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생명은 약속이다 (히 6:13 ~20)
한 건설회사가 처음 수주를 받아 공사에 착공했습니다. 그러나 공사기간 도중 갑자기 자재 값이 폭등하는 바람에 이 회사는 처음 약정한 가격으로는 도저히 공사를 마무리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할 경우 회사가 이익은커녕 막대한 손해를 입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사활이 걸린 중대한 문제 앞에서 이 건설회사 사장과 임직원들은 몇 차례 마라톤 회의를 거듭했습니다. 당초 약정한 가격으로 공사를 마무리 할 것인지 아니면 현 시가에 맞춰 의뢰인과 타협을 할 것인지에 대해 대책을 강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장은 당초 약속을 이행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몇 푼의 이익을 남기는 것보다는 손해를 입고서라도 신용을 얻는 것이 낫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때문에 막대한 손해를 봐야 했지만 성실하고 완벽하게 공사를 마쳤습니다. 나중에 의뢰인 측이 이러한 사실을 알게되자 이들의 자세에 감동하여 다음엔 더 큰 공사들을 그 회사에 맡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소문이 건설업계에 퍼져 최고의 건설회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약속이행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며, 기업의 생명은 곧 얼마만큼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현 사회를 크레디트(Credit)사회, 즉 신용 사회라 칭합니다. 신용 있는 자, 신용 있는 기업만이 각광을 받고 혜택을 받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약속은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릴 적 약속을 할 때 둘이 새끼손가락을 거는 것처럼 쌍방 간의 책임이행이 꼭 수반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32,500가지의 약속에 대한 기사가 나옵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아담과 약속하셨습니다.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만은 손대지 않기로 말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이 약속을 어기고야 말았습니다. 그의 아내 하와의 꾀임에 빠져 그만 선악과에 손을 대고 말았던 것입니다. 결국 아담의 약속 불이행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그를 에덴에서 내 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십자가의 사건 또한 약속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구세주를 보내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핍박과 모욕과 고난을 당하시면서도 그 분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십자가의 고통을 묵묵히 감당하심으로 그 약속은 성취되었습니다. 또한 예수께서 삼일만에 부활하신다고 하신 약속도 이루시어 성도들의 부활의 첫 소망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고 회개할 때에,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시되 그 용서의 표로 성령을 주신다는 사도행전 2장 38절의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져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성령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또한 시편 107편 6절에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고통에서 건지신다고 약속하셨는데 이 약속의 말씀에 의지하여 기도했던 이들이 어떠한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까! 자식이 없어 고통하던 한나가 부르짖으매 아들 사무엘을 낳을 수 있었고, 병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렸던 히스기야가 생명이 연장되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뿐 아닙니다. 성경은 이 땅에서도 잘되는 비결 또한 약속해 놓고 계십니다. 잠언 3장 9절 이하에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린 자는 창고가 가득 차는 축복이 임할 것이요, 말라기서 3장을 통해서는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자는 하늘 문을 열어 복을 쌓을 곳이 없게 부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울러 에베소서 6장은 부모를 공경할 때 이 땅에서 장수하게 되는 복이 있다고 약속하고 있으며,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할 때 이 모든 것을 더하게 된다는 약속이 마태복음 6장 33절에 있습니다. 또 두 세 사람이 모여 기도하는 곳에 하나님도 함께 하신다고 마태복음 16장에 약속하셨고, 방언을 말할 때 새 힘이 솟아 상쾌하게 되는 축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으면 나간다고 하는 마태복음 12장 28절의 말씀은 지금 우리 모두가 목도하고 있는 바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성경 전체는 약속에 대한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신실한 분이시기에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킬 때 자녀된 권세를 사용할 수 있으며 축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뿐 아니라 사람사이에도 약속은 꼭 지켜져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와 가정이 바로 섭니다.
저희 교회에 멋진 사나이를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그는 바로 제 차를 운전해 주는 홍충성 집사입니다. 그는 결혼 초에 아내와 이렇게 약속했답니다. ‘결혼 10주년 즈음엔 꼭 해외 여행을 시켜 주겠노라’고 말입니다. 그는 이것을 늘 마음에 두고 차근차근 준비해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올해가 바로 약속한 10년이 되는 해라 휴가를 청해왔고, 그 사연을 접한 저는 그의 아름다운 약속을 놓고 탄복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뜻 휴가는 물론이고 모든 여행비를 제가 부담하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를 다시 보았습니다. 아내와의 작은 약속이지만 그 오랜 세월 동안을 잊지 않고 지키려 노력하는 모습, 정말 사나이 중의 사나이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약속을 지키고자하면 이렇게 돕는 자는 물론 만물이 예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약속을 어기면 당장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맙니다. 사주가 직원들에게 무시당하는 것도, 부모가 자녀에게,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외면당하는 작금의 현실 또한 모두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게 말을 바꾸고 약속을 무시한 결과인 것입니다.
일류사회로 가는 길, 선진대열에 합류하는 길, 행복을 찾는 길은 약속이행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신용이란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장 큰 재산입니다. 작은 약속을 우습게 아는 자는 언젠가는 큰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본을 보이신 것처럼, 아브라함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켰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켜 그 복을 누리는 자들이 되십시다.
할렐루야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 신용은 보이지 않는 자산이다
약속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라. 기업의 성패는 신용에 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