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예수님 속을 시원하게 해드리자(고전4:14~21)
남태평양 참치잡이 원양어선의 기관장 문경연 장로가 저에게 전화로 한 말입니다.
“목사님, 망망대해에서는 몰아치는 폭풍이나 집채만 한 파도가 가장 무서운 적일 것 같지요? 아닙니다. 진짜 무서운 것은 배의 엔진이 꺼지는 일입니다. 엔진만 멀쩡하면 어떻게든 키를 조절해서 폭풍이나 파도를 이겨낼 수 있는데, 엔진이 꺼져버리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입니다. 배가 전복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살면서 마주하는 문제가 최대의 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파도처럼 다가오는 문제들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 큰 문제는 우리 삶의 엔진이 꺼지는 것입니다. 성령을 소멸하는 것입니다. 배가 엔진만 살아 있으면 집채만 한 파도나 해일도 이겨낼 수 있지만, 엔진이 멈춰버리면 파도나 해일에 휘말려 좌초당할 수밖에 없듯이, 아무리 큰 문제가 들이닥쳐도 성령만 소멸하지 않았으면 넉넉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감당치 못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고요? 성령은 곧 하나님의 영이기에 그렇습니다. 창조주이시며,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에게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문 장로가 바다에 치는 그물은 반경이 거의 4km라고 합디다. 그리고 그 거대한 그물에 한 번 잡히는 고기의 양이 자그마치 450t가량 된다고 합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양이지 않습니까? 성령의 역사의 반경은 이보다 훨씬 큽니다. 우주를 초월합니다. 고로 성령을 통해 얻지 못할 것이 없고, 해결하지 못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 엔진을 꺼버린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대형어선이라고 해도, 항공모함이라고 해도 엔진이 꺼지면 망망대해에서 표류할 수밖에 없고 그야말로 속수무책입니다. 그러다 파도나 해일에 휩쓸려 전복되고 말지요. 우리 삶의 엔진인 성령을 소멸하면 이런 사태에 직면하게 됩니다. 문제에 휩쓸려 삶이 전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내가 가면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고, 말씀대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요16:7). 예수 이름으로 온 성령은 보혜사가 되어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십니다(요14:18). 또한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므로 장래를 알게 하며(요16:13), 심지어는 하나님의 깊은 곳도 통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고전2:10). 또한 성령이 임하면 은사를 받게 되는데, 이는 무기와 연장과 같아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능히 이길 수 있게 하고,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며, 심지어는 예수님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습니다(요14:12). 마가다락방 120문도에게 임한 성령은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며 회개하는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집니다(행2:38).
그런데 여전히 우리는 가난과 병과 저주를 끼고 삽니다. 문제에 휩쓸려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며 삽니다. 곧 전복될 위기 속에서 헉헉거리며 삽니다. 왜 그럴까요? 엔진을 꺼트려서 그런 겁니다. 주님이 그렇게 ‘성령을 소멸치 말라’(살전5:19)고 당부하셨는데, 엔진을 꺼트려서 파도와 해일이 우리를 삼키려고 하는데 속수무책입니다. 성령을 소멸해서 마귀와 귀신이 우리를 삼키려고 덤벼드는데 속수무책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속이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당신의 피로 구원하셨고, 당신의 이름으로 성령을 보내사 이 땅에서 안전하고 평안하게 살 수 있는 모든 여건을 만들어줬는데, 여전히 그 모양 그 꼴로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성령만 소멸치 말라. 성령을 소멸치 않으면 만사형통이다.’라고 당부하셨는데, 그것조차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속이 답답하시겠습니까? 우리 성도들이 가난에 찌들고, 병들어 아프고, 파산하고, 문제 속에 사는 것을 보면 저도 속이 체한 듯 답답한데, 우리 주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연장을 줬는데, 무기를 줬는데, 돈을 줬는데 방치하다가 빼앗긴 격이니 얼마나 답답하실까요? 안 써서 녹이 슨 격이니 속이 터지실 겁니다. 이건 누구의 책임입니까? 하나님 책임입니까? No, 바로 나 자신의 책임입니다. 일이 안 되면, 문제가 생기면, 병들면 무조건 하나님을 원망하는데 엔진을 꺼트린 본인을 탓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마태복음 28장, 마가복음 16장, 누가복음 24장, 요한복음 21장에 예수님의 사역을 보세요. 예수님도 성령의 능력으로 일하시지 않습니까?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문도도 성령을 받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성령을 받은 후에 그들은 예수님처럼 나가서 전하고,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도 성령충만을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무엇이 우리를 노리겠고, 무엇이 우리를 해하겠습니까? 무엇이 우리 앞길을 막고 방해하겠습니까? 엔진만 살아 있다면 그 너른 바다의 물고기가 다 내 것 아니겠습니까? 성령충만을 입으면 권능이 따르니 무엇을 명하든 그대로 이뤄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엔진을 꺼트리지 않는 방법, 성령을 소멸하지 않는 방법은 오직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 이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기도의 일생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새벽 미명에 일어나 기도하셨고(막1:35), 낮에 복음을 전파하시고 저녁에 기도하셨으며(막6:46), 철야기도도 하셨고(눅6:12), 산기도도 하셨습니다(마14:23).
우리도 기도의 일생을 살아야 합니다. 혼자서 은밀히 기도하고(마6:6), 부르짖어 기도하고(렘33:3), 합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마18:19). 또 눈물로 기도하고(시126:5), 감사로 기도하고(빌4:6), 우리말로 기도하고, 방언기도 해야 합니다(고전14:2). 그래야 엔진이 안 꺼집니다. 그래야 성령을 소멸하지 않고 충만하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는 자에게는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이렇게 말씀하셨거든요.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시107:10~11). 기도하는 것이 지존자이신 하나님의 뜻일진대(살전5:18), 지존자의 뜻을 거역하고 어찌 살아남고, 어찌 축복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기도하면 고통과 저주에서, 병과 가난에서 해방시켜주신다 말씀하십니다.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시107:19~20). 예레미야서에도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하십니다.
그런데 왜 기도하지 못합니까? 시간이 없습니까? 다른 거 다 해놓고 기도하려고 하니까 시간이 없는 겁니다. 기도가 삶의 1순위여야 합니다. 여러분,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여러분이 메추라기를 잡아봐야 얼마나 잡을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홍해를 가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겠습니까? 그러나 기도하면 하나님이 다 하십니다. 그래도 기도가 어렵고, 힘듭니까?
마귀와 귀신이 무서워하는 자는 교회 다니는 자가 아니라 기도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4:7) 했고, 예수님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마26:41) 하신 것입니다. 기도는 믿는 자들의 특권입니다. 이 특권을 포기하려 하십니까? 제발 빈 총 가지고, 녹슨 총 가지고, 빈 지갑 가지고 폼잡지 마세요. 절대 귀신이 속지 않습니다. 기도하여 특권, 권능을 가지세요.
우리 성도들이 사업이 잘되었다고, 병이 나았다고, 목표한 바를 이뤘다고 저에게 와서 얘기하면 저는 진짜 밥 안 먹어도 배부릅니다. 막혔던 속이 뻥 뚫립니다. 여러분이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면 우리 주님의 속이 뻥 뚫립니다. 주님 속 좀 시원하게 해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한다고요? 기도로 성령충만을 잃지 않는 겁니다.
삶이 표류하고 있습니까? 전복될 위기입니까? 기도하십시오. SOS를 치십시오. 하나님이 도우러 천사를 파송하실 것이고, 위경에서 건지실 겁니다. 만선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성령을 소멸치 마십시오. 심령이 살아야 삶이 살아나니까요. 할렐루야!
기도하지 않는 자에겐
결코 기대할 게 없다
연장 없이 일할 수 없고
무기 없이 승리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