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세를 두려워하면 스타가 될 수 없다 <br>(행 5:12 ~42)
인기인들이나 유명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많은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됩니다. 그들을 전문적으로 쫓아다니는 파파라치가 있을 정도로 그들의 사생활은 우리에게 공개되어 관심거리가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끔 루머나 스캔들에 휘둘려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하며 곤욕을 치르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소문이란 사실과는 많이 동떨어진 것이 많고, 더욱 크게 부풀려지는 것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사적인 감정들이 거기에 첨부되기 때문입니다. 즉 시기, 질투 같은 것들이 암암리에 작용하여 사실이 오보되고, 과대 포장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이런 것들 때문에 주저앉는 자가 성공한 사례는 여태 없습니다. 스타가 된 많은 자들은 이 유명세의 물결을 잘 타고 지혜롭게 대처하였기에 저마다 성공을 일구어 낸 것입니다.
우리나라 축구역사의 대표적인 인물이라면 차범근 선수를 들 수 있습니다. 그가 한창 왕성하게 뛰던 선수시절에 상대팀 선수들은 차 선수에게 무차별한 태클을 걸어왔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공만 잡으면 골인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차 선수도 거센 태클에 겁을 내어 주춤하였으나 나중에는 이대론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태클을 걸어온 선수를 더 세게 밀어 붙였더니 그 선수들이 오히려 겁을 먹고 피했다고 그는 회고합니다. 그래서 그는 골인의 드라마를 계속 연출하였고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를 넘어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하여 차붐을 일으킨 세계적인 축구스타가 되었던 것입니다.
유명해지면 태클은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구설수에도 오르고, 없는 이야기도 떠돌고, 안한 것도 한 것처럼 꾸며져 애간장을 녹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유명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잘났기 때문에 일어나는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요셉이 형제에게 미움을 산 이유가 바로 아버지인 야곱에게 더 인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로부터 더 큰 사랑을 받아 채색옷을 입는 등 특별났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에게 누명을 뒤집어썼던 이유도 잘나고 매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가 많은 사람들에게 기사(奇事)와 표적을 보이매 베드로를 좇는 무리가 많아지자 대제사장과 사두개인 당파가 시기가 가득하여 베드로를 옥에 가두게 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거기에 좌절하지 않았고 더욱 열심을 내어 복음을 전파하다 순교함으로 진정한 천국의 스타로 자리매김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엄청난 태클이 들어왔으나 그는 태클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 앞에도 그는 더욱 당당하게 그의 길을 갔습니다. 그는 현재 당하는 고통이 장차 영광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 만물의 찌꺼기처럼 대우를 받아도 가야할 길을 갔던 것입니다. 스타의 길에 입문한 자들이 왜 루머나 스캔들에 굴하지 않고 묵묵히 가는 줄 아십니까? 그들은 스타가 된 후의 영광을 알기 때문입니다.
스타가 되기만 하면 돈과 명예, 인기를 한 손에 거머쥘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세간의 소리에 귀를 닫고 가는 것입니다. 과정은 결과를 대변할 수 없습니다. 결과만이 과정을 대변해 줄 수 있고 결과로 모든 것이 평가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스타가 되기만 하면, 하나님께 인정만 받으면, 하늘과 땅의 모든 것들이 우리 손에 붙여지며, 만인 위에 놓인 자가 되며, 그 나라의 왕권을 바라다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과 많은 믿음의 선친들이 세상의 비아냥거림과 핍박과 모함을 받으면서도 그 길을 갔던 것입니다.
저의 목회과정은 뒤돌아보고 싶지 않은 고난과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물 없는 사막의 길이었으며 눈 덮인 산야를 걷는 험난한 길을 걸었습니다. 무고한 핍박과 모함들로 말할 수 없이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귀는 막고 앞만 보며 달렸습니다. 어찌 그라운드에 선 선수가 관중석의 야유에 귀를 기울이겠습니까! 오직 감독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저의 감독되신 예수만을 보고 의지하고 앞만 보며 달려왔습니다. 그랬더니 오늘 목회 18년 만에 세계 60개국에 복음을 전하는 대스타가 되었습니다.
그 때 제가 낙심하고 침륜에 빠졌더라면 오늘 예루살렘교단은 없었을 겁니다. 그들의 핍박과 모함소리보다 빨리 뛰기 위해 더욱 노력했습니다. 그들의 시기, 질투를 성장의 촉진제로 사용한 것입니다. 어떤 사건을 재앙으로 몰고 갈 것이냐, 에너지로 삼을 것이냐는 여러분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저 같으면 당연히 에너지로 삼아 결과를 더 확실하고 크게 이루어 비웃는 그들에게 과시하겠습니다. ‘꼭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목표가 확실하다면 장애물쯤은 가벼이 넘길 수 있는 것입니다. 목표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작은 펀치에 넘어지고 낮은 장애물에도 걸리는 것입니다.
색깔이 튀면 눈총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다 흰 옷을 입었는데 혼자 빨간 옷을 입으면 구설수에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좋습니다. 적당히 타협된 신앙으로 평안한 길은 갈 수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께 인정받기는 어렵습니다. 유별스러워야 유별난 자가 됩니다. 신앙에 ‘적당히’라는 것은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계3;16)’.
유명한 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남들보다 유난스러웠고 유별나게 굴었기에 그 자리에 오른 겁니다. 우리의 신앙이 남들 눈에 유별나게 보일지 모르나 하나님의 눈에는 스타의 기질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기질을 보시고 반드시 스타로 만들어 모든 것을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 주인이시며 감독되신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 유명세를 치르고 있습니까? 남들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어 있습니까? 당신은 그들보다 뛰어난 자들이란 증표입니다. 그러나 개는 짖어도 기차는 달리는 것입니다. 계속 전진하십시오.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주저앉지도 말고 목적을 향하여 매진하여 거목이 되십시오. 거목이 되면 떠들던 새떼들이 나무 아래로 찾아들 것입니다. 항공모함은 쪽배가 건들지 못합니다. 이처럼 결과가 모든 과정을 대변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구분된 자들이므로 이목이 집중됩니다. 그래서 유명세를 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해지면 그들이 우리의 결과를 보고 입을 다물 것입니다.
대가가 없는 것은 없습니다. 고난 중에 낳은 자식이 귀한 것이며, 눈물로 빵을 먹어본 자가 인생의 맛을 아는 것과 같이 고난은 유익한 것입니다. 태풍이 불고 해일이 일어야 바다의 생태계가 살아나지 않습니까? 지금 고통과 핍박이 당신에게 있는 것이 절대 무익하거나 해로운 것이 아닙니다. 육체의 가시로 인하여 기도하던 바울처럼 외부로부터의 자극으로 인해 기도할 수 있고, 나를 점검할 수 있어 유익한 것입니다. 외부의 공격을 에너지 삼아 나가면 목적지에 더 빨리, 목적한 것보다 더 큰 것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악한 마귀는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갖은 궤계를 부릴 것입니다. 주위 사람들을 들어 비방하게 하고, 의욕을 상실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이름으로 이를 물리치고 최후 승리를 하십시오. 할렐루야!
과정은 결과를 대변할 수 없다 결과만이 과정을 대변해 준다
해일이 일어야 바닷속이 정화되듯 고난이 있어야 성장도 있는 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