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忠誠)된 자를 써라
봄이 왔다. 봄이 되면 농부는 논밭으로 향한다. 겨우내 얼어 굳은 땅을 뒤집고 씨를 뿌리기 위함이다. 농부는 엄선된 좋은 씨를 뿌린다. 좋은 씨앗을 심어야 좋은 열매를 많이 거두기 때문이다.
사람을 쓰는 일은 씨앗을 심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을 쓰느냐에 따라 공동체의 미래가 결정되기에 좋은 사람을 써야 한다.
좋은 사람은 충성된 자다. 예수님은 일을 잘하는 자에게 ‘능력 있는 종아!’라고 칭찬하신 적이 없다. 항상 ‘충성된 자’라고 하셨다. 마태복음 25장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로 배가를 이룬 자에게 모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하셨다. 그렇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기준은 능력이 아니라 충성도다. 사도 바울도 말한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2:2).
충성이 무엇일까? 충성(忠誠)은 충성할 충(忠)에 정성 성(誠)으로 이루어져있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는 것이 충성이다. 그래서 충성된 자의 특성을 보면, 첫째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비록 한 달란트만 받았어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 일에 최선을 다한다. 사람은 자고로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 그래서 주님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고 말씀하셨다. 요셉이 그런 사람이다. 보디발의 집안일을 할 때나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일할 때나 똑같이 충성되게 일했다. 그렇게 일하는 충성된 자는 대충 일하지 않는다. 대충은 삶의 암적인 존재인지라 대충으로 인해 불량품이 만들어지고, 그로 인해 모두가 공멸하기 때문이다. 또한 충성된 자는 ‘아니오’가 없다. 오직 주군의 뜻에 ‘예’ 할 뿐이다. 가나 혼인잔치에 물을 떠다 연회장에 가져다주라는 주인의 말에 ‘예’ 했던 하인들처럼.
성경에는 충성된 자들의 계보가 있다. 모세와 여호수아, 베드로, 바울과 디모데, 그리고 나와 여러분까지! 이 계보를 따라 하늘나라는 지금도 확장되고 있다. 우리, 충성된 자란 칭찬을 듣고 인생을 마감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