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시도와 큰 변화
작은 시도와 큰 변화
얼마 전, 한 성도님이 처음으로 꽃 시장에 가보았다고 합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봄을 맞아 집 안에 새로운 변화를 주고 싶다는 마음에 꽃 시장에 들러 예쁜 꽃들을 골라 왔습니다.
선물로 받은 꽃다발을 화병에 꽂아 두기만 했지, 직접 꽃꽂이를 해본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튜브를 참고해 꽃을 꽂아 보았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제법 만족스러운 꽃꽂이가 완성되었습니다. 식탁 위와 거실 탁자 위에 각각 꽃을 놓고 보니, 주변도 꽃과 어울리게 바꾸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필요 없는 물건들은 정리하고, 여기저기 놓여 있던 액자와 소품들도 꽃과 어우러지도록 다시 배치했습니다. 그러자 같은 집이 맞나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합니다. 전보다 더 따뜻하고 밝아진 집 안에서 가족들과 함께 다과를 가지다 보니, 집 안에 웃음꽃도 함께 피어났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성도님은 일주일에 두세 번 새로운 요리에 도전해보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해보지 않았던 음식들을 유튜브를 보며 하나씩 만들어 보았고, 비슷하던 식탁에 새로운 음식들이 하나둘 더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정성을 들여 준비한 음식을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줄 때마다 식사 시간도 한층 즐거워졌습니다. 맛있다고 칭찬해주는 가족들의 말에 큰 보람을 느꼈고, 요리에 대한 열정과 재미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같은 집, 같은 일상이었지만 새로운 도전을 해보니 삶의 분위기와 하루의 기쁨이 달라졌다는 성도님의 간증을 들으며, 문득 ‘행복은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말이 제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행복은 특별한 곳에서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일상에서 작은 시도를 시작할 때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생각이 멋져도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는 총회장 목사님의 말씀처럼, 아무리 좋은 생각이 있어도 움직이지 않으면 삶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결국, 성공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품고만 있던 도전이 있으신가요? 지금 그 도전을 시작해 봅시다! 행복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꽃처럼 피어날 것을 믿습니다.
“변화가 두려우면 현실에 만족하고 살아라”
김진실 사모
예수 중심이면 충분합니다
지난주 신학교 특강이었던 도봉교구 유교영 장로님의 간증은 복음 전파의 본질에 대해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과거 술꾼이었던 장로님을 교회로 이끈 것은 거창한 교리가 아니었습니다.
‘교회 나오면 원하는 것을 다 사주겠다.’는 전도사님의 약속이었습니다. 장로님이 참석한 첫날, 설교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전도사님은 약속대로 보신탕에 소주를 사주셨습니다. 술을 원하니 술을 주어서 마음을 얻었습니다. 이 지혜가 귀한 장로를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상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주는 데서 시작됩니다.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려면 그들의 갈급함이 무엇인지 살피고 문턱을 낮추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성경의 역사는 문턱을 낮추는 역사입니다. 구약시대의 혈통과 율법이라는 높은 문턱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이제는 예수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복음의 본질은 문턱을 낮추어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마음을 얻어 예수께로 인도하는 ‘증인’의 역할만 하면 됩니다. 그다음은 보혜사 성령님께서 그의 삶을 친히 이끌어가실 것입니다. 요즘 교구마다 유행하는 ‘계란 한판 전도’도 같은 원리입니다. 원하는 것을 주고 복음의 씨앗을 심는 겁니다. 꽃길을 원하면 꽃씨를 뿌려야지요. 우리 스스로 높은 벽을 세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맙시다.
우리 교회 이름이 말해주듯 ‘예수 중심’이면 충분합니다. 본질을 잃지 않되, 영혼을 얻기 위해 기꺼이 낮아지는 지혜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할 때입니다.
문천명 전도사
열매
어느 날 우리 교회 전도사님께서 전철을 타고 교회에 오시다가 혼자 사시는 어르신 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 인사를 나누고 집에 가는 길이라는 어르신의 말씀을 듣고는, 문산역 앞에 아주 유명한 팥죽집이 있는데 같이 드시고 가시자고 하셨단다. 전도사님 말씀으로는 그냥 잘 따라오시더란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문산교회 바로 옆으로 이사까지 하시고, 기도회와 예배에 매일 나오신다.
하루는 우리 성도님께서 집을 계약하게 되었는데, 집을 보러 갔다가 그 집에 사는 임차인을 만나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다가 당일에 기도회까지 따라오게 되었다. 기구한 사연이 있는 분이셨는데, 아는 분의 소개로 사업을 시작했다가 큰 손해를 보고 자살하고 싶었다고 한다. 죽을 용기가 없어 집 앞의 나지막한 산에 올라가 교회도 안 나가시는 분이 날마다 ‘살려주세요’ 하고 기도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수요예배를 나오시고 주일예배에도 나오게 되셨다.
이렇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는 꼭 해야 하는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가장 핵심적인 전도 방법이 하나 있다. 기도원집회다! 한 번도 기도원에 와보지 않은 사람들을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은 우리 기도원으로 초청한다. 날도 따뜻하고 꽃도 피는 바야흐로 춘계산상집회 시즌이 돌아온 것이다.
우리 교회 권사님께서는 미국에서부터 인연이 되어 지금은 전라도에 살고 있는 친구 부부를 4월 말에 기도원으로 초대하고, 또 지방에 사는 동생과 친척을 기도원에서 만나고, 타지역에 사는 친구를 부르고, 지금부터 열의와 기대가 대단하다. 새신자인 우리 집사님의 여동생분도 이번 기도원집회에 꼭 모시고 가려고 기도하고 있다.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성도들이 합심 기도를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기도원집회를 통해 굳건한 믿음을 주시고 응답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늘상 경험하는 일이지만, 기도원집회만 모시고 가면 새신자는 일꾼이 되어 돌아온다. 기도원은 둘도 없는 영적 요람이자 종합병원이며 훈련장이다. 모든 문제 또한 해결 받는다. 큰 천국 잔치이며, 엄청난 전도의 장인 것이다. 모든 성도님과 가족, 친척, 친구, 지인, 지나가다 만난 사람들까지도 모두 주의 이름으로 초대하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장순천 목사
마귀와 싸울 인생을 사람과의 싸움으로 허비하지 말라
에베소서 6장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2)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귀와의 싸움이 아닌 사람과의 싸움에 세월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본질적인 영적 싸움(마귀와의 싸움)을 회피하고, 눈에 보이는 인간적인 갈등에 매몰되는 데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사탄의 교묘한 전략은 대리 목표를 만드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자신(마귀)의 존재나 영향력을 깨닫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속입니다. 마귀는 우리와 직접 대면하기보다는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 미움, 시기, 다툼, 오해와 같은 감정적 갈등을 유발하여 근본적인 문제와 싸우는 대신, 눈앞의 사람, 말, 행동에 분노하고 에너지를 소진하게 만듭니다. 또한 마귀는 눈에 보이는 사람의 실수와 단점만을 확대해서, 그 사람 뒤에서 역사하는 영적인 세력의 존재를 간과하게 합니다.
마귀와의 싸움은 기도, 말씀 묵상, 금식, 회개 등 고된 영적 훈련을 요구합니다. 사람과의 감정싸움은 감정을 분출하는 것으로 잠시나마 해소감을 주지만, 마귀와의 싸움은 지속적인 영적 무장을 필요로 합니다. 사람을 미워하고 탓하는 것은 쉽지만, 내 안의 죄성과 싸워 회개하고 변화하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마귀와의 영적 싸움에 집중해야 함을 명확히 선포합니다. 우리의 진정한 대적은 눈앞의 동료, 가족, 혹은 이웃이 아니라 그들을 이용하여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이간질하는 귀신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인간적인 힘이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전신갑주입니다(엡6:13~17).
마귀와의 싸움에 집중한다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를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때,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마귀의 전략(분열)에 맞서 사랑으로 대응하십시오. 사랑은 모든 율법의 완성이며 (롬13:10), 마귀의 계략을 무너뜨리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마귀에게 틈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눅6:37)라는 말씀처럼, 먼저 용서함으로 마귀가 틈타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미워하는 사람과 싸우는 대신, 그 사람을 위해 중보기도를 시작하십시오. 기도는 마귀의 진을 파하고, 우리 마음속에 있는 미움의 뿌리를 제거하는 강력한 영적 무기입니다.
결론은 우리가 사람과의 싸움으로 세월을 허비하는 것은 마귀의 전략에 말려드는 것이며, 영적 싸움의 본질을 놓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의 초점을 눈에 보이는 ‘혈과 육’에서 ‘악의 영들’로 돌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매일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함으로써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최연식 목사
뼈를 썩게 하는 독, 시기심
신앙 공동체 안에서도 질투로 인한 다툼은 빈번하다. 정작 자신은 헌신하지 않으면서, 기꺼이 봉사와 예물을 드리는 이들을 비방하거나 훼방하기도 한다.
타인이 나보다 높은 평가를 받거나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낄 때, 그 대상은 곧 시기의 표적이 된다. ‘시기’는 내가 갖지 못한 것을 타인이 가졌을 때 느끼는 불쾌감이며, ‘질투’는 소중한 관계를 제3자에게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감정으로 구분된다.
시기는 남을 향한 공격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내 영혼을 병들게 하는 독이자 죄다(창4:6~7). 성경은 인간의 다양한 감정 중 ‘시기’를 엄중히 경계하며, 이를 ‘뼈를 썩게 하는 독’(잠14:30)이라 규정한다. 이는 성령이 아닌 육신의 본능을 따를 때 나타나는 영적 부패의 증거다.
질투는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데서 시작된다.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이 쌓이면, 인정받지 못한 서운함이 분노로 변한다. 결국 그 화살은 상대를 해치거나 자신을 무너뜨리는 파괴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질투는 내 의지만으로 없앨 수 없다. 성령의 통치 아래 자신을 내어드릴 때 비로소 성령의 열매가 맺히며 시기심은 사라진다(갈5:22~23). 내 명예를 지키려는 욕심이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고 있지는 않은지 늘 스스로를 점검해야 한다. 다행히 질투는 하나님의 섭리를 막지 못한다. 유대인의 시기가 오히려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통로가 되었듯, 하나님은 시기 받는 자의 편에서 더 넓은 길을 여신다.
남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는 것이 성숙한 신앙이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는다. 타인을 진심으로 축복하는 일은 나를 살리는 가장 큰 용기다. 비교의 창을 닫고 은혜의 거울 앞에 설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을 경쟁자가 아닌 동역자로 보게 된다. 썩어가는 뼈를 다시 견고하게 만드는 유일한 힘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사랑뿐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고전13:4).
양은정 전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