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깨닫는 자의 축복
듣고 깨닫는 자의 축복
어느 날, 제가 잘 아는 분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분의 꿈에 한 청년이 보였다고 합니다. 사업에 성공해 단상에서 간증하던 그는, 복 받은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새 사람들을 비판했습니다. 간증이 끝난 뒤 한 성도가 다가와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간증에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그 꿈을 마음에 두고 기도하다가 감동이 와서 청년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꿈 이야기를 전하며, 평소 그를 보며 염려하던 부분도 조심스레 나누었다고 합니다.
몇 주 뒤 청년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분의 말을 들은 후 자신을 깊이 돌아보았고, 기도하던 중 불현듯 총회장 목사님의
‘빨간판 잠언’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선입견과 편견을 버려라.”
그 순간 청년은 ‘아, 내가 색안경을 끼고 내 잣대로 사람을 판단했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눈물로 회개 기도를 드린 뒤로 그는 사람을 대할 때 겉모습에 머물지 않고 그 사람의 장점을 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그의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던 불편함은 사라지고 기쁨이 샘솟았다고 합니다. 이해되지 않던 사람들이 사랑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고백도 덧붙였습니다. 그는 “저에게 해주신 그 조언이, 듣고 깨닫기를 원하셨던 하나님의 사랑으로 느껴졌습니다.”라며 고마움을 거듭 전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노량진 기도회에 매일 참석하시는 어느 집사님을 통해, 총회장 목사님께 늘 기도를 받는 한 자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집사님이 보기에는 그 자매가 장애로 인해 일상적인 소통이 쉽지 않아 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총회장 목사님께서는 그 자매를 늘 반갑게 맞이하시며 매번 다른 인사로 격려하셨다고 합니다.
“이야~ 너 오늘 멋있다!”, “너도 할 수 있어!”, “오늘 말씀은 네 말씀이야!”
그 칭찬과 격려를 들을 때마다 자매의 얼굴에 꽃이 피었다고 합니다. 집사님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성도의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목사님의 사랑을 다시금 깨닫고 목사님을 본받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합니다.
듣고 깨닫는 사람에게는 변화의 축복이 있습니다. 겉모습이 아니라 본질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을 배우며, 목사님처럼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 지혜로운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김진실 사모
행복과 불행의 차이
목사님이 결혼식 주례하실 때 꼭 하시는 말씀이 있다. “너희가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남편은 아내를 다른 여자와 비교하지 말고, 아내도 남편을 다른 남자와 비교하지 마라!”
비교하는 인생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경차를 타면서 고급차를 보며 상대적 빈곤을 느낀다면 그것은 불행이다. 20평에 살면서 50평 사는 걸 보며 스스로 가난하다 하는 사람 역시 불행할 수밖에 없다.
시편 기자는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자신의 형편을 비관했으나 성전에 들어가서 깨달은 것은, 악인의 형통은 꿈을 깬 후에는 아무것도 아닌 일장춘몽임을 알고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복이라고 기록한다(시73편). 솔로몬 역시 죄인을 부러워하지 말고 여호와를 경외하면 정녕히 장래와 소망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권면한다(잠23:17~18).
내 자녀를 남의 자녀와 비교하며, ‘넌 왜 이 모양이야?’하고 책망한다면 그 자녀는 자존감이 무너져 절대 행복할 수 없다.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내게 없는 것을 보고, 남이 가진 것만 보며 부러워한다면 그것은 늘 불행한 인생이 될 것이다.
반면에 행복한 인생은 내 가진 것에 감사하고, 내게 있는 것이 최고임을 알아 스스로 만족하는 데 있다. 내 남편이 최고요, 내 아내가 최고요, 내 자녀가 최고요, 내 교회가 최고요, 우리 목사님이 최고요….
우리 이제 비교의식 속에 불행한 삶을 살지 말고 내게 있는 것에 자족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자.
하나님은 감사의 고백이 넘칠 때 감사의 조건 역시 넘치게 채워주실 것이다!
김상욱 목사
복 있는 자는 깨어 있는 자다
사람들은 복을 소유로 판단한다. 얼마나 가졌는가, 얼마나 안정적인가, 얼마나 인정받는가가 복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복은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영의 상태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를 말씀하시며, 같은 밭에 있는 두 사람 중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남겨질 것이라 하셨다. 같은 장소, 같은 환경,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결과는 다르다. 그 차이는 깨어 있음에 있다. 하나님 앞에서 깨어 있는 자와 잠든 자의 차이가 결국 인생의 결론을 가른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하나님은 외형이 아니라 중심을 보신다. 사람은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의 상태를 기준으로 판단하신다. 그러므로 복은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과 어떤 관계 속에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성경은 복을 결과로 말씀한다. 심령이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고, 말씀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상태가 될 때 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반대로, 소유가 많아도 영이 잠들어 있으면 그것은 참된 복이 아니다.
재물과 안정은 영혼을 깨우기도 하지만, 때로는 영혼을 잠들게 만들기도 한다. 야곱의 인생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많은 재산을 얻었지만,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참된 평안에 이르지 못했다. 하나님을 만난 후 그의 이름은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뀌었다. 이것은 단순한 이름의 변화가 아니라 존재의 중심이 바뀐 사건이었다. 더 이상 자신이 인생을 붙드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이 된 것이다.
나는 야곱의 이름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살고 있는가 물어야 한다. ‘깨어 있는 자’란 말씀에 반응하는 사람이다. 말씀 앞에 자신을 내려놓는 사람이다. 사울은 왕의 자리에 있었지만 하나님과 멀어졌고, 다윗은 넘어졌지만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삼손은 힘이 약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한 것이 비극이었다. 깨어 있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다. 복 있는 자는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다. 환경이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고, 소유가 아니라 중심이 중요하다. 하나님을 향해 깨어 있는 사람, 말씀에 반응하는 사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바로 복 있는 사람이다.
임택함 목사
사복음서 읽기
어느 날 총회장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님은 정말 천문천답(千問千答)이 예수구나.’
그리고 단 하루라도 목사님처럼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머릿속이 예수님으로 가득 차서 어떤 상황이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이요.
그러던 중 목사님께서 롤모델에 관해 설교하시며, ‘사복음서를 많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붙잡고 올해는 사복음서를 많이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닮은꼴은 시간과 정비례한다’는 말씀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자주 접하다 보면 예수님을 닮아가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서요.
기존에 하던 성경 통독과 별개로, 1년 동안 사복음서 12독을 목표로 계산해 보니 하루에 3장 정도 읽으면 되는 분량이었습니다. 구약을 읽다가 신약을 읽으니 말씀이 술술 읽혔습니다. 분량도 많지 않아 천천히 곱씹으며 읽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이 머릿속을 맴돌며 마음을 찌르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높아진 마음에 ‘첫째가 되려면 섬기는 자가 돼라.’ 하시고, 사랑이 식어진 마음에 ‘사랑하라.’ 말씀하셨습니다. 형제에게 노하기만 해도 심판을 받고 미련한 놈이라 하면 지옥 불에 들어간다고 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마음 깊은 곳을 들추고 숨은 생각과 뜻을 밝혀냅니다. 말씀이신 하나님 앞에 숨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말씀이 양심을 찌를 때, 그 순간만큼은 말씀을 따라 살기 위해 마음과 생각을 다잡았습니다.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기에 기도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요. 세상의 가르침을 좇고, 세상 것으로 만족을 얻고 살아갈 때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 말씀하십니다. 말씀 앞에서 나는 오늘 하루 얼마나 예수님과 동떨어진 삶을 살았는지 돌아보고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을 다시 구합니다.
올해는 내가 서 있는 땅을 기름지게 하기 위해 예수님을 더 알아가려 합니다. 하나님 자녀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 말씀 한 구절이라도 실천하는 삶을 살기로 다짐합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사복음서 읽기를 통해 예수님을 깊이 알아가는 은혜를 누리길 소망합니다!
전소희
편안하기를 포기한 삶
마흔 살이 넘어 자격증 시험을 준비할 때의 일이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 공부는 손을 놓다시피 해서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개인 공간으로 분리된 조용한 독서실에 등록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스마트폰으로 이런저런 딴짓을 하다 집에 오기를 반복했다. 공부도 안 되는데 독서실 등록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집 옆에 무료로 운영하는 시립도서관을 찾았다. 칸막이도 없는 책상에 여섯 명이 다닥다닥 마주 앉아 공부하고 있었다. 고개만 들면 상대방이 무엇을 하는지 훤히 보이는 불편함에 그만 나갈까 싶었지만, 이왕 온 김에 한 시간이라도 하고 가자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누군가 옆에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선 지 딴짓도 하지 않고 오히려 공부에 집중이 너무 잘되는 것이 아닌가? 그 이후로는 일부러 개방된 자리만 찾아다녔다. 물론 불편했지만, 그 불편함이 오히려 집중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렇게 공부한 끝에 결국 합격의 영광을 맛보았다. 이 일을 겪은 후 깨달은 것이 있다. 유혹은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피해야 할 대상이며, 편안함을 포기해야 영광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목사님은 “성공은 편안함을 포기한 자들의 몫이다.”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시며 행동으로 보여주고 계신다. 지구 반대편까지 몸을 편하게 움직이지도 못하는 비행기를 타고 가셔서, 도착 후에도 몇 시간씩 차를 타가며 강행군을 마다하지 않으신다.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곳의 영혼을 끝내 구원해내시는 모습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내가 가장 감동 받은 것은, 목사님께서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편안함을 포기하며 천국을 향해 달려가고 계신다는 점이다. 올해는 편안함을 포기하고 열심을 다해, 내가 서 있는 땅을 기름지게 해보리라 다짐해본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23:10).
송명국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