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는 타협이 없다 (고전 10:19~22)
저는 종손이고, 칠남매의 장남입니다. 그래서 명절이나 기일이 되면 꼭 제가 제사를 모시곤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예수를 영접하고는 ‘제사를 못 지낸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집안에 난리가 났습니다.
현재 대전교회 담임으로 있는 이역사 목사가 제 막내 동생인데, 그 녀석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이단옆차기로 저를 차는 것입니다. 감히 큰 형을 말입니다. 제사상은 날라 가고, 어머니는 우시고 정말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하나님이 제사 지내면 안 된다 말씀했다며 효(孝)란 살아계실 때 부모님 뜻대로 섬기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리고 절대 제사만은 못 지낸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네가 하늘에서 떨어졌냐?’고 하시며, 당장 집을 나가라고 하셔서 차에 옷가지 몇 개 넣고는 집을 나왔습니다. 그렇게 집을 나와 13년 동안이나 집에 찾아갈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보고 싶고 가족들이 그리웠지만 그 모든 것보다 제게는 하나님이 우선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제 어머니와 형제들도 다 예수를 믿어 제사를 지내지 않고 있습니다.
신앙에는 타협이 없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다 타협하여 해결점을 찾을 수 있으나 신앙만은 절대 양보해서도, 절충해서도 안 됩니다. 세상 모든 종교는 원수가 없으나 우리는 분명히 원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원수, 악한 마귀에게 절하는 것이고, 그를 높이는 것입니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전 10:20)
많은 성도들이 명절이 다가오면 고민에 빠져 상담을 하러 옵니다. “시댁이 믿지 않아서 제사를 지내는 데 어떡하죠?”, “저는 제사에는 참석하지 않지만 음식 장만은 해야 하는데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하고 물어봅니다. 그러나 제 대답은 좀 강경한 편입니다. “절대 제사는 안 됩니다. 제사 음식을 장만하는 것도, 제사 지내라고 돈을 내는 것도 안 됩니다. 도둑놈들이 남의 집을 털 때 망을 보는 자나, 담을 넘는 자나, 장물을 내다 파는 자나 다 같은 도둑입니다.
제사를 지내는 자나 제사음식을 만드는 자나 제사상에 돈을 대는 자나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명절에 부모님을 찾아뵙지도 않고, 가족과 어울리지도 않으면 덕이 안 됩니다. 지혜를 활용하십시오. 모임에 쓰는 돈을 구별하여 드리고, 음식도 구분해서 만들면 됩니다.” 물론 신앙이 성숙한 자는 아무 음식이나 먹어도 상관없지만 연약한 믿음이 걱정되어 드리는 말씀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피할 길과 지혜를 주실 것이며, 부모님께 평소에 잘 하면 분명히 이해해 주실 겁니다.
제사상을 잘 차리는 것이 효도가 아닙니다. 살아생전에 부모님의 속을 안 썩이고, 부모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고, 무엇보다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는 것이 진짜 효입니다.
신앙에 타협이 없는 자를 하나님은 사랑하사 그의 장래를 지키십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삼십일 동안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이든 구하면 사자굴에 넣는다’는 금령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하나님을 향하여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삼십일 동안이니 그동안만 속으로 기도하거나, 아니면 하나님께 양해를 구할 수도 있었을 텐데 다니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그는 하나님께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앞서 가서 사자의 입을 봉하셨던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느브갓네살이 만든 신상 앞에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던져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풀무불에 들어가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들은 풀무불 속에서도 하나님은 자신들을 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만일 그렇지 않다하더라도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선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대쪽같은 믿음입니까? 이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은 탄복하셨고, 주의 천사들을 급파하사 풀무불 가운데서 그들을 보호하신 것입니다. 당신들이 이들의 믿음을 본받아 이번 설날에 제사를 지내지 않고 신앙의 절개를 지킨다면 하나님은 당신을 분명히 위경에서 건지실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저는 제게 맡겨진 양을 바로 가르칠 사명이 있기에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이렇게 안위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 집 안은 제사를 안 지내니 그런 염려는 없어.’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우상에게 절한다는 것이 꼭 제사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다 우상입니다. 당신이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면 재물이 당신의 우상이며, 아내나 남편을, 그리고 자녀를 더 사랑하면 그것이 당신의 우상인 것입니다.
당신 마음속에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재물이나 권력이나 명예가 당신의 목적이어서 그것으로 가슴이 가득하다면 당신은 분명히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목적은 하나님이 되어야 하며, 당신의 목표도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재물이나 권력이나 명예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가룟 유다는 세상의 것을 목적으로 삼고 예수님을 이용하다가 저주 받은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는 병 낫기 위해서, 아니면 복 받기 위해서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하나님을 찾게 되는 발판은 될 수 있지만, 목적이 바로 서지 못한 자는 그 목적을 이루고 나면 하나님을 나 몰라라 하곤 합니다. 목적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병이 낫고, 예수 이름을 부르니 복이 오는 것입니다. 예수가 세상에 계실 때 많은 사람들이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찾아와 감사하는 자는 극히 적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그들에게 예수는 단지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당신의 삶 속에 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어떤 것이 먼저냐’ 하는 것이 신앙의 척도입니다. 성경도 ‘그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주신다’고 했습니다(마 6:33). 더 사랑하는 것에 먼저 손이 가게 되어 있습니다. 결혼한 남자들의 공통된 불평이 이것입니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아내가 자기 먼저 챙겨주더니, 아이가 생기고 나니 자기는 찬밥이라는 것입니다. 자식을 더 사랑하기에 아이가 먼저 되고 자동으로 남편은 순위가 밀려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먼저 챙기게 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그 분의 일을 먼저 챙깁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당신 속에 무엇인가 다른 것이 우상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선’, ‘하나님 제일’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저는 세상의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권력도, 명예도, 사랑도, 친구도, 가족도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내 주 예수를 위해서라면 그보다 더 한 것도 버릴 수 있습니다. 저는 다 버린 줄 알았습니다. 아무 것도 제게 남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전보다 더 큰 명예와 사랑과 친구와 가족을 제게 주셨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엄청난 복을 제게 안겨주셨습니다.
주님을 위해 버린 자는 더 좋은 것을 반드시 갚아주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30).
신앙은 좁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좁은 길이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절개만 지킨다면 그 길은 헤맬 필요도 없고, 갈등할 필요도 없는 평안의 길이 될 것입니다. 춘향이가 절개를 지켜 나중 신랑과 행복했던 것처럼, 우리도 신앙의 절개를 지켜 우리 신랑 되시는 예수와 행복하게 영원히 삽시다.
효란 부모님 살아계실 때 그 분 뜻대로 섬기는 것이다
세상 알기는 뱀처럼 지혜로우나 신앙만은 절대 타협하지 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