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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실패의 역사를 반복하지 말라 (삿 2:1~23)

138호 · 2002-10-17

미국 미시간 주에 있는 모 박물관은 실패한 제품들만 전시해 놓는 것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기획 단계나 제조 과정에서 실패한 여러 제품들을 박물관 곳곳에 가득 쌓아놓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 박물관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가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이 곳을 찾는 기업가들과 연구진들이 '이렇게 막대한 재정을 들여 연구한 이 제품이 왜 실패했을까?'를 생각하며 실패한 원인을 연구 분석한 결과를 자사 제품을 만드는데 귀한 자료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실패를 통해 성공을 배운다고 하는 것일까요? 실패보다 더 무서운 것, 그것은 실패를 통해 깨닫지 못하는 것, 바로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성경은 성공과 실패의 역사가 기록된 한편의 거대한 서사시입니다. 그래서 성공을 소망하는 우리 모든 인생의 거울이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 민족의 발자취를 따라 가다보면 그들의 언제 흥했고, 언제 망했나, 또 어느 때에 평안을 누렸고, 어느 때에 재앙의 늪을 걸어갔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흥망성쇠(興亡盛衰)가 누구의 손에 있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제 긴 유랑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각 지파대로 땅을 분배받아 살아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자 아쉽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함께 하신 하나님, 여호수와아 함께 하신 하나님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애굽에서 탈출시키셨고, 홍해를 가르셨는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 그들을 먹이셨으며, 또 온갖 대적들로부터 어떻게 그들을 보호하시어 가나안에 정착할 수 있게 하셨는지를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도 쉽게 가나안 땅에 만연한 각종 우상들을 섬기며 그 타락한 문화들에 젖어 살면서 하나님의 목전에서 온갖 간음과 악행을 거듭 자행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의 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미디안과 블레셋 등, 여러 이방 민족들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를 징계함으로 그들을 깨우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 고통은 너무나 큰 것이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이방 민족의 압제를 받게 된 그들의 삶은 이내 피폐해질 때로 피폐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울며 회개하였고, 이러한 그들을 바라보시며 하나님은 마음을 돌이키시사 사사를 세워 그들을 노략자의 손에서 건져내시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사사기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개도 한 번 두드려 맞은 구멍에는 다시 들어가지 않은 법인데 이스라엘 민족은 이러한 과정을 사사기에만 7번을 반복합니다. 평안하면 또 하나님은 뜻을 역행하고 패역의 길로 갔으며 하나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는 일을 거듭 자행했던 것입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결국 그들을 나라 없이 떠도는 민족, '디아스포라'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바로 실패의 역사를 보고도 깨닫지 못한 결과였던 것입니다.

거울을 보고 더러운 것을 찾지 못하면 거울의 의미는 상실되고 맙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보고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도 그들과 같은 상황에 빠지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역사의 수레는 하나님이 돌리시는 것과 인생의 주관자 역시 하나님이심을 깨달아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성공이 우리의 지혜로, 우리의 노력으로, 우리의 힘으로, 문벌로 되지 않음을 성경은 분명히 예시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정복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계략이나 전술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힘으로 이루어 졌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역사가 이루어 진 것입니다. 여리고를 무너뜨리고 아이성을 치러 갔을 때를 비교하면 더욱 그것이 확실해집니다. 여호수아는 난공불락의 성 여리고를 무너뜨리자 아이성 정도는 우습게 여겼습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그는 참패하고 맙니다. 하나님을 두고 혼자 갔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제야 하나님으로 인해 성공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합니다. 인간의 지략으로 성공은 절대 오지 않습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은 성공이 힘에 있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골리앗과 다윗은 누가 보아도 어른과 어린 아이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나간 아이가 이겼습니다. 거대한 골리앗이 물멧돌 한 방에 넘어진 것은 돌멩이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기드온의 일화를 보면 성공의 사람의 수에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찌 300명으로 수십 만의 미디안 군사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좋은 가문이라는 밑거름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에스더서를 보십시요. 에스더는 고아였지만 거대한 제국 페르시아의 왕비가 되는 영광을 얻지 않습니까! 또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과 아벳느고를 보십시오. 그들 역시 한낱 포로 신세였지만 이방 민족의 고위직에까지 오르지 않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그들이 하나님을 극진히 섬긴 사람들이었고 또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공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을 떠나는 순간 실패와 재앙과 고통의 터널이 열리는 것입니다. 인간의 아무리 애를 쓰고, 아무리 노력해도 인생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후' 하고 불어 버리시면 인간의 노력이 허사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진정한 성공은 이생의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새 예루살렘에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 인간의 힘으로 이 땅에 유토피아를 쌓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떠난 자는 결국은 미끄러져 가는 것입니다. 그 끝은 지옥인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의 사도바울은 인간의 힘으로 문벌로, 그의 지식으로 충만하여 방자하던 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인생의 성공자라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난 후로 그의 중심이 옮겨졌습니다. '나'로 가득했던 심령에 '예수'가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늘 자랑하던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사나 죽으나 예수를 위해 뛰었습니다. 그는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땅의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죽음을 불사하고 복음을 들고 동분서주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신의 인생이, 당신의 기업이, 당신의 자녀가 성공하기를 원하십니까? 이제 보김 땅에 모여 회개한 이스라엘 민족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울며 지난 일을 회개하고 오직 하나님으로 거듭나 새 사람이 되어 봅시다. 이제껏 실패의 연속의 인생을 청산하고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성공의 반열에 들어가 봅시다. 우리의 중심이 세상의 것과 자아에서 벗어나 오직 예수 중심으로 들어가 봅시다. 그 안에 축복과 성공과 장수와 영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외에 우리를 축복으로 인도할 자가 없으며 예수로 말미암지 않고는 구원이 없습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심을 명심하여 그에게 나아갑시다.

할렐루야.

실패보다 더 무서운 것은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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