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이 주는 선물은 부귀영화다(마25:14~30)
가난을 선물로 받고 싶습니까? 부귀를 선물로 받고 싶습니까? 설마 가난을 선물 받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요? 당연히 부귀를 받아야죠.
그렇다면 조건이 있습니다. 부지런해야 합니다. 부귀는 부지런이 가져다주는 선물이거든요. 이건 제 말이 아닙니다. 성경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잠10:4),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잠12:27).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잠13:4).
성경 말씀이 아니더라도, 저는 80 가까이 살면서 게으른 자가 잘 사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어릴 때 우리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셨는데, 일손이 모자라 건넌 마을 사람을 불러오라고 해서 가보면, 해가 중천에 떴는데 아저씨, 아주머니가 제가 부르는 소리에 겨우 이부자리에서 나오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그들 말인즉 전답이 없으니 할 일이 없어 누워있다고 하지만, 그건 핑계입니다. 게으르니까 일이 없는 것이고, 일이 없으니 돈이 없어 논밭을 못 사는 것입니다. 논밭이 없으니 더욱 부지런히 남의 집 일이라도 해서 한 평, 두 평씩 땅을 사야지요. 부르러 갈 때까지 있을 게 아니라 먼저 ‘일 있습니까?’ 물어야죠.
자고로 게으른 자들은 핑계를 잘 댑니다. 성경도 그들을 간파해서 이미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구으느니라”(잠26:13~14).
마태복음 25장에 그런 자가 나옵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각각 돈을 맡기고 먼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자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둘 다 부지런히 장사한 겁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을 파고 그것을 묻어뒀습니다. 게으름을 피운 거지요. 그리고는 주인이 와서 회계하자 핑계를 댑니다.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마25:24~25). 그러자 주인이 뭐라고 했습니까? 그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25:26~30).
파나소닉의 창시자인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3무(三無), 즉 약하고, 배운 것이 없고, 가진 것이 없었지만,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건강도, 학력도, 재산도 없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부지런히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습디다. 부지런하다는 것입니다. 미국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에게 기자가 “성공의 비결이 뭡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는 “글쎄요, 굳이 말한다면 나는 매일 네 시에 일어났습니다. 그것 외에 내세울 다른 것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현대 신화를 쓴 정주영 회장, 그는 쌀가게 시절부터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해가 빨리 뜨지 않는다고 역정을 냈으며, 7시면 회사로 출근했다고 합니다. 대기업의 임원만 봐도 새벽같이 출근해서 회의합디다.
성경의 인물도 살펴볼까요?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갈등하는 가운데서도 새벽에 일어나 모리아 산을 찾았고, 야곱 역시 외삼촌 집에 가서 일할 때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일해서 거부가 되었습니다.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창31:40). 엘리야도 하나님의 일에 부지런했음을 시인했고(왕상19:10), 엘리사도 부름을 받을 때에 부지런히 일하던 중이었습니다(왕상19:19). 다윗 역시 주의 말씀을 묵상하기 위해 이른 새벽에 일어났습니다(시119:148). 사도 바울의 사역도 기도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부지런함이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
(살전2:9).
여러분, 게으름은 모든 죄악의 근본입니다. 죄는 나를 해치는 것이요, 악은 남을 해치는 것 아닙니까. 게으르면 우선 내가 매사에 무력해지고, 의욕도 없어 결국 가난하게 됩니다. “게으른 자의 정욕이 그를 죽이나니 이는 그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잠21:25).
게으름이 내 삶만 피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앞길도 막고 망치게 합니다. 성경 말씀입니다.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잠10:26). 이빨을 식초에 담가보세요. 다 삭아버릴 겁니다. 눈에 연기를 뿌려보세요. 앞인들 보이겠습니까? 직원이 게으르면, 남편이 게으르면, 아내가 게으르면, 그런 사위나 며느리를 보면, 목사나 전도사가 게으르면 앞날이 뻔하다는 겁니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 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제가 자주 읊조리는 이 시조는 나태하고 게으른 자에게 던지는 큰 메시지입니다. 그만 자고, 그만 놀고, 그만 게으름 피우고 일어나 열심히 일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의외로 게으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아십니까? 물론 우리 교회 안에는 없지만요. ‘기도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만사에 손을 놓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입에 다 넣어줄 거라, 하나님이 알아서 다 해줄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하나님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고, 하고자 할 때 하나님이 더욱 힘을 보태시고, 돕는 자를 보내시고, 길을 열어주신다고 했습니다. 행운도, 축복도 부지런히 찾고 두드리는 자의 친구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도 부지런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만드시고 운행하시니 아무것도 안 하고 계셨을 거라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부지런과 열심으로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만물을 주장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시121:4),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9:7). 예수님은요? 당연히 부지런하셨지요. 예수님은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셨고(막1:35), 낮에는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시느라 식사할 틈조차 없으셨습니다(막6:31).
그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도 부지런하기를 원하셔서 말씀하십니다. “부지런히 구하고”(욥8:5), “부지런히 살피며”(잠27:23), “부지런히 찾고”(잠1:28),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신6:7), “부지런히 배우고”(딤후3:14), “부지런히 기도하고”(엡6:18), “부지런히 주를 섬기라”(롬12:11).
저는 게으른 자는 미련한 자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게으르면 분명히 가난하게 되고(잠10:4),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며(잠10:26), 남의 부림을 당할 것이고(잠12:24), 어려움이 많을 것이며(잠15:19), 구걸해도 얻지 못할 것이고(잠20:4), 패가망신을 할 것이며(잠18:9), 굶주릴 것이고(잠19:15), 쇠퇴할 뿐더러(전10:18),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될 것을 알면서도(마25:26~30) 그것을 퇴치하지 못하고 끼고 앉아 있으니 미련하다 할밖에요. 이는 수렁을 보고도 수렁에 빠지는 격이지 않습니까? 불인 줄 알면서 뛰어드는 나방이나 뭐가 다릅니까?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적당하지 아니하니 마치 여름에 눈 오는 것과 추수 때에 비 오는 것 같으니라”(잠26:1).
성경은 말씀합니다. “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잠18:9).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학생으로서, 직장인으로서, 주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기의 일을 게을리하고 있다면 단언컨대 패가하게 되고, 미래가 없을 것입니다.
2026년, 우리 부지런히 운동해서 건강하고, 부지런히 배우고 익히고 노력해서 원하는 것을 이루며, 부지런히 기도해서 응답 받고, 부지런히 주의 일 해서 하나님의 기쁨이 됩시다. 할렐루야!
부지런한 농부의 전답에는
잡초가 없다
미련한 자는 게으른 자요
지혜로운 자는 부지런한 자다
