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을 위하여 자존심을 버려라 (삿 16:15 ~22 )
성경은 우리 삶의 거울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삶을 통해 우리는 성공한 자와 실패한 자는 과연 무엇이 다르며, 또 그들이 각각 어떤 삶을 살아갔는지 너무나도 잘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사사요,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였던 삼손을 기억합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블레셋으로부터 구원해야 할 자로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택함을 받은 자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여호와의 권능이 임하자 나귀 턱뼈 하나로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쳐죽일 정도로 힘이 넘쳤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들릴라라는 여인의 꼬임에 빠져 자신의 힘의 근원이 삭도를 대지 않은 머리카락에 있다는 사실을 누설하고 말지요.
결국 머리카락이 잘리게 된 그는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사로잡힌 채 그들의 노리개 신세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신세 타령을 늘어놓거나 자포자기하지도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눈물로 회개하고 ‘원수를 갚을 수 있는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잘렸던 그의 머리도 다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왔습니다.
그의 애절함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예전의 힘을 다시 부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다곤 신전의 기둥을 무너뜨려 자신을 조롱하던 무리들과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가 기둥을 흔들 때 신전이 허물어져 그가 생전에 사람을 죽인 것보다 더 많은 자를 죽이는 대역사를 일으키면서 말입니다. 삼손은 분명 하나님과의 약속을 파기한 파렴치한이었지만 이렇게 자존심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자복함으로 능력을 다시 회복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반면 사울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사울은 삼손 못지 않게 하나님의 특별한 택함을 받은 자였습니다. 그 또한 하나님을 배역하고 사람들 앞에 자신을 나타냄으로 하나님께 버림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정적으로 삼손과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회개가 없었던 것입니다. 성경 그 어디에도 ‘사울이 애통하며 부르짖었다’라는 기도가 적혀있지 않습니다. 오직 문무백관들 앞에서 자존심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장면만 있을 뿐입니다. 그 결과 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왕위를 박탈당했을 뿐 아니라 아들들과 함께 전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 앞에 선 삼손입니까, 아니면 사울입니까?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때 하나님께 자존심을 버리고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고 자복하는 자가 되어야 하나님의 능력이 다시 회복됩니다. 삼손에게 삭도를 대는 것이 죄였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기도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이제 다시 머리가 자라게 하려면, 하나님의 능력을 다시 찾으려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자존심은 백해무익(百害無益)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과 성경 속의 위대한 믿음의 선친들의 삶을 돌아보면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목적을 위해 이렇게 자존심을 벗어 던진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시리아라고 하는 거대한 나라의 국방장관이었던 나아만 장군은 일개 히브리 계집 종의 말을 듣고 자존심을 버리고 선지자 엘리사의 말에 따라 요단 강물에 일곱 번 들어갔더니 문둥병에서 깨끗함을 받게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누가복음 18장에서는 불의한 재판관을 찾은 한 과부가 자존심을 내팽개치고 어찌나 계속해서 찾아갔던지 그 불의한 재판관이 귀찮아서라도 그 소원을 들어주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아버지의 유산을 탕진하고 거렁뱅이 신세가 된 둘째 아들이라도 자존심을 버리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는 순간, 그 아버지가 입을 맞추고, 가락지를 끼우며, 살진 소를 잡아 잔치를 벌여 그를 맞아들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또한 우리를 구원하시려 그 모든 수치와 부끄러움을 뒤로 한 채로 십자가를 대신 지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만왕의 왕도 자신을 버리셨거늘 하물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슨 자존심을 내세우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벌거벗은 몸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모습 이대로 나를 받아 주소서.’ 하며 영적 가면을 벗어 던져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문둥병이 치료되려면 먼저 갑옷과 투구를 벗어 던지십시오. 그래야 우리 삶에 새살이 돋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자존심은 죄의 상징입니다. 처음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서로 벌거벗고 있었지만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고 죄가 잉태되니 부끄러움을 알아 하나님을 피해 숨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존심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을 진정한 나의 아버지로 여기지 못한다는 증거가 됩니다.
또한 자존심의 문제는 사람 사이에도 장애물이 됩니다. 요사이 이혼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는 서로에게 자존심으로 맞대결을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먼저 잘못을 시인하고 마음을 열면 극한 상황을 면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녀의 문제도 마찬가지지요. 제아무리 부모라도 잘못했으면 자녀에게 사과를 해야 합니다. 목자 또한 성도에게 자존심을 버릴 때 진정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자존심(自尊心)이란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것입니다. 진정한 높임을 받는 일은 남이 높여줄 때입니다. 자존심을 버릴 때 상대는 물론 만물이 우리의 사다리가 되어 줄 것입니다. 낮은 곳에 물이 고이고, 물이 고여야 생명이 움트는 것이 아닙니까! 살기 위해 자존심을 버리십시오.
올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그리고 가정과 이웃 사이에서 아직 자존심이란 장애는 없는지, 나는 아직 가증한 투구와 갑옷을 입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자존심을 버리고 진실될 때 우리의 삶에 문둥병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과거의 영광에서 깨어나라 마음을 비우니 사람을 얻는다
낮은 곳에 물이 고이고, 물이 고여야 생명이 움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