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승리하는 신앙생활
믿음의 승리하는 신앙생활
딸아이가 벌레에 물렸는지 한쪽 팔이 심하게 부었다. 약을 발랐는데도 이틀이 지나도록 그대로였다. 마침 어느 성도님이 기도하고 믿음으로 선포하여 하나님이 고쳐주셨다는 믿음의 간증을 듣고, 주일 아침 교회 가는 길에 딸을 붙잡고 그 자리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함께 기도했다. 세 시간쯤 지났을까, 예배를 다 드린 후 딸아이가 달려오더니 소리치며 보여주었다. “엄마, 다 나았어요!” 놀랍게도 약을 발라도 빨갛게 퉁퉁 부어있던 부위가 몇 시간 만에 싹 가라앉고 흔적만 남아있었다. 그 순간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듯했다. “네 기도를 듣고 있다. 믿음으로 살아라.”
믿음으로 예수님 앞에 나아갔던 이들은 모두 고침을 받고 구원받았다. 중풍병자와 네 친구들에게 믿음이 있는 것을 보시고 그의 죄를 사하시고 그 자리에서 그를 일으키셨고,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나을 거라는 간절한 생각을 가지고 나아와 고침을 받은 혈루증 여인에게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예수님이 직접 멀리 오시지 않아도, 말씀만 하시면 곧바로 하인이 나음을 입을 거라고 예수님 앞에 겸손히 나아온 로마 백부장의 믿음은 예수님께 크게 칭찬받았다.
그렇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역사하신다. 운동선수가 고된 훈련을 통해 강인하고 민첩하게 단련되어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크고 작은 상황들을 통해 믿음을 단련시키신다. 이는 우리가 믿음의 방패를 굳세게 들고 악한 것들의 화전을 멸하여 이 세상 가운데서 어떤 어려움이 올지라도 능히 승리케 하기 위함이고, 또한 믿음의 시련을 통해 내 안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정금같이 나와서 그날에 주님께 칭찬과 영광과 면류관을 받게 하시기 위함이다.
신앙생활은 한마디로 믿음의 여정이다. 천국에 입성하는 그 순간까지 우리 앞에 깊은 골짜기와 험준한 산등성이, 수많은 유혹들이 있지만, 오직 우리 생각과 시선을 상황이 아닌 주님께 고정하면 넉넉히 승리할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고, 그분을 생각하며 인내의 경주를 완주하라고 강력히 권고하신다(히12:1~3). 우리 안에 오셔서 지금도 탄식하심으로 우리 기도를 도우시는 성령님을 힘입어 오늘도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이국진 사모
상처는 모래에, 은혜는 돌판에 새기라
“충성! 회의 준비 끝!”
장교, 부사관, 군무원 전체가 모이는 회의에서 매번 하던 대로 부대장님께 대표로 경례했습니다. “정 중위! 너 어디 아파? 목소리가 왜 그렇게 작아!” 부대장님께서 대뜸 호통을 치셨습니다. 이어서 각 부서장이 업무 보고를 하자 심하게 꾸중하시고, 끝으로 모두에게 정신을 차리라고 한 번 더 역정을 내신 후 자리를 뜨셨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군인의 기본에 대해 지적을 받으니, 순간 억울하기도 하고 매우 수치스러웠습니다. 한편으로는 매번 하던 일이라고 긴장을 늦추었던 건 아닌지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잠시 후 선배 장교가 제 편을 들며 괜찮냐는 눈빛으로 접근하자,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제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습니다.”라고 말하며, 혹시라도 부대장님에 대한 부정적인 대화로 이어질 것을 미리 차단했습니다.
어느 날, 부대를 떠나 파견 훈련에 참여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깊은 지하 벙커나 야외 텐트 생활을 하고 밤새워가며 난이도가 높은 업무로 고생해야 했기에 그 임무를 담당해야 할 장교조차 기피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에 저를 지목한 것입니다. 담당 장교가 아님에도 이후 모든 파견 훈련은 저의 몫이었고,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경험이 없는 초급 장교가 어려운 임무를 감당하려니 심한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고생이 컸던 만큼 성장했지만, 그곳에 보낸 부대장님에 대해 불만을 가졌을 것이라고 잘못 생각한 누군가가 다가와, 부대장님에 대한 불평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마디도 동조하지 않고, 곧바로 대화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돌렸습니다.
그렇게 행동했던 이유는 ‘흐르는 물 한 컵을 떠줘도 그 은혜를 잊지 말라’는 총회장 목사님의 말씀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었고, 순간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한 고생을 했더라도 부대장님께 입은 은혜를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대장님에 대해 잠시 서운했던 마음보다 감사의 마음이 앞섰던 것입니다.
부대장님은 강하고 엄격한 분이라 모두 어려워했지만, 그와의 첫 만남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좋은 분을 만나게 하셨다.”고 시인한 대로 저를 인자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해 주셨습니다. 전입 환영 회식에서 부대장님이 처음 술잔을 권했을 때, 크리스천이라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거절했던 저를 오히려 대단하다고 추켜세워 주셨기에, 이후 회식 때마다 술을 마시지 않고도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었고, 임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것이 서투르던 때에도 열정을 기특하게 보시고 표창장을 주실 정도로 늘 아껴주셨습니다.
시간이 흘러 부대장님이 다른 곳으로 떠나고, 얼마 후 저는 파견 훈련을 나갔습니다. 그곳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는데, 부대장님이었습니다. 다른 곳에서 임무 수행 중이던 그분에게 그 훈련이 처음이었던 탓에 제가 경험자로서 도움을 드려야 했습니다.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고 싶어 그를 정성껏 도왔습니다.
어느새 전역하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은혜 입은 모든 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끝으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동안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고, 그의 앞날을 축복하며 기도하겠다고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후 하나님께 기도한 대로 그는 병과 역사상 갈 수 없었던 지위에 오르게 되었고, 저는 기도로 그에게 은혜를 갚았습니다.
순간의 서운함 때문에 그가 베푼 은혜를 잊었다면, 미움과 원망 속에 나 자신을 가두어 둔 채, 하나님께서 사람과 환경을 통해 예비하신 훈련의 시간들을 헛되이 지나쳐 버리고 마음을 넓히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세월은 수많은 기억을 남깁니다.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감사가 자라고, 감사는 삶을 더욱 넉넉하게 만들지만, 상처를 움켜쥔 사람의 마음에는 미움과 원망이 자라고, 미움과 원망은 삶을 메마르게 할 뿐입니다. 상처는 모래에 써서 바람에 날려 보내고, 은혜는 돌판에 깊이 새겨 오래도록 간직하는 건 어떨까요? 삶의 마지막 순간을 미소 짓게 만드는 것은 아픔과 상처의 흔적이 아니라, 은혜와 감사의 추억일 테니 말입니다.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3:13).
정명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