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않는 믿음
포기하지 않는 믿음
작년 한 해 동안 러닝을 꾸준히 하며 마라톤에도 참가하게 되었고, 자신감이 붙으면서 일상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래서 올해에는 더 큰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달려보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무릎에 통증이 찾아오면서 더는 달릴 수 없게 되었다. 조금 쉬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통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제 다시 뛰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고, 몸도 점점 무겁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하루하루 눈에 띄는 변화가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밥을 먹다가 주방에 걸어놓은 교회 달력 속 목사님의 잠언이 눈에 들어왔다.
“포기는 자살이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
꼭 나에게 하시는 말씀 같았다. 3, 4월 두 달 동안 그 잠언을 보면서 포기하지 않으리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비록 달릴 수는 없었지만,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는 운동을 찾아 집에서 조금씩 몸을 움직이며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고 날마다 기도를 쉬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문득 ‘다시 한번 천천히 뛰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여전히 통증이 있었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거의 6개월 만에 처음으로 쉬지 않고 5km를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그 순간의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동안 아프지 않고 달릴 수 있었던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포기하지 않도록 믿음을 주시고 회복시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올려드렸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지난날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시작하고 포기한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이룬 일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결과물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살다 보면 우리의 꿈과 계획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기도해도 금방 변하지 않는 현실 앞에서 낙심될 때도 있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변화가 없어 보여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계시며, 우리가 기도하며 조용히 견디는 그 시간들을 결코 헛되게 하지 않으신다.
그러니 오늘도 다시 한번 마음을 일으켜서 스스로에게 말해보자.
“절대 포기하지 말자!”
송지혜
영적 다이어트
사람들은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이제 영적 다이어트에도 관심을 갖길 바란다. 우리 영이 지금 너무 비대해지고 있다. 하나님의 것으로 가득 차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만, 신학과 교리로 메워져 하나님과의 교류에 장애가 되고 있다. 과다한 지방질로 인하여 혈관에 콜레스테롤이 많아 혈액의 원활한 흐름을 방해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콜레스테롤은 만병의 원인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려니 군데군데 콜레스테롤이 막는다. 그동안 배운 신학이 자꾸 가로막고, 논리의 타당성이 문제가 된다. 그래서 논리적으로만 파고들다 보니 머리만 비대해지고 그러다 결국 동맥경화증에 걸려 영적 중풍병자가 되고 만다. 영적 마비가 온 것으로, 점차 하나님과의 절연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다이어트 하자. 과잉 비대를 초래하는 것들과 혈액순환 장애를 일으키는 해로운 것들을 먹지 말자. 기름지고 먹음직하여 혀끝을 유혹해도 절대 먹지 말자. 오직 하나님 말씀으로만 양식을 삼자. 우리는 생령(生靈)이 투여된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나님 말씀을 먹어야 살게 되어 있다. 예수는 산 떡이요, 음료가 되신다고 하셨다. 바로 예수만이 우리 영을 살릴 수 있고, 영이 살면 몸도 살아난다.
몸매에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영도 가꾸어 아름답게 하자. 쓸데없는 것으로 채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 진정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하나님이 복된 자녀가 되자.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10:5).
옹달샘 책 중에서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한번은 지갑을 잃어버렸습니다. 집에 왔는데 지갑을 찾아도 도통 보이지 않더라고요. 신분증부터 각종 카드에 현금, 중요한 명함들도 잔뜩 들어있는데 말입니다. 속상하고 마음이 불편했지만, 불쑥 믿음으로 뿌렸습니다. “지갑은 돌아올 거야. 천사는 내 지갑을 찾을지어다!” 통성으로 부르짖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믿음으로 말을 뿌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혹시 지갑 잃어버리셨나요?”,
“네. 맞습니다!”, “네, 제가 청계산에서 지갑을 주웠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럼 어디로 가면 될까요? 제가 계신 곳으로 가겠습니다”, “저는 동작구에 삽니다”, “그런가요? 제 교회가 동작구에 있습니다!”(당시 중고등부 교사인지라 동작1교구에서 중고등부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교회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네, 저는 예수중심교회에 다닙니다.”
그랬더니 전화기 너머로 하는 말, “할렐루야! 저 동작1교구 김영환 장로입니다. 교회에서 만나서 드리겠습니다!”
소름이 돋았습니다. 기도하러 갔다가 지갑을 청계산에서 잃어버렸는데, 놀랍게도 그것을 우리 교회 장로님이 발견하신 것입니다. 청계산은 우리 교회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곳 아닙니까? 그 넓은 곳에서 제 지갑이 하필 우리 교회 장로님 눈에 딱 띈 것입니다. 말로 뿌린 대로 천사가 역사한 것입니다.
또 한 번은 젊은 날 하나님께 다 드리고 싶어 당시 제 한 달 월세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또 감동을 받아 제 유일한 목돈이었던 청약저축을 깨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두 차례나 드렸던 헌금이 의도치는 않았지만, 다 ‘주거비’와 관련된 돈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사람들 앞에서 입버릇처럼 뿌렸습니다. “난 집 걱정은 안 해. 내 집은 하나님이 책임지실 거야!” 그리고 훗날, 저는 이 말이 뿌린 약속의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말 잘해야 복 받습니다. 성경이 분명히 말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18:21).
무심코 뱉는 부정적인 말은 싹 잘라버리고, 오늘 내 삶을 향해 초긍정의 멋진 말들을 팍팍 뿌려봅시다. 우리가 뿌린 그대로 기적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문천명 전도사
내 아이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녀를 양육하는 과정은 기쁨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부모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요즘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더욱 많이 하게 된다. 말을 해도 대답만 할 뿐 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약속한 시간이 있어도 미리 준비하지 않고 늘 닥쳐서야 움직이는 모습 등 그런 일상들이 너무 못마땅했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모습을 보면 답답한 마음에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공부폰(전화와 문자만 되는)으로 바꾼다, 폰을 없앤다’ 등의 협박을 해도 이제는 먹히지 않는 사춘기가 왔다. 남편에게도 저렇게 두어서는 안 될 것 같다 하소연을 해보았지만, 남편은 ‘아이에게 동기부여가 있어야 하고, 지금은 원래 그런 시기이고, 자기가 깨달아야 하니 좀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만 돌아왔다.
많이 기다린 것 같은 답답한 마음을 안고 기도하던 어느 날, 문득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만약에 내가 저 아이라면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기 싫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명령조로 말하는 엄마가 집에 있으니 오기 싫을 것 같다는 생각, ‘일어나라, 씻어라, 빨리 가라, 숙제해라’ 등등 군대같이 명령조로만 이야기하는 엄마가 있는 집을 누가 가고 싶을까.
주변에 고민을 털어놓으면 다들 하나같이 하는 소리가 ‘학교에 결석하지 않고 늦지 않게 잘나가는 게 감사한 일이다, 학원 숙제를 다 해가는 게 어디냐, 성실한 거다, 칭찬해줘라’ 등의 말을 했다. 처음에는 그런 말들이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요즘 들어 점점 와닿고, 또 생각해보면 크리스천 가정에서 신앙생활하며 하나님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큰 복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춘기 엄마의 오장육부’라는 책을 쓴 서울대 나민애 교수는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견뎌낼 수 있는 힘이라고 말한다. 자식이 뭔지, 미운가 싶다가도 마음에 걸리고, ‘사랑만 주자’ 싶다가도 또 짜증이 난다고. 위로가 되었던 것은 ‘나만 이런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구나’하는 것이었다. 서울대 교수도, 베스트셀러 작가도 사춘기 자녀 앞에서는 같은 고민과 어려움을 경험한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었다.
에베소서 6장 4절에 보면,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씀이 있다. 사춘기 자녀는 잔소리에는 귀를 닫지만 존중받는다고 느끼면 마음을 연다고 한다. 실제로 해보니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말씀을 되새기며 아이를 존중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양육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시기는 ‘부모님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 들어가기 때문에, 단순히 말씀을 가르치는 것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경험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아이에게 훈계보다 관계를 먼저 세우고, 부모가 먼저 말씀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강요보다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가정예배를 꾸준하게 드리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리고 실패했을 때도 사랑받는다는 것을 알려주고 믿음의 공동체를 만들어주면, 신앙이 훨씬 견고해진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 또한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옳은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말씀으로 양육하면 아이는 분명 말씀 안에서 잘 성장할 것이다.
사춘기는 아이만 성장하는 시기가 아니라 부모도 함께 성장하는 시간인 것 같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자녀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나의 조급함과 부족함을 돌아보게 하시고, 더욱 기도하게 하신다. 오늘도 자녀를 하나님께 맡겨 드리며,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씀을 붙들고 나아가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과 다음 세대를 친히 붙드시고 인도하실 것을 믿는다.
정효경 집사
믿음과 생각
우리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말씀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됩니다. 그리고 믿음의 중요성에 대해 듣고 배웁니다. 하지만 제게 ‘믿음’은 너무 추상적으로만 느껴졌습니다. 물리적으로 무엇을 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명확하게 느껴지거나 보이는 것도 아니어서요. 그런데 믿음이 곧 생각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가복음 5장에는 12년 동안 불치병을 앓던 여자의 생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겠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했기 때문에 옷자락에 손만 대도 낫는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여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자의 생각이 믿음에서 비롯되었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자식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 경우 불신과 염려가 앞설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만약 이삭이 죽더라도 하나님은 다시 살리실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신다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그의 생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시편 42편에서 다윗은 자신을 조롱하는 사람들의 말을 생각하며 마음이 상합니다. 그러나 낙심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기억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생각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의 말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을 향합니다. 다윗은 부정적인 생각을 붙들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소망과 믿음으로 생각의 방향을 바꾼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관점으로 생각을 바라보니, 생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생각은 그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로 적극적으로 생각을 바꿔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현실과 타협하며 쉬운 생각을 할 것인지,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을 것인지 선택은 나에게 달려있습니다.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내 생각 속 어떤 말씀의 씨앗을 심고 계신가요?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선택하는 하루가 되길 축복합니다!
전소희
부모 마음
중학생인 첫째 아들은 사춘기임에도 불구하고 늘 방문을 활짝 열어두고 친구와 통화를 한다. 의도하지 않게 통화 소리를 엿듣게 되면, 늘 게임이나 축구가 주제였던 예전과 달리 요즘엔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느니, 누가 누구와 사귄다느니, 이성 친구에 대한 내용이 많다.
그러던 어느 날, 요 녀석이 여자 친구가 생긴 것 같았다. ‘우리 아들 많이 컸네’, 생각하다 문득 다른 아이가 내 아이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좀 좋았다. 물론 그 집 딸이 내 아이라 생각하면 또 썩 기분이 좋진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게 딸을 안 주셨나.
이런 게 부모 마음인가 생각하다 보니, 문득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가 떠오르며 하나님 마음이 느껴졌다. 누가 내 아이를 좋아해 주면 내가 좋고, 내 아이가 힘든 일을 당했을 때, 아프거나 다쳤을 때, 누군가 도와주고 돌봐주면 내가 참 고맙고, 내 두 아들이 형제끼리 서로 돕고 챙겨주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참 흐뭇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이웃을 사랑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예수님 물음에 답한 율법 교사의 말을 예수님께서 옳다 하시고, 그 율법 교사가 그럼 이웃이 누구냐 되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부모 마음같이 느껴졌다. 마치 “고통 중에 신음하고 있는 내 아이에게 네가 다가가서 좀 도와줄 수 있겠니?”라고 하시는 애절한 사랑의 음성처럼 느껴졌다.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하신 예수님 마음,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을 선하고 아름답게 보시는 하나님 마음, 그것은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었으리라.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니라”(눅10:33~34).
박찬영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