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공간의 여유
아직은 바람이 차가운 인사동 골목의 한 화랑을 찾았다. 미술에 특별한 조예가 없는 나는 일정한 속도로 여러 작품들을 지나치고 있었다. 그런데 내 발길을 멈추게 한 작품이 있었다. 그것은 ‘빈 공간의 여유’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으로 큰 캔버스 위에 달랑 점 4개만을 찍어 놓은 유화였다.
‘많은 것을 생각해 보라.’는 작가의 의도가 깔려 있는 듯 했다. 나는 그 작품 속의 네 개의 점에 나름대로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대입해 보며 인생을 그려 보았다.
공간은 낭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절대 휴식을 의미하고 새 창조를 뜻할 수도 있다. 치렁치렁한 액세서리보다 단순한 포인트를 주는 것이 더 확실한 인상을 주는 것처럼 공간을 두는 것이 복잡한 설명보다 더 큰 웅변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우리는 너무 꽉 짜인 틀과 숨이 막힐 듯한 복잡한 구조에 익숙해 있다. 뭔가 조금 비어 있으면 불안한지 무엇으로든 그곳을 메우려 한다. 아마 오랜 가난이 가져다 준 산물인지도 모른다. 공간이 허전함으로 느껴지는 정체불명의 불안이 아직도 작용하고 있나보다.
그러나 이제는 공간의 의미를 새로이 자리매김하면 좋겠다. 공간은 여유다. 그 화가가 표현한 공간도 완벽한 구조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이제 여유를 가지고 살아보자.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삶에 공간을 만들어 보자. 공간이 있어야 남들도 찾아온다. 공간이 있어야 새로운 것이 보인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이 들어올 수 없게 차단된 우리의 삶에 여유를 갖자.
우리의 공간에 사랑을 심고, 낭만을 품고 흥을 북돋아 보자. 재물로 가득한 손을 풀어 그 손에 사랑이 일게 하고 욕심을 버린 그 공간에 이웃을 가지자. 인간의 지식과 꾀를 버리고 그 안에 하나님이 오시게 하자.
적당한 선에서 마음을 절제하고 이웃을 돌아보며 나라를 생각하는 여유로운 자의 모습이 아름답다. 많이 가졌다고 다섯 끼니 먹는가? 이불 두 채 덥고 자는가? 자동차 두 대를 동시에 끌고 다닐 수 있는가?
족함을 아는 자에게 여유가 있고 빈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오늘에 감사하며 오늘에 만족하는 삶을 살아보자. 여유 있는 아름다운 삶을 누려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