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색 예수님과 솔로몬의 성전
분홍색 예수님과 솔로몬의 성전
성경을 읽던 중 마음 한구석에 깊은 의문이 남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성막을 지으라 명하신 하나님께서는 기구 하나하나에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은혜의 예표를 세심하게 담으셨습니다. 어둠을 밝히는 금 등잔대와 생명의 떡을 올리는 진설병 상은 유일한 빛과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제사장이 손발을 씻는 물두멍은 말씀과 성령을 통한 지속적인 성화를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성막이 성전으로 확장되면서 등잔대와 진설병 상은 10배로 늘어났고, 성전 벽에 창문이 생겨 '유일한 빛'이라는 의미가 다소 희석되는 듯했습니다. 물두멍 역시 12마리 놋소가 받치는 거대한 놋바다와 10개의 물두멍으로 대형화되며 고대 우상 형상을 연상시키는 듯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럼에도 성전이 완성되자 하나님은 구름과 불로 그 영광을 가득히 나타내시며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본래 의도와 달라 보임에도 왜 그 성전을 기쁘게 받으셨을까 하는 의문은 의외의 곳에서 풀렸습니다.
유치부 공과 시간에 아이들이 그린 예수님 얼굴은 분홍색, 초록색, 심지어 검은색으로 칠해져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격려하며 진심으로 칭찬해 주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겉모양이나 솜씨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마음이었습니다. 솔로몬 또한 자신의 가장 귀한 것으로 최고의 성전을 드리고 싶었던 '사랑의 마음'이 있었고, 하나님은 그 중심을 받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도 외형과 틀에 얽매여 가장 소중한 마음의 중심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섬김의 기쁨
지난 7월 30일부터 2박 3일간 전국 대학청년부 수련회가 장성 예루살렘기도원에서 진행되었다. 청·장년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수련회 봉사에 함께할 수 있는 은혜를 누렸다.
청·장년부에는 어린 자녀를 둔 가정부터 중·고등학생을 키우는 가정까지 다양한 연령의 가족들이 있다. 여름이 되면 청소년 수련회와 유치부·초등부 성경캠프, 산상집회까지 이어져 모두가 분주한 시간을 보낸다. 그런 가운데서도 뜻있는 가정들이 하루 이틀 연차를 내어 기도원으로 향했다.
한정된 휴가와 자녀들의 일정, 직장의 업무를 조정하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사모하고 받은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섬김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며 큰 은혜를 받았다.
봉사자들은 화장실과 수영장 청소, 침례식과 외국인 섬김, 야외 프로그램 지원 등 손길이 필요한 곳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감당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우리가 청년이었을 때도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이렇게 섬겨 주신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섬김'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과 은혜, 시간과 물질, 건강은 우리만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데 사용하라고 맡겨주신 선물일 것이다. 우리의 작은 섬김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누군가의 섬김이 있었기에 우리가 은혜를 누릴 수 있었던 것처럼, 이제는 우리도 또 다른 누군가를 섬기는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그렇게 섬김은 한 사람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해는 물을 받아들이기만 하고 흘려보내지 않기 때문에 생명이 살 수 없는 호수가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는 데서 멈추지 말고, 받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는 삶을 살아가자. 그럴 때 우리 삶도 메마르지 않고, 하나님의 생명과 기쁨이 흘러넘치는 삶이 될 것이라 믿는다.
우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300미터 앞에서 우회전입니다.",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잘못된 길로 들어설 때마다 내비게이션은 같은 말을 반복한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조용한 내비게이션은 없을까?'
만약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내비게이션이 있다면 어떨까? 운전은 편할 것이다. 길을 잘못 들어도, 목적지와 반대 방향으로 가도, 과속해도 아무 말이 없다. 얼마나 자유로운가? 그런데 그 자유는 목적지를 잃게 만드는 자유다. 좋은 내비게이션은 운전자를 귀찮게 한다. 잘못된 길로 가면 곧바로 알려주고, 방향을 바꾸라고 말한다. 때로는 같은 말을 반복한다.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하게 하려고.
많은 사람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신을 원한다. 죄를 지어도, 욕심을 부려도, 삶을 바꾸라고 말하지 않는 신이라면 부담 없이 믿을 수 있다. 이것이 우상의 본질이다. 우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인간의 욕망을 건드리지 않으니 언제나 편안하다.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은 다르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된 길을 걸을 때 말씀하신다. "그 길이 아니다.", "돌이켜라.", "나를 따르라." 때로는 그 말씀이 부담스럽고 귀에 거슬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괴롭히려는 간섭이 아니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려는 사랑이다.
오늘날의 우상은 돌이나 나무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돈과 성공, 안정, 명예, 심지어 종교 생활까지도 하나님보다 앞서면 우상이 될 수 있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불편한 진리를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으로 보인다. 결국 우상숭배의 본질은 형상의 문제가 아니라 주권의 문제다. 내 인생의 방향을 누가 결정하는가, 내 삶에 '아니다'라고 말씀하실 권리를 누구에게 드리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에 방향을 수정하는 데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내비게이션은 편하지만, 목적지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우상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바로잡으시고, 때로는 방향을 바꾸게 하시며, 마침내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다. 우상은 내가 원하는 길을 허락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가야 할 길을 인도하신다. 우상은 나를 바꾸지 않지만, 하나님은 나를 새롭게 하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