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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 장애는 장애가 아닙니다

181호 · 2003-08-15

저는 3살 때 심한 소아마비를 앓아 목발이 없으면 제대로 걷지 못하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절에 다녔고 형수가 시집을 온 후에는 자주 굿도 했습니다. 형수님이 자주 물에 빠져 죽으려는 자살 소동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이 이제는 저로 인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저는 장애를 가진 몸이었지만 열심히 살아보려는 의욕을 가지고 객지 생활을 시작하여 플라스틱에 관련된 자그만 사업도 했습니다. 힘든 사회생활을 하던 86년 제가 25살이 되던 해, 한 집회에 참석하여 귀신이 떠나가는 성령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하지만 그 표적으로 인한 신앙생활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하고 식어 버렸습니다.

사업마저 부도가 나게 되어 모든 것을 정리하고 친구의 권유에 따라 89년, 서울로 오게 되었습니다.

1년 동안 방황의 시간들이 서울에서 시작되었고, 마음의 안정이라도 찾고 싶어 이 교회 저 교회로 순례를 다녔지만 영적인 갈급은 채워지지 않은 채 수중에 있던 돈마저 바닥이 났습니다.

그러던 90년 9월의 어느 날, 방배동 골목을 지나다 우연히 낯익은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얼굴을 뵌 적은 없었지만 오디오테이프를 통해 몇 번 들었던 이 초석 목사님의 목소리가 분명했습니다. 비디오가게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그 소리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그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비디오로 목사님의 얼굴을 보니 더 확실히 메시지가 다가왔고 은혜가 넘쳤습니다. 저는 순간 ‘이 교회가 내 신앙의 종착역이구나!’라고 생각했고, 그 때부터 제가 생각지도 못한 신앙역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총회장 목사님을 먼저 안 극성맞은(?) 믿음의 선배들에게 저의 신앙생활을 맞춘다는 것이 마치 뱁새가 황새를 따라 다니듯 힘든 노릇이었습니다. 시험거리를 안겨줄 때도 많아 그들 곁을 떠나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그래도 총회장 목사님을 알게 해준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불편한 몸이지만 운전을 해가며 그들이 다니는 믿음의 자리를 쫓아 다녔습니다.

믿음의 식구들의 도움으로 꽃 장사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사업은 너무나 잘 되었습니다. 기도하고 장사를 하면 시든 꽃이 시들지 않은 꽃보다 먼저 팔리는 일이 허다하게 일어났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시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멘’으로 믿어졌으며, 여러 모양으로 주님께 물질로 헌신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96년 펜싱경기장에서 열렸던 총동원 예배 때 150명의 장애우들을 초대했는데 그때 한 장애우로부터 ‘내일까지 마감인데 장애인들을 위한 지하철 편의점 추첨에 지원을 해보라.’는 정보를 듣게 되었습니다. 당첨되기 힘든 확률이었지만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정말 좋은 자리에 당첨시켜 주심으로 저에게 넘치도록 보상해주셨습니다.

장애우들을 보며 저는 그들이 육체적 장애보다 할 수 없다는 정신적 장애가 더 문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돕고자 ‘한국교통장애 서초지회장’일을 맡으면서 장애우들에게 총회장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통해 배운 대로, 장애를 가졌지만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주고 여러 정보를 제공해 주자 장애우들도 힘을 얻기 시작했고 저에게는 더 큰 기쁨들이 밀려왔습니다.

총회장 목사님과 함께 13년이 된 지금, 장막뿐 아니라 여러 곳의 가게를 경영케 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알기에, 이번 기도원 숙소 건축 때 몸으로 봉사할 수는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물질로 드릴 수 있는 축복의 기회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저의 삶을 변화시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끝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이 축복을 저와 함께 나눌 인생의 반려자를 위해 기도합니다.

박갈렙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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