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스런 보좌의 주인공이 되라 (막 10:35~45)
대한민국 호를 이끌어갈 제16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엊그제 끝이 났습니다. 투표 참여율에서 보더라도 역대 그 어느 때보다 국민들의 눈과 귀를 집중시켰던 그런 선거였습니다. 각자 나름대로 출사의 변을 밝힌 대선 주자들은 혼신을 다해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토해내기에 바빴습니다.
단지 5년의 영광을 위해서였지만 한 나라의 최고 책임자의 자리에 서기 위해 그들은 이렇게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걸며 최선의 경주를 다했던 것입니다. 반면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하는 로마서 8장 18절의 말씀을 깨달아 참 영광의 길을 가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 김요섭 목사의 일생은 저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는 독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석학으로 귀국 후 최연소 대학 교수직을 보장받은 장래가 촉망한 젊은이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우리나라의 땅 끝이라 불리는 해남의 한 나환자촌을 방문하면서 삶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고는 그들 나환자들과 생을 같이 하기로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고름이 줄줄 흐르는 그들과 동거동락(同居同樂) 하면서 그는 그제서야 ‘예수께서 왜 낮고 천한 곳에 오셨는가?’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우리나라의 나환자 수가 점차 줄어들자 다시 티벳의 나환자촌을 물어 물어 찾아가 생을 거기서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나환자들을 위해 이렇게 자신의 젊음과 부와 명예를 모두 포기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이 모든 결단은 그 날의 영광을 알았기에 취할 수 있었던 거룩한 행동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는 세대베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의 우문(愚問)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소서’ 하고 예수님께 간청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제자였음에도 그들은 하늘의 영광이 무엇인지, 그 영광의 자리가 어떤 자의 것인지 전혀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저 ‘높은 자리 하나 얻어 보자’는 심산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가 말씀하시는 것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채 ‘할 수 있나이다’라고 선뜻 대답합니다. 만일 그들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의 깊은 의미를 깨달았다면 그렇게 섣불리 대답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잔’은 고통과 고난을 상징한 것이며 ‘세례‘는 슬픔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그 분께서 인류를 죄와 악에서 구원하시려고 십자가 지심을 암시하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들어가려면 먼저 그 고난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를 위하여, 병든 자를 위하여, 죄 많은 자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도 그들과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이 하신 것처럼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며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원하십니다. 주님이 인류를 위하여 대속물이 되신 것처럼 그들을 위한 우리의 희생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 날 주의 영광의 길에 이르는 길이 바로 이것입니다. 주의 영광에 동참하는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도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시며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돌보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이것을 행함은 주의 영광의 자리에 동참을 물론 이 땅에서도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입니다.
성경은 히브리서 13장을 통하여 ‘오직 선을 행함과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고 말씀하시며, 잠언 11장 25절에는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고 말씀하심으로 예수님의 참 사랑을 실천하는 자들이야말로 예수님의 참 제자요, 그들이 또한 받을 복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희생과 그에 따른 거룩한 결단이 없이는 결코 영광의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이렇듯 선행과 구제는 우리의 이웃은 물론 우리 자신까지도 행복의 길로 인도하는 축복의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베풀 수 있다는 것이 복입니다.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우리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노노 선교회’를 통해 소외당한 노인과 노숙자들의 구령사업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우리 선교사들이 이 사업에 적극 동참하고 있습니다. 정말 자비를 털어 가며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이 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위로할 말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기도할 뿐입니다. ‘주님, 저들의 수고를 낱낱이 기억하사 하늘의 상으로 갚아주시고 이 땅의 것으로 채워주소서’. 저는 우리 성도들이 주님의 영광의 보좌 우편과 좌편에 앉는 주인공들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 우리 성도들에 게 그러한 축복이 이루어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벌써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자들과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의 진정한 벗이 되며 복음을 전해 그들에게 새로운 삶으로 인도해 주어야 합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사랑은 구호가 아니라 실천하는 것입니다. 낮아지고 남을 섬기는 자를 도리어 세계 만민 위에 뛰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사랑은 구호가 아니라 지금 당장 실천하는 것이다
헌신과 희생이 없이는 결코 영광의 자리에 설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