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만 바라볼지라 (사 17:4 ~ 11)
얼마 전, 3초간의 방심으로 큰 사고를 낸 뉴스를 접했습니다. 운전 중 이동용 전화기에 걸려온 수신자를 확인하고 받는 과정에서 앞을 주시하지 못하여 인사사고를 낸 것입니다. 잠깐 동안의 방심이 부른 대형사고였던 것입니다. 운전자가 시선을 집중해서 앞을 바라보고, 운전에 불필요한 허튼 행동은 삼가는 것은 안전 운전의 기본수칙입니다.
우리 인생도 자동차 이상의 속도로 빠르게 질주하고 있습니다. 이 때 시선을 다른 곳에 빼앗기면 사고는 불가불 일어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도 안전하려면 운행상의 기본수칙을 지켜야 합니다. 바로 마땅히 바라보아야 할 곳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시선을 분산하거나 다른 곳에 빼앗기면 인생의 사고로 인한 참사를 면키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시선 안에 거했고, 그들의 시선 속에도 오직 하나님만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유혹이 왔습니다. 마귀가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선악과를 그들의 눈에 들이대며 그들의 시선을 빼앗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한 번 흘깃한 시선으로 끝났으나 점차 시선이 선악과에 고정되어 결국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선악과에 손을 대는 대역죄를 짓는 사고를 내고 만 것입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영·혼·육이 사망 권세 하에 사로잡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은 처음 기대와는 달리 여정이 고되고 힘들어지자 점차 모세에게 불만을 터뜨렸고 급기야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을 쏟아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시선이 하나님에게서 떠난 증거였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불뱀을 보내사 이스라엘 민족을 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여호와 하나님은 놋뱀을 장대 위에 매달아 놓고 이를 바라보는 자마다 다 치유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불뱀에 물려 죽게 생겼는데 장대위에 구리로 만든 뱀 형상을 본다고 낫겠는가?’ 하며 바라보지 않았다가 죽은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놋뱀을 바라본 자는 어김없이 모두 나음을 입었던 것입니다. 이 놋뱀은 장차 십자가에 달릴 예수의 상징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이 놋뱀, 즉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면 그를 믿는 자마다 인생의 아프고 죽게 된 모든 것이 살아나게 됩니다. 내 나름대로 치유책을 모색하고 비방을 쓴다 해도 그것은 아무 효험이 없습니다. 우리 인생을 해독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죄(罪)가 무엇입니까? 빗나간 시선이 죄이며, 선을 넘어서는 것이 죄이며, 과녁에 맞히지 못한 것이 죄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죄란 곧 하나님을 바라보던 시선이 다른 곳에 잘못 꽂히는 것이며, 하나님의 법을 넘어 불법을 행하는 것이며, 가야 할 곳으로 가지 않는 방향감각의 상실이 죄입니다.
해바라기가 늘 해를 바라보며 사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주바라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이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적인 것만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부와 명예에 우리의 시선이 집중되어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보다 위에 두는 모든 것을 우상이라고 칭하시고, 우상을 섬기는 자마다 멸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북이스라엘에 대한 멸망의 예언입니다. 아세라상(像)이나 태양신을 신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가차 없이 멸망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떠나 그의 법을 준행치 않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비란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의 특징이 바로 공의이기 때문입니다. 만물은 다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으며, 세상의 모든 이치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으며, 만인 위에 뛰어난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의 복은 범사에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자를 위한 축복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은 문제에 봉착해도, 난관에 부딪쳐도 낙심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문제 뒤에 계시는 하나님, 문제 보다 크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문제를 통해 하나님의 뜻하심과 계획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시선이 떠나지 않는 자만이 그 분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주파수를 맞추는 자는 하나님의 계획과 그의 깊은 곳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갈 길을 몰라 우왕좌왕하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그의 시선이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며, 우리의 삶이 어둡고 힘든 것은 그의 음성을 기피한 결과인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자충수(自充手)를 두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만을 바라보았을 때는 바다를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순간 파도가 이는 물결을 바라보자 그만 물에 빠져 들어 갔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예수가 꾸짖으셨습니다. 이는 ‘왜 나만 바라보지 환경을 바라보느냐?’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환경을 바라보면 좌절되고 낙담될 때가 있습니다.
환경만 바라보면 환경이 나를 짓눌러 버립니다. 그러나 그럴 때 일수록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이 해결하십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것입니다. 그에게 모든 것을 믿고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맡기는 것은 방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방치란 결과를 무시한 것이나 의뢰하는 것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결과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 예수 안에 우리 인생의 해답과 해법이 다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면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사람을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하니까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절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시각이 생각의 기반이 됩니다. 곧 바라보는 것으로 우리의 마음이 결정됩니다. 시선의 각도에 따라 우리 인생이 천차만별 달라지는 것입니다.
당신의 인생이 낭떠러지로 떨어졌습니까? 당신이 딴 곳에 시선을 둔 까닭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당신의 인생이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달린 까닭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세요. 당신의 인생이 파괴되었습니까? 이는 눈감고 달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감은 눈을 뜨고 하나님을 바라보세요.
하나님은 늘 당신과 시선을 맞추고 싶어 하십니다. 당신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인생의 해법을 전하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을 외면하지 말고 그에게 시선을 집중하세요. 그러면 당신의 인생이 사고 나지 않을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세상의 것은 야광과 같아 현란하여 유혹하기 쉬우나 그것은 눈을 피로하게 하고 주위 사물을 흐리게 하여 사고의 원인이 됩니다.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것이 아무리 유혹해도 하나님에게서 눈을 떼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선한 것으로 당신을 넘치도록 채우실 것이며, 당신의 인생 여정이 아름답고 평안하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다 왔다고 방심하지 말고 마지막까지 안전운행에 힘쓰라
안식과 평안을 구하는 자는 하나님의 환경 안에 거하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