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를 구축한 자 멸망치 않는다 (약 2:14~26)
아름드리 나무를 자를 때 어떻게 하시는 지 아십니까? 요즈음이야 전기톱으로 ‘쓱싹’ 하고 잘라내면 그만이지만 그 전에는 가운데에 쐐기를 박아 그것을 내리치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제아무리 큰 거목이라도 이렇게 쐐기를 박고 그 곳을 계속해서 내리 치다보면 결국 넘어가게 되었지요.
악한 마귀 또한 이러한 원리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쁘게 돌아다니며 가정이나 국가, 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쐐기를 박아 넣고 있지요. 쐐기를 박는데 성공하기만 하면 그 다음은 그야말로 일사천리(一瀉千里), 서로 의심하고 미워하며 싸우다 결국엔 파국을 맞는 것입니다.
마귀는 처음 아담과 하와에게 이 방법을 적용했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동등하게 될 수 있다’ 하여 쐐기를 박았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믿음을 파기시켰던 것입니다. 그 결과 아담과 하와는 낙원에서 쫓겨나는 비참한 운명을 초래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순간의 선택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불신은 이렇게 재앙을 초래합니다.
그렇습니다. 신뢰는 곧 믿음입니다. 믿어주는 것이 힘이요 능력이며 사랑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믿어 주면 남편은 직장에 나가 자기 능력의 120%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따뜻한 미소와 사랑으로 자기 자녀를 인정해준다면 그 자녀는 결코 나쁜 길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상사가 부하를 믿고 모든 것을 맡긴다면 그는 자신을 다 바쳐 상사의 그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요즈음 우리 사회를 보십시오. 불신풍조가 사회 곳곳에 만연되어 있습니다. 곳곳에서 노사 분쟁이 끊이질 않고, 데모를 벌이는 가 하면, 국민들이 검찰은 물론 위정자들의 말을 도무지 믿지 못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이러한 분쟁은 신뢰가 구축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인 것입니다. 서로를 믿는 풍토가 조성되지 않으면 이 사회적 현상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실 때에도 그는 이삭을 통하여 자손이 번창케 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흘 길을 걸어가면서도 흔들림이 없었던 것입니다. 믿음이란 이처럼 믿을 수 없는 것까지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리아의 오라버니인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은 너무 늦게 오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있는 판국에 예수님은 무어라고 하셨습니까. ‘네가 믿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썩은 냄새가 진동해도 너는 ‘내가 저를 살릴 줄 믿느냐?’ 물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믿나이다’ 하고 믿음을 보이자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끌어내신 것입니다. 바로 믿음의 위력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믿음의 선친들이 이렇게 좌우로 흔들리지 않고 고난과 역경의 길을 담대히 헤쳐갈 수 있었던 것도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일점 일획이라도 오차가 없고 변수가 없다는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불신했더라면 주변의 모함소리에 쉽게 주저 앉아버렸을 겁니다. 불신의 요소는 결코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자리잡은 불신의 요소를 통해 그것을 타고 악한 마귀가 계교를 부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반석이 되면 불신의 요소는 타고 오지 못합니다. 바위에 성냥불을 그어 댄들 불이 붙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신뢰보다 무서운 파괴력을 가진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신뢰를 잃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이는 마치 한 장의 벽돌이 빠져 건물이 무너지는 것과 같습니다. 불신은 우리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상대가 의심스러워지고 이상하게 보이게 합니다. 빨간 안경을 쓰면 빨갛게 보이듯 불신이 드리워진 눈초리로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미심쩍게 보이는 것입니다. 거목도 한 마리 딱정벌레로 인하여 넘어질 수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성냥개비 하나가 온 짚더미를 태우듯, 작은 불신 거리가 그동안 정성 들여 쌓아 올린 공든 탑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대가 어떠합니까?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성경은 믿음이 무엇이며 형제를 사랑함이 무엇이며 사회에 바람직한 상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사회, 번영하는 국가, 부흥하는 교회, 행복한 가정의 기반에 무엇이 깔려 있는지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신뢰를 구축해봅시다. 믿는 자들이 불신의 풍조를 몰아내고 서로가 서로를 믿는 사회를 구현해 보면 어떨까요. 부정적인 생각과 시각을 버리고 긍정적이며 믿음의 시각을 가집시다.
생각이 결과를 낳는다고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아는 말했습니다. 불신은 적당히 잘라내면 안 됩니다. 불로 태워 뿌리까지 근절시켜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의 힘으로 해야 합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있으면 신뢰는 구축됩니다.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올해 범이 날개를 다는 복을 받자고 했습니다. 사업이 잘 되고 가정이 행복하며 소원하는 것들을 다 이루는 한 해가 되자고 기도했습니다. 범에 날개가 나기 시작했습니까? 아니면 지금 비상(飛上)중입니까? 당신의 삶에 신뢰가 구축된다면 지금보다 급부상한 복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믿음을 가집시다. 하나님께 완전한 믿음을 보이고 사람들 사이에 신뢰를 보이면 영, 혼, 육에 넘치는 복이 임할 것입니다. 서로를 믿고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주님이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분명 흡족해 하실 것입니다. 불신은 다시 불신을 낳고 결국은 재앙에 이릅니다. 그러나 신뢰는 신뢰와 사랑을 낳고 평안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 모두가 신뢰하고 사랑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신뢰보다 무서운 파괴력은 없다 네 안의 불신의 쐐기를 없애라
작은 불씨가 짚더미를 태우듯 의심의 벌레가 조직을 파괴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