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가시
얼마 전 목에 가시 하나가 걸려 엄청 고생을 하다 병원에 가서 빼고 왔다. 침을 삼킬 때마다 목을 찌르는 것이 영 불편하고 껄끄러웠던 것이다.
우리 인생에도 가시는 많다. 자식이 나를 찌를 수 있고, 육체에 가시가 있어 그것으로 아파할 수 있고, 물질적인 요소가 가시로 작용할 수 있다. 그것을 우리는 고통이라 하고 십자가라 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가시 때문에 오히려 감사했다. 그것으로 인하여 자고하지 않게 되고 하나님을 더욱 찾게 된다는 것이다. 병원에 가니 목에 가시를 금새 빼어주는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의 문제를 손쉽게 해결해 주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그냥 두시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과의 접착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극이 없으면 나태해지고 이성으로 살게 되며, 육적인 것이 표출되게 되어 있다. 그것을 하나님은 너무도 잘 아시기에 우리에게 가시를 두어 가끔 정도가 지나치다 싶으면 한 번씩 찌르게 하신다. 자극을 주시는 것이다. 졸음이 올 때 한 번쯤 꼬집어 주면 정신이 나는 것처럼, 광란의 시기에 찬물 한 바가지 부어 주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시로 인하여 정신을 차려 하나님을 부르게 하시는 것이다.
손에 가시 하나가 들어가면 손이 있음을 안다. 눈에 티 하나 들어가면 눈이 새삼스럽게 우리 신체의 일부임을 느낀다. 우리 인생에 가시로 인하여 우리의 인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 자녀로 인하여 주님을 부를 수 있어 감사하고, 우리 육체의 나약함을 인하여 주님 앞에 무릎 꿇을 수 있어 감사하고, 물질의 고통으로 주님 앞에 울 수 있어 감사하면 그 가시는 화(禍)가 아니라 오히려 복(福)의 시발점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가끔 쿡 찌르는 것에 원망하지 말고 나를 돌아보는 기회로 삼자. 내가 주님 곁에서 얼마나 멀어졌나, 주님과의 담이 얼마나 높아졌나를 돌아보는 기회를 삼자. 감각이 없는 자, 문둥병자가 되기 전에 자극에 반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에는 모두 사랑이 기본으로 깔려 있다. 우리에게 가시를 주심도 그의 사랑이며 그의 관심이니 감사하고 그 앞에 나가자. 우리의 약함을 인하여, 우리의 부족함을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함을 감사하자.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후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