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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8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크리스천 가정이 누리는 참된 행복(시128:1~6)

1358호 · 2026-05-17

오늘 설교 제목이 ‘크리스천 가정이 누리는 참된 행복’입니다. 이 말인즉 세상 가정이 누리는 행복과 크리스천 가정이 누리는 행복에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고, 세상 가정이 누리는 행복은 참된 행복이라 부르기에는 불완전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행복을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로 판단합니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환경, 자녀의 성공, 풍족한 생활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 기준으로 보면 어쩌면 하나님을 믿는 가정은 그 기준에 한참 미달될 겁니다. 왜요? 하나님께 나오는 자들은, 하나님을 찾는 자들은 대체로 가난하거나 병들었거나, 외롭고, 상처 입은 자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성경을 아무리 뒤져봐도 행복한 가정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행복한 가정의 샘플이 될 만한 가정이 없습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믿음의 선친들조차도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고 말하기가 주저됩니다. 아담의 가정에는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비극이 있었고, 노아의 가정에는 수치가 있었으며, 아브라함의 가정에는 갈등이 있었습니다. 야곱의 가정은 속임과 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다윗의 가정도 눈물과 아픔이 많았습니다. 이런 가정이 어찌 하나님의 사람의 가정인가 싶을 정도입니다.

성도들의 가정을 봐도 그렇습니다. 심방을 다녀보면 많은 가정이 저마다의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 자녀 문제, 건강 문제, 관계의 문제로 눈물짓는 가정이 많습니다. 행복과는 담을 쌓은 가정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부족해 보이고, 연약해 보이고, 실패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건 육적인 눈으로 봤을 때 이런 겁니다. 세상 기준으로 따지니까 그렇게 보이는 겁니다. 육의 눈이 아니라 영의 눈을 뜨고 보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세상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면 얘기가 180도 달라집니다.

여러분, 크리스천의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하나님이 함께하는 가정, 즉 주님의 임재입니다.

‘사철에 봄바람 불어있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 집 즐거운 동산이라/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 집/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이것이 크리스천의 행복한 가정입니다. 하나님을 모신 가정은 비록 한 칸의 초가일지라도 천국이라 했습니다. ‘천국’이란 행복한 가정의 대명사가 아닙니까? 그럼요, 하나님을 모신 가정, 그래서 예배하는 삶을 살고, 순종하는 삶을 살고, 헌신하는 삶, 용서하고 사랑하는 삶을 사는 가정이 진정 행복한 가정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 고백한 것입니다.

가정의 진짜 행복은 세상이 부러워하는 화려함에 있지 않습니다. 영의 눈으로 보면 믿음의 가정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소망을 가진 가장 복된 가정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모시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여러분의 가정이야말로 참된 행복한 가정입니다.

“뭔 소리야. 당장 먹고 살 것도 없는데 무슨 행복? 저 사람은 하나님 없이도 저렇게 떵떵거리고 잘사는데…. 저게 행복이지.” 하십니까? 여러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도 그렇게 생각했답니다. 세상 사람이 잘 되고, 병도 안 걸리고, 죽을 때도 편하게 죽는 것을 보고 실족할 뻔했다고 했습니다. 시험들 뻔했다는 거죠. 그런데 그가 성소에 들어가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시73:17~19). ‘아! 저들은 파국을 향하여 쭉 미끄러지고 있는 거구나. 그들의 결국은 파멸이구나.’라고 깨달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행복은 사라질 것들입니다. 바닷가 모래 위에 지은 것처럼, 파도가 치면 다 무너질 것들입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 입을 삼가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도 잘 사는데~’, 곧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말3:14), 이런 말일랑 일절 금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야 어찌 좋은 날을 보겠습니까.

여러분, 세상 것들로는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0장에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온 겁니다. 그는 일찍 성공하여 재산이 아주 많은 자였습니다. 세상눈으로 보면 완벽하게 행복한 사람이요, 행복한 가정을 꾸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참된 행복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뭔가 채워지지 않았으니까요. 예수님은 찾아온 그 청년에게 ‘다 버리고 나를 따르라’ 했지만, 그는 눈에 보이는 행복을 놓지 못해 결국 왔던 길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주님이 주시는 참된 행복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그러나 다니엘,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는 달랐습니다. 참되고 영원한 기쁨과 행복을 얻기 위해 그들은 죽음도 불사했던 것입니다.

성 프란시스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겨울날, 프란시스는 눈이 소복이 쌓인 들판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 하나님만 사랑하며 청빈하게 살았지만, 문득 마음 한편에 외로움이 밀려왔다고 합니다. 자신에게는 아내도 없고, 자녀도 없으며, 따뜻한 가정도 없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입니다.

그는 눈을 굴려 큰 눈사람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작은 눈사람들을 더 만들며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나의 아내이고, 이 아이들은 나의 자녀들이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그곳에 가보니, 햇볕 아래 눈사람들은 모두 녹아 사라지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보며 프란시스는 이렇게 깨달았습니다. “세상 것은 눈사람처럼 잠시 있다가 사라진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얻는 행복과 기쁨은 영원하다.”

그렇다면 믿는 자들은 하나님을 모신 것으로만 만족하고, 부족하고 없는 상태에서 자위하며 살아야 하나요? 그럴 리가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찌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찌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찌로다”(시128:1~6).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뜻에 순종하면 복되고 형통하고, 예비된 축복인 예루살렘의 복이 넘치고, 장수하고, 평강이 있다고 하십니다. 거기에 영생의 복까지 더해지니 복에 복을 받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하나님을 모신 가정이 매일 싸우면 안 되겠지요? 응당 사랑이 넘쳐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랑의 정의가 잘 정리되어 있는데, 거기서 가장 강조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딘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21:19)는 말씀이 있는데, 왜 다툴까요? 한쪽이 참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한쪽이 오래, 모든 것을 참으면 절대 다툴 일이 없습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오래 참아 구원하신 것처럼, 아브라함이 오래 참아 복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가족 간에 오래 참아주고, 견뎌주면 더욱 견고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예배하며 사는 가정, 거기에 가족 간에 사랑으로 감싸며 무슨일에든 서로 오래 참아준다면 참된 행복이 넘치는 가정이 왜 안 되겠습니까. 그런 가정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흔들어 눌러 넘치게 주실 것입니다. 제발 이런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행복한 가정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가정이다

영의 눈을 뜨면

진정한 행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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