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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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호 목차 › 옹달샘

참 된 소금과 빛

144호 · 2002-11-28

칼에 손을 조금 베었다. 조금 아팠지만 그런 대로 참을 만 했다. 그런데 소금기가 있는 물에 손이 닿자마자 아까 벤 자리가 어찌나 아픈지 눈물이 금새 뚝뚝 떨어진다. 욱신거리는 것이 한참 동안이나 진정이 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고 하셨다. 이는 부패해 가는 세상에 방부제가 되라는 말씀이며, 어두운 세상을 밝게 밝히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소금을 아무데나 뿌리면 안 된다.

고통 중에 있는 자나, 상처 입은 자에겐 정작 소금이 아니라 사랑이 필요하다. 고통 중에 신음하고 있는 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빗대어 ‘당신의 죄 때문에 그런 거야. 그러니까 회개해야지’하며 왕소금을 팍팍 뿌려대면 이는 ‘죄 지었으면 죽어야지 왜 살아있냐’고 사약을 먹임과 같다.

반창고도 붙여주고 약솜으로 상처부위를 덮어주어 아물게 해야 한다. 다독이고 아픈 것을 감싼 후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면 그 말씀이 사랑이 되어 상처를 아물게 하지만 아픈 부위에 바로 소금을 치는 것은 참으로 잔혹한 행위다.

욥이 힘들 때 그의 세 명의 친구들은 위로의 명분을 가지고 찾아왔으나 실상은 소금을 가마니 채 들고 온 셈이었다. 그들은 아픈 욥에게 소금을 사정없이 뿌려 괴롭게 했다. 이를 하나님이 어여쁘게 보지 않으신 것을 우리는 안다. 또한 빛은 어둡고 그늘진 곳을 밝혀 세상을 밝게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라이트를 비춰 남의 약점과 결점만을 곧잘 드러내는 자들이 있다. 바로 바리새인들이 그러했다. 그들은 한 여인의 간음현장에 빛을 들이댔다.

그러면서 자랑스럽게 예수님께 나아왔을 때 예수는 그들에게 ‘참 잘했다’ 그러지 않으셨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이가 먼저 치라’하시며 묵묵히 바닥에 글을 적으실 뿐이었다. 당신 스스로도 그 여인에게 죄를 묻지 않으시면서 말이다. 아마 이 때 바닥에 적으셨던 글이 자칭 빛이라는 자들의 죄상을 낱낱이 기록한 것이 아니었을까?

소금과 빛은 결국 사랑이란 이름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썩어 가는 곳에 소금은 생명이다. 어두운 그늘진 곳에 빛은 광명이다. 이것을 바르게 실천해야 한다. 사랑이 동반되지 않은 소금과 빛은 심판자가 되는 것이다. 심판을 하는 자는 또한 그보다 더 심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을 유념하자. 아픈 자를 위로하고 감싸주고 어둡고 외로운 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며 그들을 바른 곳으로 인도하는 자가 참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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