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련한 후 정금 같이 쓰시는 하나님
'이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갈까' 몇 번이나 되뇌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친구 집에서 우현히 한 테이프를 보게 되었지요. 그런데 그것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미국 플로리다의 김진경 전도사입니다. 제가 미국으로 온지도 벌써 10년 세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아픔을 뒤로하고 미국으로 왔기에 가만히 뒤안길을 되돌아보면 모두 상처투성이지만, 총회장 목사님을 만난 이제는 ‘하나님께서 저를 써 주신다’는 기쁨과 설렘이 앞서 목사님의 세계 선교에 감사함으로 동역하고 있지요.
저는 신앙 생활에 열심이었던 부모님의 기도를 들으며 자라났습니다. 나중에 체육고등학교에 진학하였고, 또 여군하사로 군대에 입대하는 등 여자로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군대생활과 사격 선수로 선발되어 다양한 체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순간은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고된 훈련 가운데 분명히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결혼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한껏 꿈에 부풀어 시작한 결혼 생활은 예상과 달리 날마다 꼬여만 가기 시작했습니다. 장성한 믿음이 아니었던 저는 성경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믿지 않은 사람과 멍에를 메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결혼생활이 행복하고 순탄한 것 같았는데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와는 헤어지는 아픔을 겪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그 때 저의 나이 28살 때의 일입니다.
미국에 와서 지친 마음에 위로를 얻고자 별 감동 없이 교회생활을 계속했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미국에서의 생활은 한국보다 더욱 저를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저를 위로해준 사람이 지금의 저의 남편입니다. 그도 저와 동일한 이별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지요. 우리는 곧 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아이들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저보다 18살이나 위인 남편과 아이들의 엄마 노릇을 하기에는 저는 너무나도 부족했습니다.
아이들의 엄마 역할이 힘들 때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갈까’ 몇 번이나 되뇌이다 다시 하늘을 보며 ‘저에게 새 힘을 달라’고 기도하기도 했지요. 이런 힘든 와중에 친구 집에 갔다가 우연히 흰옷 입은 총회장 목사님의 테이프를 접하게 됐습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해야 축복 받는다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그것은 충격, 바로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그 테이프를 빌려와 보고 또 보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고통스럽고 힘든 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몰랐고 하나님의 심정을 몰랐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정말 깊이 회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새로운 힘들이 저의 내면에서 솟구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테이프를 접한 것이 5년 전인 1997년의 일이었고 그 후 3개월만에 기적과도 같이 총회장 목사님을 직접 뵐 수 있었습니다. 그때 ‘총회장 목사님이 가시는 곳에 함께 찬양으로 동역하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막연한 기대감 속에 가만히 기도 하고 있었는데 그런 저의 마음을 주님께서 아시고 목사님의 미국집회와 영어권 집회 때마다 찬양으로 도울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어찌나 감사하던지요. 처음에는 복음 때문에 집을 비우는 저를 이해 못한 남편의 반대가 대단히 심했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이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일이 발생했고 저의 간절한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기적과도 같이 회복시켜 주시는 은혜를 체험한 남편은 이제 좋은 동역자가 됐습니다. 저를 당신의 도구로 편하게 쓰시고자 하신 주님의 섭리가 계셨던 것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23:10)’란 말씀처럼 저를 고난의 터널을 통과시키시고 연단하시더니 오직 예수님만 생각하시는 총회장 목사님을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귀한 종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비록 미국 땅에 살고 있지만 저의 작은 찬양의 달란트가 총회장 목사님의 세계를 향한 큰 복음사역의 비전에 보태어 지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