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필요한 곳에 누룩을 써라
아이들을 위해 빵을 만들려고 이스트를 밀가루반죽에 넣고 조금 있었더니 반죽에 발효가 일어 부풀어 졌다. 이스트의 발효력은 대단한 것이다. 성경에도 이스트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마16:6)’. 누룩이 바로 이스트와 같다.
유대인들은 발효를 곧 부패의 의미로 해석하고 있는 경향이 있었다. 여기 바리새인의 누룩이란 신앙심은 없고 의식만을 가진 것을 말하며, 사랑은 없고 위선만을 떠는 자들을 빗대어 하신 말씀이며 사두개인의 누룩이란 지나친 현실주의를 말한다. 부와 명예를 중시하던 사두개인들은 정치인들과 결탁하여 그것들을 소유하기에 급급했다. 내세를 믿지 못해 현세에만 관심이 있던 자들에게 대한 경고의 말씀이다.
이것은 분명 예수님 당시만의 모습은 아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오늘 교회 안에도 분명 있다. 거룩으로 가장한 위선파, 예수를 문화용품화하는 자들이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그들의 누룩을 조심해야 한다. 누룩의 힘이란 일파만파를 타기 때문에 그들의 휘몰이를 조심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 이런 자들이 판을 치면 교회는 위험하게 된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5:6)’. 이것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죄악을 묵인하는 자들에게 소리 높여 한 말이다. 작은 잘못을 묵인한 것이 전체를 해치는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사랑은 무조건 감싸고 용서해 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고름은 짜내야 온 몸이 아프지 않은 것처럼 악은 잘라내야 나도 살고 주위도 살게 되는 것이다. 죄와 악은 끈질긴 것이어서 완전 제거하여 확산의 길을 막아야 한다.
누룩도 아주 차가운 곳에서는 그 발효력이 떨어지게 되어 있다. 죄에 대해, 악에 대해 아주 냉정하게 반응하면 이를 차단할 수 있는 것이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우리 속담이 있는데 이것은 죄를 묵인해 주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떡잎에 노란 것은 일찍 떼어내야 다른 것을 살릴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작은 잘못이나 거짓을 가벼이 여겨 이를 야단치지 않으면 이것이 마치 누룩의 발효력처럼 자라 나중에는 큰 죄악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성경에 누룩의 의미가 다 나쁘게 쓰인 것만은 아니나 죄악이 누룩의 힘처럼 퍼지는 이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싶다. 죄는 선도해서는 안 된다. 애초에 용납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누룩이 퍼지지 않도록 죄를 냉동시켜 죽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