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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1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우리, 세계를 함께 복음화하자(막16:15~20)

1351호 · 2026-03-29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28:19~20).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4:5).

이 말씀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복음 전파’에 있습니다. 복음 전파는 교회의 본분이요, 주님의 명령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거하시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도, 우리가 이 땅에 사는 이유도 주님이 주신 지상명령을 완수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가든지 보내든지’입니다. 먼저는 내가 복음을 들고 직접 나가는 것입니다.

처음 제가 성령을 받았을 때 저는 너무 기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 좋은 소식을 누구에겐가 전하고 싶어 몸살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겨울철에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 배낭에 초콜릿을 넣고는 거리에 나가 오가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전했습니다. 제가 잘 다니던 술집과 거래처도 찾아가 예수의 소식을 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모두 나보고 미쳤다고 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된 후에는 전국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고, 2000년을 계기로 해외선교에 매진해왔습니다.

내가 나가 직접 전해야 합니다. 먼저는 내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리고 나아가 내 이웃과 내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기회가 되는 대로 거리로 나가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 씨를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고, 거두시는 분도 하나님이니까 뒷일일랑 걱정하지 말고 많이 뿌려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 있으면 뭐합니까? 그것을 광고하지 않으면 누가 알겠습니까? 예수만이 길이요, 생명이며, 예수 외에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이 없음을, 예수를 믿어야 천국에 갈 수 있음을 전하지 않으면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에도,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롬10:14~15)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그 진리를, 그 복음을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알려야 합니다. 그것이 ‘사명(使命)입니다. 사명은 해도 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이요, 하지 않을 때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성경은 그 표현을 ‘화가 있다’라고 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고전9:16). 그 화란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고하여 이르라 가령 내가 칼을 한 땅에 임하게 한다 하자 그 땅 백성이 자기 중에 하나를 택하여 파숫군을 삼은 그 사람이 칼이 그 땅에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겔33:2~4), 이것입니다. 전하지 않으면 피 값을 받으신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엄포를 놓으신 겁니까? 아니요,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되기를 바라시는 간절한 마음을 보이신 것입니다. 소경이 벼랑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다면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동차가 후진하고 있는데 그 뒤에서 아이가 놀고 있다면 달려가 그 아이를 건져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당신의 사랑하는 가족이, 친구가, 이웃이 지옥으로 떨어져 가고 있다면 마땅히 복음을 전해 구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1~2). ‘엄히 명하노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경고의 말씀으로, ‘꼭 하라’는 당부입니다. 나가서 전파하고, 안 되거든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14:23)고도 하셨습니다.

둘째, 갈 수 없는 곳이라면 보내야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나가 전하는 자를 후원하라는 겁니다. 기도로 후원하고, 물질로 후원해서 그로 하여금 전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제가 해외에 나가면 연세 있는 분들이 찾아와 주머니에서 쌈짓돈을 꺼내며, “목사님, 이거 비행기 안에서 맛난 거 사드시고 힘내서 선교하세요.”라고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그깟 몇 푼’이라고 하시겠지만, 아닙니다. 제가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면 그분도 같이 나가 전하는 것이 됩니다. 마태복음 26장에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여인을 향하여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마26:13).

모두가 땅끝까지 나가 복음을 전할 수 없지요. 그러나 보낸 자를 위해 기도하고, 물질로 후원하면, 그것이 내가 나가 전하는 것이 됩니다. 전쟁할 때 총을 들고 싸우는 병사만으로 이길 수 있습니까? 식량을 보내는 자, 무기를 공급하는 자, 정보를 전달하는 자 등이 함께 싸우는 것 아닙니까? 앞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자, 뒤에서 금식하며 기도하는 자, 물질로 헌신하며 사역을 돕는 자가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실제로 여러분의 기도와 헌신과 헌금이 있기에 제가 해외에 나가 마음껏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하게 동일한 상을 받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무엘상 30장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일반일찌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삼상30:24) 한 것처럼, 하나님도 동일하게 갚으십니다.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전3:8). 제가 각국 대통령을 만날 때 우리 일행도 함께 가듯, 머리 가는 곳에 다리도 가고 팔도 가듯, 나가서 전하는 자나 나가서 전하는데 조력한 자나 똑같은 상을 받습니다. 그래서 가든지 보내든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자가 받을 보상을 생각해보셨습니까?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12:3).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일생을 전도의 일에 매진했던 사도 바울이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7~8)고 말했듯이, 전도인이 받을 면류관이 있다는 겁니다.

사실 저도 그날에 상이 없다면 지금처럼은 안 삽니다. 조금 쉬고, 조금 편하게 목회할 겁니다. 그러나 그날 받을 면류관, 그리고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눅22:30)는 약속을 온전히 믿기에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여러분은 저의 동역자입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헌금이 있기에 제가 마음껏 세계 선교를 할 수 있습니다. 그날 저는 여러분을 자랑하고, 여러분은 저를 자랑합시다. 우리 교회는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에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습니다. 적은 능력으로 큰일을 이뤘고, 핍박과 환난 중에도 꿋꿋하게 복음을 전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교회입니다(계3:7~8). 우리, 세계를 함께 복음화합시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나가서 열심히 전하겠습니다. 승리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지속적인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할렐루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천국 복음을 전파하라

머리 가는 곳에

팔과 다리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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