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나의 왕이시다 (고전2:1~16)
우리 예수중심 제자원이 모든 커리큘럼을 바꾸어 실시한 지 일년이 되어갑니다. 일반 신학교에 있는 모든 과목을 폐지하고 오직 성경 한 권으로 돌아가려는 시도였습니다. 처음엔 많은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으나 주객(主客)이 전도되는 우리 신학의 현실을 보면서 우리만이라도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취지 아래 이를 단행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판단은 옳았습니다.
교회의 변천사나 어떤 개혁가의 뒤를 좇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만을 배우게 된 우리 신학생들은 예수만이 진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세상의 지식이 한낱 배설물에 불과하다는 사도 바울의 말을 음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기도하고 더욱 전도하며 자기의 본연의 길을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인 것입니다.
세상의 어느 책에도 사람이 흙에서 만들어졌다는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생기를 코에 불어넣어 사람이 생령(生靈)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은 전설이나 동화쯤으로 여깁니다. 예수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사 우리의 죄를 담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고 죽은 지 3일만에 부활, 승천하시고 언젠가 우리를 주님이 가신 그 모습 그대로 데리러 오신다는 진리를 세상은 가설이라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알고 믿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우리가 창세 전에 하나님의 예정가운데 있던 자였고 하나님의 계획가운데 있는 자들로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알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힘입음입니다. 이것은 세상 고등학문으로도 알 수 없는 것이며 세상의 지혜로도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비밀된 경륜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2:10)’. 오직 성령에 충만한 자들만이 하나님이 주신 이 비밀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자를 하나님은 ‘온전한 자’라고 칭하셨고 그들을 위해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한 비밀을 알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사람들보다 지혜로운 자이며 세상 사람들보다 지식이 뛰어난 자들입니다. 우리 안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영적인 눈을 뜬 자가 되었고, 남들이 듣지 못하는 음성을 듣고 남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에 소망을 두는 자가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전도여행을 떠난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가기 전 아덴에 들렸습니다. 아덴은 헬라철학의 본거지로 변론과 토론이 왕성하던 곳입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그들과 맞서 세상 지식으로 하나님을 전하다 실패하고 맙니다. 인간적인 지식과 방법으로 하나님을 전하다보니 하나님을 일개 잡신 중의 하나로 치부하고 만 꼴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에 도망치듯 고린도에 온 바울은 울며 회개했습니다. 단순한 변론으로 십자가의 도를 가르칠 수 없으며 오직 성령의 나타나심과 인도하심을 따라야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는 참 아둔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자들입니다. 자기가 번 돈인데 십분의 일을 하나님 것이라고 드리고, 남들이 다 즐기는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섬기고, 예수 이름만 부르고 있으니 그들의 눈에 우리는 정말 한심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보기에 어떠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떠한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노아는 사람들이 보기에 한심한 자였습니다. 산에서 120년 동안 배를 만들고 있었으니 얼마나 우스운 자로 보였겠습니까.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있던 자였습니다. 온전한 자였던 것입니다. 노아를 향하여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의 결국은 성경에 기록되었듯이 홍수에 떠밀려 죽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바벨탑으로 물의 심판을 피하려했던 세상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현명한 판단을 했다고 자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짜 한심한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영적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였던 것입니다.
요즈음에도 바벨탑을 쌓는 자들이 있습니다. 보기에는 그럴 듯하나 그들의 말에, 그들의 이론에 우리가 끌려가면 안 됩니다. 그들이 방주를 짓고 있는 우리를 판단할 권리가 없으며 자격도 불충분합니다. 그들이 우리를 그들의 잣대로 재는 것은 마치 유치원생이 대학생을 자기 저울에 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면서 어려운 일을 당할 때나 판단이 필요할 때 성령에 충만한 자의 말을 따라 가야 합니다. 세상의 권력자나 재력가의 말이 합당하게 들려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야 하며, 또한 자기 속에 계신 성령께 직접 물어보고 그 분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야 합니다. 소경을 건져내기는커녕 소경의 인도를 받아서야 되겠습니까? 육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과 생활과 모든 것이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것에 지배를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않도록 늘 기도와 말씀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 모든 비밀된 일과 계획하심을 만천하에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눈을 뜨게 해야 하며, 귀가 들리게 함으로 멸망의 포구에서 그들을 끌어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이에게 동일하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먼저 혜택을 입은 우리가 그들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식으로가 아니요,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말과 지혜로 하지말고 오직 하나님의 영을 따라 전해야 합니다. 박사가 전도를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이 배운 자가 나가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체험한 자, 성령에 충만한 자가 나가 전하는 것입니다. ‘나는 많이 못 배워서 전도할 수 없어’, ‘나는 말주변이 없어서 불가능해’, 이건 오히려 교만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무시하고 내 힘으로 하려는 처사이니 교만하다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의지와 힘과 지식은 하나님 앞에 형편없는 배설물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뢰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할 수 있게 됩니다.
당신이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도, 남이 볼 때는 변변찮아 보여도, 당신은 하나님을 소유한 대단한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당당해야 할 이유입니다. 세상의 지식 앞에, 재력 앞에 주눅들 필요가 없는 이유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을 소유하면 우리는 만물과 만인을 지배하고 정복할 근원을 소유한 것입니다. 거울 속에 비친 당신의 모습이 비록 초라하고 볼품 없어 보여도 당신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입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이 당신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세상을 바라보지 맙시다. 세상이 유혹하는 말에 신경 쓰지 맙시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그 분을 의지하고 그의 계획안에 삽시다. 장차 우리에게 이루어질 소망의 날을 바라며 힘차게 살아갑시다.
할렐루야!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라 능력과 축복이 여기에 있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지식은 형편없는 배설물에 불과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