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라 (엡 5:15~18)
포항제철은 연중무휴, 그야말로 24시간 불철주야 가동되고 있습니다. 다른 기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파업조차 허락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만일 이것이 멈춘다면 용광로에 있던 쇳물이 식어 붙어 그대로 다 고철 덩어리가 될 것이고, 따라서 한 번 정지된 제철소를 다시 가동시키기란 정말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제철소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건강을 잃은 후 다시 찾기란 이와 마찬가지로 하늘의 별 따기이며, 명예가 훼손된 후에 그것을 다시 만회하기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또한 재산을 탕진한 후에 다시 보충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IMF를 통하여 뼈저리게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있을 때 잘 해야 합니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습니다. 또한 이를 만회하기란 뼈를 깎는 고통과 노력을 요구합니다.
영적인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성령 충만할 때 그 충만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 시인하고 또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이 성령을 처음 소유하고 우리는 주의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고, 영혼에 기쁨이 충만했었습니다. 하루 종일 입에서 찬송이 떠나지 않았고 밤새워 기도했었습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고 예수를 위해 우리의 몸과 마음과 물질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이를 좀먹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구멍이 나중 점차 커지는 것처럼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메워지지 않는 구멍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나가면 괜히 사람 때문에 시험이 듭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너무 길게 느껴지고 은혜가 되질 않는 것 같습니다. 기도를 하려면 몸이 꼬입니다. 뭔가 상실되어 간다는 증거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성령 충만함을 잃은 것이며 성령이 떠나고 계시는 증거가 아닙니까? 성령은 인격체이시므로 환영치 않는 곳에 거하지 않으시며 원치 않는 자에게서 떠나시며 훼방하는 자에게 훼방을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을 거슬려 세상을 향하거나 성령을 귀히 여기지 않으면 성령은 떠나시는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세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습니다. 처음엔 그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러나 점차 그의 마음이 완악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하나님을 멀리하매 하나님이 그를 떠나셨습니다.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삼상16:14). 그에게서 여호와 하나님이 떠나시니 사울은 마음에 평화가 없었고 시기와 미움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배역하고 그것을 변명하기에 바빴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부자(夫子)가 나란히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 후 사울의 뒤를 이어 다윗이 보위에 오릅니다. 그 또한 왕위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 죄를 지었습니다. 심지어 남의 아내를 취하기까지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달랐습니다. 그는 사울의 일생을 보았습니다. 사울이 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는지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를 드러내는 선지자 나단의 말에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聖神)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하고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영이 떠나시면, 즉 하나님이 떠나시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끝까지 붙든 다윗에게 하나님은 무어라 말씀하셨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호를 받지 않았습니까!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 분이 우리 안에서 잠들지 않게 해야 합니다. 늘 깨어 있어 쉬지 말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야 하며 나가서 그분을 확실히 증거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첫사랑을 잃어버리고 무기력한 신앙생활을 하게되는 것일까요? 원인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속에 있는 나태함과 안일함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속에 죄악을 잉태하는 통로요 죄악의 온상입니다. 안일한 신앙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성령은 활동력이 있고 살아 생명력이 있음으로 가만히 나태할 수 없게 하시는 것입니다. 샘물에 이끼가 조금 끼면 물은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 놓으면 나중에 그 이끼와 먼지가 샘물을 막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의 충만이 떨어지는 것이 하루 아침에 되어지는 사건이 아닙니다. 조금씩 안일하고 나태해지다보면 나중엔 아예 상실케 되는 것입니다.
마치 펌프질을 오래도록 안 하면 아무리 펌프질을 해도 물이 안 나오는 것처럼 성령도 마찬가지입니다. 나태한 신앙이 성령을 소멸시킵니다. 그럴 때는 어떡해야합니까? 남의 집에 가서 물을 얻어다 펌프에 부어넣고 다시 펌프질을 해야 합니다. 이처럼 성령의 충만함을 잃으신 분이 있으면 지금 당장 성령 충만한 자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그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그와 더불어 손을 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많이 애써야 합니다. 절대 포기하지 말고 펌프질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물이 나옵니다. 우리의 인생에 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더러운 것이 나가고 갈급하던 것이 해소가 되는 것입니다.
한 번 잃는 것을 다시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잃기 전에 잘 지켜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귀한 것은 성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성령을 소멸치 않도록 잘 지킵시다. 성령을 근심시키고 점차 거스르기에 결국 성령을 소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행위 때문에 성령이 슬퍼하지 않게 합시다. 첫사랑을 잃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잃고 난 후에 다시 회복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지금 하나님 뜻대로 살며, 그와 늘 교통하고 그로 더불어 삽시다.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느냐를 삶의 모토로 삼으면 됩니다. 성령으로 시작하여 성령으로 마치는 자가 되어 넉넉히 그 나라에 들어가며 그 나라의 왕권을 소유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게으름과 나태함은 네 인생을 좀먹는 벌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들 잃어버린 소가 돌아오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