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는 울부짖었다. 하늘도 그를 버렸고, 땅도, 그의 제자들도 그를 외면했다. 그는 하늘과 땅 사이 허공에 매달린 외로운 외톨이었다. 그의 죽음 앞에 승리를 외치는 자들, 군중심리에 몰려 그저 기세를 높이는 구경꾼들, 그 사이에 아련히 보이는 사랑하는 어머니….
그는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가시 면류관보다 그를 더 괴롭게 하는 것은 저 무리의 무지(無知)였고, 손에 박힌 못보다 더 아픈 것은 저 무리의 죄였다. 그는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저들의 죄를 용서 하소서.’
그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아픔과 모욕과 수치를 참아내면서 그에게 주어진 길을 가셨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이름을 가지고도 그가 로마 병정의 군화에 밟힌 것은, 만왕의 왕의 권세를 가지고도 치욕의 십자가를 벗지 않으신 것은 그의 죄와 무능 때문이 아니었다. 우리 때문에, 당신과 나의 죄 때문에, 전 인류의 질고 때문에 그가 끝까지 참으신 것이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의 울부짖음에 하늘도 땅도 그 빛을 잃고 울었다. ‘아버지’가 아닌 ‘하나님’으로 부르짖은 예수의 심정과 객관적인 입장이 되어 버린 하나님의 심정을 누가 알겠는가! 우리는 이 심장이 쪼개지는 아픔을 먹고 구원되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 외침은 예수가 하신 것으로 마쳐져야 한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우리가 이렇게 외치지 않게 하기 위해 그가 대신 짐을 지셨던 것이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가교(架橋)를 놓으시려고 그가 몸소 고난을 당하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셨고, 예수의 피로 인하여 모든 죄를 씻음 받았다. 그러나 십자가의 사건은 그가 다시 오시는 날까지만 유효한 것이다. 영원히 구원의 문이 열려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오지 않으면 그 날 ‘나의 하나님 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고 부르짖어도 그는 대답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때 하나님은 이미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의 보혈이 흐를 때 하나님께 돌아오라. 하나님이 아버지이실 때 그를 부르라. 그 날은 너무 늦은 것이며, 예수는 당신의 구세주가 아니라 냉엄한 심판주로 자리바꿈 하실 것이니 지금이 구원받을 때며 은혜 받을 때라.
‘나의 구세주여, 나의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이것이 그 날 우리의 외침이 되어야 한다. 지금 보혈의 강이 흐르고 있다. 돌아오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