적 전쟁도 이와 같습니다. 영적 신무기가 있어야 넉넉히 이 세상을 이길 수 있고, 편안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며, 남을 이끌어 줄 수 있고, 남을 가르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성령의 은사를 받아야 하며, 그것을 더욱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고전12:1).
은사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신자들에게 주시는 다양한 은총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성령의 은사를 통한 역사는 창과 방패라 할 수 있습니다. 악한 마귀를 제거할 수 있는 창과 칼, 곧 무기요, 더불어 악한 것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방패인 것입니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6:16,17).
성령의 은사는 9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지적 은사인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이 있습니다. 지혜란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 곧 감추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며, 지식이란 곧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잠1:7). 고로 지혜나 지식은 오직 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또 신앙적인 은사로 믿음의 은사,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예언의 은사, 영분별의 은사가 있습니다. 믿음의 은사란 이적을 일으키는 권능적인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곧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 말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병 고치는 은사는 여러 가지 병을 고칠 수 있는 은사를 말합니다. 능력 행하는 은사는 초자연적인 이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즉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여기에 속합니다. 제가 귀신을 쫓는 일, 사이클 경기장에서 태양이 작열했을 때 예수 이름으로 태양을 가린 일, 학생 체육관에서 여름철에 찬 바람을 일으킨 일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우리 교회 노(老)장로님이 중풍이 와서 쓰러졌을 때 그의 아내 되신 권사님이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중풍을 일으키는 귀신아 가라.’ 하고 귀신을 내쫓아 장로님을 일으켰습니다. 이는 곧 은사란 누구의 전매특허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예언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깊은 뜻을 선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언은 교회에 덕을 높이고,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영분별의 은사란 은사 받은 것이 성령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가리는 것이며, 알곡과 쭉정이를, 나를 도울 자와 해칠 자를 가리는 것입니다.
또 방언의 은사와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가 있습니다. 방언이란 하나님과 비밀을 말하는 것으로 알아듣는 이가 없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 뜻대로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14:18). 방언 말하는 자는 방언 통역하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날 세계 70여 개국을 메주 밟듯 다닐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성령의 은사 때문입니다. 지혜와 지식의 말씀으로 사람을 감화시키고, 병 고치는 은사로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눈 먼 자를 보게 하며, 벙어리 된 자가 말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꼬부라진 것을 펴게 하며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방언으로 하나님과 교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며, 하나님의 깊은 속을 통달하여 장래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제 힘으로 어떻게 복음을 전하겠습니까? 무기 없이 어떻게 전쟁에 나가겠습니까?
그런데 왜 이런 신령한 것을 사모하지 않습니까? 돈 달라, 옷 달라는 잘 하면서 왜 성령의 은사를 구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매일 얻어맞고 넘어지고 깨지는 겁니다.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 있으면 누가 감히 덤비겠습니까.
100달러의 가치는 어디서나 동일합니다. 누가 100달러를 가졌든 100달러만큼만 충성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역사도 동일하게 기도와 믿음의 분량만큼 일어납니다. 하루 1시간 기도하는 자와 4시간 기도하는 자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기도와 말씀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이룰 때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성령은 회개한 자에게 오십니다. 깨끗하지 않은 그릇에 맑은 물을 담아도 탁해지는 법입니다. 회개하여 심령이 깨끗지 않으면 성령은 그곳에 찾아오실 수 없습니다.
가치를 알면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돈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돈 버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겁니다. 성령의 은사에 대한 가치를 알면 구하지 말래도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가치는 의욕을 창출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녹슨 연장을 갈아야 합니다. 군대에서 저녁 점호 전에 항상 총구를 닦고 기름 치지 않습니까? 그래야 언제든 방아쇠만 당기면 총알이 나가게 됩니다. 만일 총알이 장전되어 있는 데도 총알이 나가지 않는 것은 총구가 녹슬었기 때문입니다. 목사나 전도사가 능력이 없는 것은 총구가 녹슬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적군이 아군의 계급장 보고 도망갑니까? 아닙니다. 계급장 때문에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무기보고 도망가는 것입니다. 오히려 무기 없는 장교는 적군의 표적이 될 뿐입니다.
그러니 무장해야 합니다. 성령의 은사로 중무장하여 적군을 격파하고 승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는 교회가 두 부류로 나뉩니다. 문화적인 교회와 성령의 교회로 나뉘게 됩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에 자신의 영혼을 맡겨야 합니다. 옛날에 아궁이에 불을 땔 때 활활 타는 장작불에는 젖은 나무를 넣어도 잘 탑니다. 그러나 불이 덜 붙은 아궁에는 마른 장작을 넣어도 죽어버립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은 전염되는 것입니다. 뜨거운 곳에 가면 나도 뜨거워집니다.
그러나 미지근한 곳에 가면 나도 모르게 서서히 식어버리는 것입니다. 고로 소멸된 믿음을 살리려면 뜨거운 교회에 뜨거운 성도들과 함께 있어야만 됩니다.
무기가 없으면 무섭습니다. 밤길을 다녀도 호신용 무기가 있으면 겁이 나지 않듯, 우리 삶이 두렵고 무서운 것은 무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 악한 것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평안 가운데 삽시다. 적극적인 공격이 최대의 방어입니다. 성령의 검으로 어둡고 악한 것을 진멸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확장되게 합시다.
도토리를 그대로 두면 언제까지나 도토리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심으면 참나무가 되며 엄청난 도토리를 거둘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을 소멸하면 그 안에 잠재된 엄청난 능력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깨우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비밀을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이니 더욱 신령한 것을 사모하십시오.
고기도 먹어본 자가 잘 먹는다 신령한 은사를 경험하라
도토리 속에 참나무를 찾아라 그 안에 많은 참나무와 도토리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