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의 진면목(眞面目)
맛집의 진면목(眞面目)
11일에 있었던 신학교 졸업예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물품을 대여할 일이 있어서 차를 몰고 서울 서대문구 쪽에 있는 대학가를 방문하였다. 필자가 대학생 시절 많이 다녔던 곳이기도 하고, 몇 년 전에는 대학부 지체들과 함께 노방전도를 나갔던 추억의 장소이기도 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골목에 진입했는데 웬걸, 오고 가는 젊은이들로 북적였던 골목은 ‘임대’ 딱지가 붙은 채 오랜 시간 방치된 상가들만 흉흉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심지어 필자가 잠깐 주차했던 주상복합 건물은 건물 내에 제대로 운영되는 가게 하나 없이 주차장만 운영될 뿐이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젊음의 거리이자 최신 유행 트렌드의 발상지로 이름을 날렸던 곳인데, 코로나19 사태와 인근에 다른 경쟁상권이 발전하면서 이런 형국이 된 것이다.
씁쓸한 마음과 함께 강하게 다가오는 메시지가 있었다. 바로 영원한 대목은 없다는 것. 어쩌면 그 골목의 몰락 원인은 코로나19 같은 외부요인이 아니라, 역세권이자 대학 상권이니까 무조건 장사가 잘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아니었을까. 코로나19 여파로 수많은 식당과 카페들이 문을 닫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여파를 헤치고 살아남은 가게들이 분명히 있다. 주변에서 아무리 새로운 가게들이 나타나고 또 사라지는 것을 거듭해도 오히려 계속 한 자리를 지키며 문전성시를 이어가는 가게들도 있다. 오히려 어떤 집은 맛집으로 소문이 나서 전국 각지에서 손님들이 몰려오고 주변에 죽어가던 상권을 끌어올리거나 심지어 새로운 상권을 형성하기까지 한다.
모두에게 동일하게 위기가 닥쳤을 때는 실력과 내공을 갖춘 강한 자들만이 살아남는 법이다. 사람도, 기업도, 국가도, 그리고 교회도 흔들어 보면 그들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성공한 농부는 초장(草場)탓을 하지 않는다!” 지난 41년 동안 우리 교회는 이러한 정신으로 숱한 평지풍파를 헤치면서 오늘날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교회,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교회로 우뚝 서 있다. 그러니까 성전이 없어도, 목사님께서 세계로 다니셔도 오히려 전국과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영적 맛집’이 된 것 아니겠는가.
안일한 생각을 버리고 나 자신과 내가 서 있는 땅의 가치를 높여서, 위기 때 몰락하는 상권이 아닌, 일부러 찾아오는 맛집이 되자.
신혁주 전도사
한 영혼을 향한 구령의 열정
“우리 바깥양반이 계단에서 떨어졌디야. 평안히 가게 전도사님이 기도 좀 해줘”
목회자 세미나 직후 갑작스럽게 걸려 온 권사님의 전화였다.
남편 집사님은 신앙의 연수가 무색하게 구원의 확신이 없으셨다. “죽어 봐야 알지, 나는 그전에는 못 믿어요.”라고 하시며, 나와 권사님을 속태웠는데, 머리를 심하게 다쳐 면회도 불가능한 중환자실에서 임종을 준비해야 하는 상태가 되셨다. 자녀들도 믿음 안에 있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금식하며 매달렸다.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구원하신 하나님, 집사님께서 지난날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하고 지내셨지만, 이제라도 저와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죄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크신 은혜로 이 영혼을 구원하여 주옵소서.”
이후 금식 중 듣던 설교에서, “그 영혼을 위해 애통하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매달리면 왜 그 영혼을 구원해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그러한 구령의 열정을 기다리신다.”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을 마치자마자 전화가 울렸다. 집사님이 고비를 넘기고 일반 병실로 옮기신다는 소식이었다. 할렐루야! 한 영혼을 향한 우리들의 애통함을 들으심에 감사와 전율이 밀려왔다.
집사님을 찾아뵀을 때는 말씀도 못 하실 만큼 야위셨지만, 나를 보시자 눈물을 흘리며 알아보셨다. 영접기도를 할 때는 정확한 발음이 어려워 눈 깜빡임으로 재차 확인하며 마지막일지 모르는 기도를 간절히 드렸다.
집사님께 허락된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늘도 기도한다. 남은 시간 동안 오직 주님만 생각하시다가, 마침내 주님 품에 안기시기를.
김혜리 교육전도사
십자가 없는 영광
최근 들어 문을 닫거나 통폐합하는 신학교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을 비롯해서 나타나는 이런 기현상이 한국에도 예외 없이 도미노처럼 속출하고 있다. 국내 오랜 전통의 신학교(신학대학원)들에서도 정원 미달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한때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학하려는 재수, 삼수생들을 위한 신학대학원 입시학원까지 운영할 정도로 그 문턱은 높았고 문전성시를 이루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최근 이런 기이한 감소현상 앞에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목회자들을 과잉생산하더니 결국 드러나야 할 부작용이 드러났다는 부정적인 비판과 아울러, 드디어 거품이 빠지고 신학교라는 곳이 이제 본질적인 제구실을 하게 되었다는 안도 섞인 평가도 있다.
이런 감소 현상은 신학교만의 단독적 현상이라기보다, 여러 가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힌 이유이다. 인구절벽 현상으로 교회 신도 수의 감소도 자연스런 현상이 되어가고 있다. 유아 인구의 감소와 청소년층의 기독신자 인구가 점점 감소하니, 당연히 신학생이라는 신분은 희귀한 직종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이제는 신학생이 되어 목회자가 되는 길이 여러 직업군 중의 하나가 아니라, 명확한 사명의식 없이는 안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 사명의식에 더해 성경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바른 신학의 가르침이 있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대안으로도 십자가 없는 구원의 넓은 길을 가르치니 신학교에 굳이 다녀야 할 이유가 점점 없어지는 것이다. 투철한 사명의식과 바른 신학교육으로 무장하여 경건의 훈련을 받는 대가가 필요하다.
대가가 큰 만큼, 영광의 상급도 크니 말이다. 이것이 십자가의 비밀이기에 예수를 따르는 길에서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매일 요구하신다(눅9:23).
베드로는 예수님께 십자가라는 과정 없이 쉽게 가시도록 권유하다가 큰 꾸지람을 들었다(마16:23). 십자가는 한 방의 기회가 아니라 ‘과정(스토리)이 있는 사역’이다. 예수중심제자신학원의 신학생들 27명이 졸업했다. 예수님의 제자를 만드는 신학원이라는 명칭에서부터 십자가의 정신을 요구하고 있다. 모든 사역지에서 이 정신으로 대가를 치러 하나님 영광을 위해 귀히 쓰임 받아야겠다.
송직화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