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을 버리고 주님 말씀에 순종하라(잠3:5~6)
미국 캔자스시티 목회자 세미나는 원래 컨벤션센터에서 대규모로 진행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사이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발발했고, 행여나 대규모 집회를 노리는 테러가 있을 수 있다는 미 정부의 요청으로 대규모 세미나가 취소되고, 세미나를 주관한 해리건 목사의 교회로 자리를 옮겨 소규모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거기까지야 불가항력의 일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대집회가 취소되어 면구스러워서인지 주최자인 해리건 목사는 아예 나타나지도 않았고, 대신 부교역자가 숙소로 찾아와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는 계획을 전했습니다. 한 타임을 세 강사가 시간을 쪼개 나눠서 진행하려 한다며, 각각 40분에서 45분 정도를 주겠다는 겁니다.
이 문제를 놓고 우리 실무진과 통역관이 숙소 아래에서 한참 실랑이를 벌인 모양입니다. ‘우리 목사님은 적어도 2시간은 줘야 한다’고 주장해도 통하지 않으니 실무진이 제게 전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하며, 직접 만나 보시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초청받은 강사이니 주최 측의 룰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성령을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은 제한하면 제한을 받으십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초빙한 강사에게 마이크를 넘기는 순간 이후 모든 순서를 다 맡겨버립니다. 그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마음껏 일할 수 있게 말입니다.”
저는 2시간을 달라고 고집부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성령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말만 전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황을 전해 들은 해리건 목사는 성령의 감동을 받고 ‘원하시는 대로 시간을 드리겠다’고 해서, 여러분이 지난 시간에 본 영상처럼 2시간이 넘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제가 ‘나는 2시간 안 주면 못한다’고 고집을 부렸더라면, 저는 그 집회 강사로 설 수 없었을 것이고, 빈손으로 돌아왔을 겁니다. 그러나 고집하지 않았더니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고집을 버려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똥고집’, ‘황소고집’이란 말이 있지요? 고집이 너무 센 사람을 일컫는 말인데, 그런 자는 고집불통인지라 일이 잘될 수가 없습니다. 바로가 그런 사람입니다. 애굽 왕 바로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내 백성을 보내라’ 말씀하셨음에도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여 그들을 듣지 아니하니”(출7:13)라고 했는데, 이를 공동번역은 “고집을 버리지 않고”라고 해석해놓았습니다. 바로는 재앙이 임할 때마다 잠시 마음을 돌린 듯했으나 고통이 지나가면 다시 마음이 완악해져 하나님 말씀을 거부했습니다. 점점 더 큰 재앙을 겪으면서도 그는 자기 생각을 고집했습니다. 그 결과 어찌 되었는지 여러분은 너무 잘 알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고집을 단순히 자기주장이 강하다는 것 이상으로 봤습니다. 사울은 아멜렉 백성의 만행을 기억하사 그들의 모든 소유를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쓸데없는 고집을 피웠습니다(삼상15:1~9). 하나님은 완전히 멸절시키라고 했는데,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고 좋은 것은 챙겼습니다(삼상15:9). 이를 알고 사무엘이 추궁하자 사울은 변명을 늘어놨고, 이에 사무엘이 말합니다. 사무엘상 15장 23절입니다.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즉 거역하는 것은 점을 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죄와 같다는 것입니다. 고집은 죄라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똥고집을 가진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롬2:5).
고집을 버려야 삽니다. 요나를 보세요. 요나는 하나님이 니느웨로 가서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라고 했지만, 자기 고집대로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갔습니다. 그러다 폭풍을 만나 물고기 뱃속에서 3일 있으면서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그랬더니 물고기가 토해내어 니느웨로 갔고,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잠28:9). 순종하지 않고 고집부리면 기도도 듣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깨달아야 하나님이 그의 기도도 들으시고 사용하십니다.
모세는 처음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 고집을 부렸습니다. ‘나는 말을 잘 못합니다.’, ‘누가 나를 믿겠습니까?’ 하며 ‘못한다’고 고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세를 포기하지 않으시자, 결국 모세는 자기 고집을 내려놓고 순종하였고, 하나님은 그의 지팡이를 능력의 도구로 사용하시고, 돕는 동역자를 붙여주셨습니다.
바울은 처음에는 아시아로 가고자 계획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그 길을 막으시고 환상을 통해 마게도냐로 가라고 하셨습니다(행16). 바울은 자기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방향을 바꾸어 순종했습니다. 그 순종의 결과로 유럽에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가 세워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베드로도 처음에는 자기 생각과 전통을 고집했었습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함께하는 것을 꺼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환상을 통해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 하지 말라고 하시며, 고넬료 집으로 가라고 명하시자 고집과 편견을 내려놓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고넬료의 집에 갔습니다. 그 결과 이방인에게도 성령이 임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고, 복음이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에게까지 확장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 베드로는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는 예수님 말씀에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5:5) 하며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고기가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순종하면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신명기 28장의 대복(大福)은 바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고집을 피울까요? 자기만 옳다는 생각에서 고집이 나옵니다. 내 경험, 내 지식, 내 주장만이 옳다고 하며 귀를 막기에 고집을 피우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했던 사람입니다. 왜 안 그러겠습니까? 바울의 말대로 그는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었으니 자긍심이 하늘을 찔렀을 겁니다. 하지만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뒤 이전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고집과 아집을 철저히 버리고 다시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행9:1~9). 그의 말입니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3:7~9).
그는 또 말합니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10:5). 하나님 앞에 내 생각이 무슨 대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내 지식이 뭐가 중요합니까? 버려야지요. 말씀에 순종해야지요.
여러분, 고집과 믿음이 다르고, 고집과 원칙이 다른 겁니다. 믿음과 원칙은 주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나, 고집은 내 뜻대로 하는 것이기에 패망의 원인이 될 뿐입니다. 그러니 고집부릴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내 삶에 고집은 나를 패망시키는 원인이 될 뿐이고, 나를 고립시킬 뿐입니다. 그러므로 쓸데없는 고집일랑 버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크고 놀라운 복을 받읍시다. 고집을 고집하지 맙시다.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잠29:1). 할렐루야!
고집은
내 무덤을 파는 것이다
고집은
고립을 자초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