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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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자와 죽이는 자의 차이

279호 · 2005-06-30

멕시코시티에서 께레따로(Queretaro)로 가는 길은 비행시간으로는 45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였으나 이륙시간까지 공항에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3시간이나 되었다. 차로는 2시간이면 간단하다. 우리는 두말할 것도 없이 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숨쉬기도 버거운 멕시코시티 공항에서 3시간이나 기다린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께레따로는 멕시코시티에서 약 200km 떨어져있는 인구 80만의 도시다. 집회를 배설한 하비엘 목사를 비롯한 여러 목사, 사모들이 우리 일행을 영접하러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이 너무도 밝고 기쁨에 차있어 이번 집회에 대한 밝은 전망을 갖게 했다.

두 도시 연속으로 이어지는 집회일정을 소화한다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다. 더구나 이처럼 폭염의 날씨라면 말이다. 다행히 께레따로는 베라크루즈보다는 날씨가 선선한 편이었다. 대신 바람이 매우 심하게 불고 있었다. 야외집회인지라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했다.

찬양으로 집회를 도와주던 미국 필라델피아의 김성자 전도사도 합류했다. 지난 토레온 집회 때 불협화음이 생겨 돌아간 이후 소식이 없더니 베라크루즈에는 오지 않았다. 총회장 목사님은 바로 전화를 걸어 “빨리 준비하고 다음 도시로 오라.”고 말씀하셨다. 총회장 목사님을 모시며 늘 느끼는 바는 하나님의 사람은 어찌되었든 남을 살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짧은 인생, 오늘 부르시면 가야하는데 살아있는 동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총회장 목사님은 농담으로라도 남을 판단하거나 비판하시는 일이 없다. 오로지 칭찬과 격려로 살리려 애쓰시는 모습을 본다.

김 전도사와 이 선교사 사이에 마찰이 있는 듯싶었다. 그런데 이 선교사는 인터넷을 통해 한국 교회의 예배실황을 늘 접하고 있었다. 주일예배 때 이시대 목사가 한 설교 중, 다윗과 요압의 이야기를 듣고 깨달은 바가 많았다는 것이다. 다윗은 아브넬 장군을 쓰기 원했는데 요압 장군은 다윗에게 방해가 된다고 여기고 그를 살해하고 말았다. 주인의 심중을 읽지 못한 것이다. 요압은 다윗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크게 쓰임을 받았지만 결국 다윗의 유언과 함께 버림 받고 말았다. 이 선교사 스스로 깨닫기를 ‘총회장 목사님이 부르시는데 내가 어찌 막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도 용납해야 한다.’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으로 살아 움직이며 골수를 쪼개는 힘이 있음을 절감한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불협화음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마음을 넓히고 더 큰 하늘의 상을 바라며 서로 용납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내가 어떤 취급을 받으면 어떤가?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많은 영혼들이 구원의 길로 인도된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우리가 그 어떠한 절망의 순간에도 소망을 잃지 않는 것은 그날에 면류관을 들고 반갑게 맞아주실 예수, 우리의 왕이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더 큰 것을 바라보자. 우리가 이 길을 나선 것은 오직 예수, 그분을 사랑하기에, 그분의 말씀을 믿기 때문이 아닌가. 이 땅의 부귀영화나 명예를 바라고 시작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하나님으로부터 직분을 받아 일하는 모든 자들이 깊이 새겨야할 일이다.

영적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길은 오로지 하나님께 전심으로 기도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집회가 시작되는 이튿날, 집회 장소에 가보았다. 넓은 공터에 천막을 높게 치고 단상을 꾸미며 조명트러스를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나 바람이 심하게 부는지 금방이라도 그 모든 것들을 날려버릴 것만 같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시설들에 대해 협조를 부탁하고 돌아와 바람을 잠잠케 해달라고 기도했다. 집회는 7시에 시작되어 총회장 목사님은 8시경에 단에 서실 계획이란다. 우리는 일찌감치 준비를 마치고 집회장으로 나갔다. 우루과이에서 카메라로 봉사하기 위해 합류한 라구나가 많은 도움이 되어주었다. 그는 이미 우리 집회의 속성을 잘 파악하고 있는 관계로 비록 말은 잘 안 통하지만 눈짓으로도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조명시설이 턱없이 부족했다. 단 아래 쪽에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가장 치명적인 것은 단 중앙에 계단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우리의 집회 속성상 중앙에 계단이 없으면 엄청난 차질이 생긴다. 분명 귀신들이 요동하면 단 위로 끌어올려져 예수 이름으로 떠나가는 장면들이 이어질 텐데, 계단이 없으면 단상과 단 아래 사이에 왕래가 불가능해진다. 더구나 단이 높게 설치되어 있어서 단상에서 내려오려면 뛰어내려야 할 판이었다.

우리는 즉시 하비엘 목사에게 중앙계단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다급히 준비를 요청했다. 부랴부랴 나무판들을 긁어모아 쌓아올리고 그 위에 긴 합판들을 올려놓았다. 좀 미비했지만 시간이 없었다. 이미 시간은 8시가 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날의 모든 준비가 어수선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천막 안에는 인파로 가득 차 뜨겁게 찬양하고 있었다. 바람이 불고 먼지가 날리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성령을 뜨겁게 사모하고 있었다.

정말 멕시코에 하나님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지난 2001년 싼 루이스(San Luis)라는 작은 도시를 시작으로 멕시코를 찾은 이래 4년 간 벌써 11개 도시에서 집회가 열렸다. 멕시코에 이토록 하나님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국기를 보면 독수리가 뱀을 물고 있는 형상이 그려져 있다. 또한 ‘멕시코를 축복하소서’라는 찬양이 울려 퍼지고 있다. 그리고 그 어느 나라보다도 목회자들이 단합을 잘 이루고 있다.

지난 후지탄 집회 때 집회를 방해하고 협조를 거부하던 어느 목사가 집회 마지막 날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고, 지난 베라크루즈 집회 때 역시 집회에 협조를 거부하던 어느 목사가 갑자기 쓰러져 벌써 석 달째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다는 소식이다. 하나님의 징계가 속히 이루어지고 있는 반증인데, 이는 멕시코에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는 계획을 속히 진행하시고 있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드디어 총회장 목사님이 단에 오르시자 몰아치던 바람도 어느 덧 잠잠해지고 있었다. 총회장 목사님은 어수선한 현장을 바로 잡고 성령의 임재하심을 위해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할 것을 제의하셨다. 영적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길은 오로지 하나님께 전심으로 기도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얼마를 기도했는지 갑자기 처처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더러운 귀신들이 정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하심이다. 세계 어느 곳을 가나 성령은 동일하게 역사하신다. 꼬리에 꼬리를 물 듯 귀신들린 자들이 단으로 끌어올려 왔다. 그리고 예수 이름 앞에 귀신들은 소리를 지르며 떠나갔고 병든 자들은 고침을 받고 춤을 추며, 마치 단상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즐비하게 누워있는 무리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단 위에 있던 사람들은 눈앞에서 그런 장면들이 펼쳐지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더구나 심하게 요동하며 토악질을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자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같았다. 성경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현장을 목도하는 그들에게 다른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멕시코 께레따로에 성령의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 바람은 그들이 이전에는 전혀 본 적이 없는 기사와 표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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