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예배에 참석했느냐 (막 5: 25 ~ 34)
인천예수중심교회가 기공 후 7개월여 만에 드디어 새로이 건축된 성전으로 이전하고 첫 주일예배를 드렸습니다. 새로이 건축된 성전에 들어가 이전예배를 드리는 감회가 남다르다보니 정말 기쁨을 감출 수 없습니다. 아직 준공까지는 더 공기가 남아있지만, 이 모든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그저 무한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단칸셋방에 살다 넓은 집을 사서 새로 이사한 기분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요? 아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말이 여기에 적절할 줄 압니다. 사람들이 내 집을 갖고자 하는 것은 소유의 기쁨도 크겠지만 무엇보다 그곳에서 마음껏 자유롭게 꿈을 펼쳐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로부터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된 것이지요.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을 가지게 되었다할지라도 지난 시절의 그릇된 사고방식이나 습관을 버리고 새롭게 변화하지 않으면 그 새로운 환경도 곧 예전의 더럽고 추한 환경으로 전락해버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새집에 들어왔으면 생각도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진취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더욱 환경을 깨끗이 하고 스스로도 변화된 환경을 누릴 수 있는 마음자세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지난 시절의 더럽고 불결한 환경,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과거를 다시 답습한다면 아무리 좋은 새집도 얼마 되지 않아 곧 더럽고 불결한 헌집으로 전락하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오늘 인천예수중심교회 식구들은 숭의동 시절을 마감하고 가좌동 시대를 힘차게 열었습니다. 아직 모든 공사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성전을 이전하고 첫 예배를 드리는 마당에 여러분들이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예배에 참석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전보다 교회도 커지고 잘 단장되었으며, 주차하기도 편해졌고, 그리고 무엇보다 더 이상 셋방살이가 아니라 내 교회건물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 가슴 벅차게 합니다. 그러나 지금부터가 오히려 중요합니다. 새집으로 이사했다고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그릇된 생각들을 잘라버리고 새로운 생각을 가져야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한강 가에서 잡아온 게들로 장을 담기 위해 항아리에 넣어두고 유심히 관찰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게라는 녀석들이 항아리 위쪽으로 올라가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하나같이 맨 위에 있는 놈을 끌어내리며 먼저 올라가려고 아우성입니다. 그러다보니 결국 한 몸도 못 올라가고 지독히 고생만 할 뿐입니다. 남이 올라갈 때 도와주고 협력하면 결국 다같이 사는 길이 열리는데 그런 건설적인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남이 잘되면 배가 아프고, 잘나가면 딴죽이나 걸려하고 헐뜯고 모함하는 썩어빠진 생각으로 어찌 아름다운 미래를 열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남이 잘되면 박수를 보내주고 축복해주는 자세로 바꿔야합니다. 생각이 멋져야 결과도 멋지게 산출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생각이 결과를 낳는다’(렘6:19)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도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내 마음 밭에 어떤 생각의 씨를 뿌리느냐에 따라 그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화가 복이 된다는 생각, 하나님은 나쁜 길로 인도하신 적이 없다는 생각, 반드시 좋은 길, 선한 길로만 인도하신다는 생각, 매사에 이처럼 긍정적인 생각의 씨를 뿌리면 그 씨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는 만고의 진리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나오는 혈루증 걸린 여인을 보세요. 그녀는 예수의 옷자락만 만지면 병에서 낫는다는 생각을 가졌기에 그 생각대로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소경 바디메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만 만나면 눈을 뜰 수 있다는 일념으로 그 누가 말리고 욕을 해도 옷을 벗어던지며 예수 앞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눈을 뜨는 축복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옥에 갇혀있으면서도 원망이나 불평하지 않고 범사에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생각을 갖더니 애굽 왕 바로 앞으로 인도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에스더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하더니 아하수에로 왕 앞으로 인도되어 다 죽게 된 이스라엘 전 민족을 구원하는 대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이만큼 생각은 무서운 힘을 갖습니다. 그러니 어떤 생각을 가져야겠습니까? 불도 두 종류의 불이 있지 않습니까? 어둠을 밝히는 불, 방을 따뜻하게 하는 불이 있는가하면, 강원도 산간 일대를 삼켜버린 무서운 불이 있습니다. 이처럼 생각도 남을 살리는 생각이 있는가하면 남을 죽이는 생각이 있습니다.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의 삐뚤어진 생각이 얼마나 엄청난 역사적 비극을 낳았습니까? 그러나 전구를 만들고야 말겠다는 에디슨의 생각은 2만회의 실패 끝에 나왔지만 전 인류의 삶을 놀랍도록 변화시켜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까? 우리 믿는 자는 어떻게든 남을 살리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가정을 살리고, 기업을 살리고 국가를 살리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는 없고 생각보다 무서운 파괴력은 없습니다. 빛의 속도가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돈다지만 생각의 속도는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대의 자산은 바로 생각입니다. 생각을, 상상력을 제한하지 말아야 합니다. 역사적인 명작들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바로 보이지 않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 아닙니까? 인류의 문명적 진보도 바로 그러한 생각들이 발현된 결과입니다.
사람은 마음속에 담은 대로 밖으로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생각의 주머니에 무엇을 담았느냐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쌀자루에서는 쌀이 나오고 똥자루에서는 똥만 나오는 법입니다. 여러분 속에 어떤 생각을 담고 어떤 말을 하느냐가 여러분의 인생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예수를 만나기만 하면 병에서 놓임 받는다는 생각을 가졌던 사람마다 그 생각대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베드로의 그림자만 밟아도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던 사람마다 병에서 놓임을 받았습니다.
바울의 손수건만 가져가도 고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도 동일한 치유의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생각을 가지기 바랍니다. 돈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학력도 소용없습니다. 나이와도 무관입니다. 오직 적극적인 생각과 진취적인 자세, 그리고 도전의식으로 하늘나라를 침노하기 바랍니다. 하늘나라는 침노하는 자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겠다는 생각이 결국 죄를 범하게 한 것입니다. 쭉정이 같은 생각, 염소 같은 생각을 버리세요. 천국은 영원히 좋은 곳입니다. 좋은 환경을 만들고 좋은 생각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인생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부유의 강이 넘치는 삶을 원한다면 먼저 환경을 깨끗이 하고 아름다운 생각, 아름다운 말로 삶을 색칠하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움직이고 감화 감동시키는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헌신으로 하나님께 충성 봉사하고 있습니까? 기도하면 응답 받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과거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늘이 중요합니다. 오늘은 과거의 종착역이요, 미래의 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작은 오점에 괴로워하지 말고 더 큰 미래의 캔버스에 아름다운 인생을 그려가기 바랍니다. 생각만 바꾸면 됩니다. 안되는 게 없다는 생각을 가지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는 대로 나타납니다. 멋진 생각으로 영, 혼, 육의 멋쟁이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은 생각이다
보이지 않는 생각으로부터 보이는 명작이 산출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